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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Ming Jul 28. 2024

할머니. 힘들 때, 내 곁에 날아와.

책 읽는 아들, 글 쓰는 아빠 #7


나는 나쁜 손자였다.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아버지는 6.25 전쟁이 막 끝났을 무렵, 집에서 넷째로 태어고, 부모님께 항상 효도하는 아들이다. 할머니는 자식이 다섯이나 있었고, 손자는 여섯, 손녀는 다섯, 총 열한 명의 손주를 두다. 비록 나는 어른들을 공경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부모님의 가르침과 달리 할머니께는 유독 툴툴 대곤 했다.


내가 어릴 때는 일 년에도 제사가 스무 번씩 있었다. 조부모님 생신에 명절까지 합치면, 매달 두 번은 할머니 댁에 갔던 기억이 있다. 1년에 말이 50번이라고 생각해 보면, 정말 은 시간을 큰집에 보낸 셈이다. 아마도 시댁에 가져갈 음식을 준비했던 어머니, 큰 집에서 손님들을 맞았던 큰 어머니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음식을 준비하는 며느리도 아니면서, 큰집에서 자주 모이는 것이 싫었다. 제사는 아주 늦은 저녁 시간이 돼서야 끝났고, 아버지와 그 형제들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재미도 없는 텔레비전을 멀리서 불편하게 보거나, 어디 구석 자리를 찾아 멍하니 앉아 있어야 했다.


무엇보다 단 한 번도 앉지 못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어머니를 보고 있는 것이 싫었다.


친척 형제자매들과 친형제처럼 지내야 한다는 강요가 싫었고, 가끔 보는 먼 친척의 불친절함과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가 싫었다. 그렇게 나는 큰집에 가는 것이 점점 더 싫어졌다. 그러면서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 적어도 측은하게 생각해야 할 사람, 우리 할머니와 마음에서 멀어지게 됐다.


나는 그것이 하늘에 계신 할머니한테, 그리고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한테 참으로 미안하다.

효도는 못하더라도 할머니한테 잘해드릴 것을... 어른이 되니 후회 남는다.




아들, 심쿵이는 좋은 손자다.


심쿵이는 그 존재 자체로 큰 보물이다. 귀한 딸들만 있던 양가에서 첫 번째로 얻은 남자아이였고, 처가에서는 유일한 남자아이이자 막내였다. 자라면서 부모인 우리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큰 기쁨을 주었던 심쿵이는 정말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란 복 덩어리이다.


특히 심쿵이는 아내가 출산 후 복직하여 매일 출근하던 시절, 우리 집에 올라오신 장모님과 반년을, 그리고 다시 안성에 계신 어머니 곁에서 반년을 보냈다. 물론 가장 많은 책임과 수고는 아내의 어깨에 올려져 있었지만, 신생아 시절 심쿵이의 기억 어딘가에는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할머니들 역시 그렇다. 할머니들 본인들의 손으로 직접 심쿵이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재웠기에, 할머니들에게 심쿵이는 더욱 각별한 손주이며, 그 시간 동안 함께했던 심쿵이의 숨결과 눈빛 그리고 따뜻한 체온이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심쿵이와 할머니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에 틀림이 없다.


할머니와 손자의 사랑 (Copilot)


아빠의 소원을 들어주는 심쿵이


내가 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일까. 나는 아들이 나의 어머니인 할머니를 사랑하고, 또 할머니와 잘 지내길 바랐다. 심쿵이는 말하지 않은 나의 마음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할머니에게 항상 애틋했고 나이가 든 할머니를 누구보다 이해했다.


비록 내가 살아온 시간에 후회가 있더라도, 나는 그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아들은 나의 후회와는 무관하게, 스스로 미래척해 나가고 있다. 앞으로 의미있는 시간을 채워가고,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어가며, 더 깊은 사람 간의 사랑을 이해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나의 마음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충만하며, 아이에 대한 감사함으로 가득하다.


내가 하지 못한 일들을 오늘도 척척 해나가는 심쿵이를 바라보면 사랑과 애정이 샘솟는다.

다섯 살 심쿵이의 할머니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는 편지소개하고 싶다.


다섯 살 심쿵이가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할머니

내 곁을 항상 훨훨 날아다녀 ♡

힘들 때 내 곁에 날아와 ♡


어떤 책의 아름다운 구절이 

심쿵이 마음에서 싹을 피우고, 할머니에게  아름다운 편지로 변했을까?

아니면, 어릴 때 좋아했던 작은 나비가 심쿵이 마음속에 잠시 날아왔을까?


그리고 심쿵이의 편지처럼,

어머니가 마음껏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나비가 되어,

사랑하는 손자 곁을 항상 날아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섯 살, 심쿵이는 마법사다.

