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 Feb 18. 2022

마파가는 길(feat.프라다 마파)

텍사스 고속도로 갓길에 프라다 매장이?

작은 사람이 정신없이 LAX 5번 터미널에서 작은 셔틀을 타고 활주로를 가로질러 52l(알파벳 엘) 게이트가 있는 작은 건물로 간다. 작은 비행기를 탄다. 작아서 이착륙도, 기류에도 호들갑스럽다.

두시간도 되지 않아 창문에 작은 도시가 보인다. 엘파소 공항은 예상대로 작았다. 병원처럼 차가운 엘에이 공항과 달리 관광 안내소 처럼 엘파소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있고 따뜻하다. 당분간 마지막 스타벅스 아이스라떼 한 잔 주문까지 성공.

Photo by 달


안도도 잠시, 공항 내 렌트카 카운터가 문을 닫았다. 주차장으로 가라는 안내를 보고 직진. 부스가 바로 있다. 수속을 하니 Midsize 섹션에 있는 차를 골라 타란다, 익숙한 작은 코롤라에 짐을 실었다가 잽싸게 조금 큰 SUV 블루 킥스로 옮겨탔다. 작게 태어났지만 인생 크게 살자.


마파로 가는 큰길 위에서 웃다

Photo by 달

공항에서 10번 프리웨이 진입은 어렵지 않았다. 차의 마력이 좋지 않아서 70마일까지 올리는데 다리 힘이 필요했다. 마파 가는 길에 그나마 힘들었던 일.


텍사스의 길고 긴 지평선, 멀고 먼 소실점을 향해 덩치 큰 트레일러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달린다. 처음으로 시속 80마일(약 130킬로미터)을 넘는 속도로 운전을 하는데 무섭지 않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엘파소와 마파 사이의 여백에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까 별 상상을 했던 것이 어이없었다. 건물의 잡음없이 길게 뻗은 길에 눈과 속이 시원했다. 내내 웃으며 달렸다.


I-10 구간은 쫄깃한 고속의 카레이싱이었다면, 차가 드문 드문 지나가는 US-90 구간은 한적한 텍사스 시골길의 여유가 있는 드라이브였다.

Photo by 달

택시를 대절해서 갈까 심각하게 고민했었는데 운전하길 잘했다. 내가 이렇게 잘 해낼지 몰랐다. 낯선 일에 도전한 자만이 느끼는 감탄과 환희의 두 시간 반. 덩달아 뜨겁게 달아오른 GPS를 잠시 끄고 달리는데 프라다 마파(Prada Marfa)가 오른쪽으로 스친다.


"저거 저거 프라다 마파. 차 세워야 해!”


마파에 프라다 매장이?

그렇게 준비를 해도 인생의 순간들은 불쑥 닥친다. US-90 프리웨이의 갓 길, 벌판을 배경으로 간이 화장실처럼 덩그러니 있는 프라다 매장. 프라다 마파(Prada Marfa)는 2005년에 마이클 엘름그린(Michael Elmgreen)과 잉가르 드렉 셋(Ingar Dragset)이 만든 설치작품이다. 그들의 취지에 공감한 미우치아 프라다가 직접 골라주었다는 구두와 가방이 전시되어 있다.


프라마 마파의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다.
추위에 떨며 가지지 못하는 것을 바라본다.
인스타의 사진에선 신비롭고 아름다운데
실제 보니 외롭고 쓸쓸하다.
누런 외벽에서 세월이 보인다.
Photo by 달
Photo by 달

이 앞에서 인생 샷을 남기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왔는데 때마침 불어온 칼바람이 만든 봉두난발 샷을 겨우 건졌다. 오늘을 기념한다며 챙겨 온 거의 $1,000이나 하는 프라다 로퍼는 먼지를 뒤집어 섰다.


마파에서 무섭고 불편한 로퍼는 짐이었다. 삶의 장면이 조금만 바뀌어도 가치가 달라지는 명품이 뭐라고 그토록 숭배했던가. 텍사스의 바람과 먼지의 요란한 환영식을 뒤로하고 차에 오른다. 30분 후면 마파다.

Photo by 달


이전 02화 마파로 떠나기 전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