봄과 함께 찾아온 낯선 감정은 언제나 무섭다. 평온했던 나날들이 엉망이 되는 것만 같다. 한편으로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사랑이라는 감정에 발을 담그기 전부터 지레 겁을 먹어버린다.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마음속에 허기만 가져올 뿐이었다. 첫사랑인 만큼 완벽하리 만치는 않을 걸 알면서도 왠지 내가 하는 사랑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함을 지니고 있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76번 버스의 그를 기다리고 있다.
“준이야”
깜박한 나머지 나는 고개를 휙 돌렸다.
“우림고등학교 3학년 7반 박준이라고.”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못 한 채 쳐다보고만 있었다.
“나 기다리고 있었던 거 아니야? 너 버스는 지나간 지 한참 된 거 같은데"
‘뭐지... 저 당돌하고 자신만만한 태도와 말투는'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우리 학교 찌질한 사내 녀석들 하고는 달랐다.
순간 나는 지지 않겠다는 승부욕으로
“맞아요. 그쪽 기다린 거. 생각해보니까 어제 풍선껌 밟은 거 계속 곱씹어서 생각보다 기분 나쁘더라고.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풍선껌!”이러고 휙 가버리질 않나. 제가 그 풍선껌 제거하는 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아 그날은 제가 등교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도와드리지 못한 거 정말 죄송해요.”
“아하, 지금도 버스가 오네요. 다음에 뵈면 정식으로 인사드릴게요! 박준입니다 저는"
또다시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가 탄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아아악 망했어. 이렇게 세게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준이가 기분이 나빴으면 어떡하지? 아니야. 호감이 있다는 거 티 내는 것보다 방금처럼 대응한 게 오히려 나은 거 일 수도 있어.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한테 더 다정하게 표현하고 싶다. 우리 할머니는 날 이렇게 가르쳐주시지 않았는데... 서울 살이 정말 모든 게 다 어렵다…’
다혜는 5일 중 하루는 야간학습을 쉬고 집에 일찍 들어가는데, 하필 다지가 맞은편 정류장에서 낯선 남자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 을 보았다. 그것은 생전 처음 보는 다지의 모습이었다. ‘학교에 떠도는 소문처럼 정말로 다지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걸까?’ 그러면서도 다혜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라고 생각하는 다지가 모든 걸 털어놓을 줄 알았는데, 다지에게 혼자만이 간직하고 싶어 하는 비밀이 생긴 것 같아 내심 서운했다. 오늘따라 집 가는 길이 외롭고, 집에 들어설 때마다 풍기는 침샘을 자극하는 엄마의 집 밥이 반갑지 않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