아름다운 문장 하나로, 우리의 마음을 나비로 만들어, 꽃 밭을 날아다니게 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할머니와 손자의 사랑을 다룬 작품들이 있어서 두 권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 작품은, 박종진 작가 글, 밀가 작가 그림의 '한번 보러 오지 않을래?'이다.


한번 보러 오지 않을래?



《한번 보러 오지 않을래?》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할머니와 바쁜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할머니는 혼자 시골에 살며, 보고픈 가족들에게 전화를 한다.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누렁이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날개가 달렸으니 보러 오라고 하면, 아들은 회사에 다 왔다고 바쁘다며 전화를 끊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 큰 손녀에게 전화를 해서 옆집에서 사자, 코끼리, 기린을 기르는데 할머니를 태워줬다고 하면, 다 큰 손녀는 놀이동산이라고 전화를 끊자고 한다. 그렇게 마지막에 막내 손주가 할머니의 말을 믿고 모두를 할머니에게 데려가자 할머니는 크게 웃음 지으며 가족을 반긴다.


옛날 할머니들은 나이가 들어서 항상 어딘가 아프셨다.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자식들에게 전화를 걸어 "한번 보러 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사는동안 무엇이든 내어주었던 할머니는, 그렇게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돌려서 말하는 방법밖에 모르셨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그 유일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자식과 손주들에게 "한번 보러 오지 않을래?"라고 직접 말씀하셔도 좋았을 텐데, 차마 그 쉬운 말을 하지 못했던 동화 속의 할머니는 구름에서 비눗방울이 터졌다고 하시거나, 떡을 먹으러 선녀가 내려왔다는 이야기로, 할머니를 보러 오지 않겠냐고 간접적으로 표현하셨다.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고 나는 다시 한번, 동화의 표지를 보았다.

할머니는 커다란 벚꽃 나무를 바라보고 계셨다. '나이가 들어도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은 변하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  또, 할머니 곁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다. '나이가 들어도 무엇인가를 힘껏 키워내는 엄마의 마음 역시 변하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여름휴가


두 번째 작품은, 우리 시대 최고의 인기 작가 안녕달 작가의 '할머니의 여름휴가'이다.



더운 여름날, 바닷가에 다녀온 손자가 혼자 사는 할머니를 찾아옵니다. 손자는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할머니를 위해 바닷소리가 들리는 소라를 선물합니다. 할머니는 소라를 통해 뜻밖의 여름휴가를 떠나게 됩니다. 비췻빛 바다와 고운 모래톱, 할머니가 떠난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요? 안녕달 작가 특유의 엉뚱하고 태연한 상상력으로 휴가와 여행의 즐거움이 기분 좋게 펼쳐집니다.


여름에도 밖에 나가지 않아 피부가 하얀 할머니는, 창밖으로 아파트가 보이는 옥탑방에 가족사진을 걸어두고 강아지와 함께 낡은 선풍기바람을 쐬며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바닷가에 다녀온 까맣게 탄 손자가 할머니를 찾아와 소라를 선물하고, 할머니는 소라에 귀를 대고 바닷소리를 들었다.



손자가 집에 돌아가고, 할머니가 키우던 강아지가, 소라 안에서 삐죽 튀어나온 게를 잡으러 소라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할머니는 소라 안으로 놀러 갔다온 강아지의 몸에서 바다 내음이 나는 것을 알고, 용감하게 휴가 물품을 이것저것 챙겨 소라 속의 바닷가로 여름휴가를 떠나게 된다.


할머니와 강아지는 소라 속 바다의 기념품 가게에서 사 온 바닷바람 스위치를 낡은 선풍기의 스위치에 끼운다. 낡은 자주색 선풍기는 신이 난 듯 '윙윙' 소리를 내며 바닷바람을 할머니에게 선물다. 




할머니가 된 나의 엄마


글을 쓰면서, 어느새 할머니가 되어버린 어머니가 자꾸 눈에 아른 거렸다.


어머니에게 전화 드리면, "괜찮아, 우리는 잘 있다." 말씀 하신.

어머니는 그렇게 늘 참고 사셨다. 어머니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신 후, 젊은 시절 오빠 집에서 살면서, 지금의 나의 아버지를 만났다. 넉넉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는 않았어야 할, 그녀의 삶은 야속하게도 언제나 부족함과의 싸움을 해야 했다. 그 속에서도 자식의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긴 시간을 살아내셨다.


그 안에서 어머니는 항상 자신을 비워내셨다. 가족을 위한 울타리가 되기 위해 살아 가시는 아버지, 사회에서 하루라도 빨리 자리를 잡으려는 자식들 사이에서 어머니는 자신을 감추셨고, 우리들의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 주셨다. 그렇게 최선다해 삶을 살아가신 어머니가 어느새 나의 자식의 할머니가 되었다.


어머니는 지금도 자신의 감정을 밀어내고 살아 가신다. 동화 속의 할머니처럼, '한번 보러 오지 않을래?'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고장 난 선풍기를 친구 삼아 자식들의 전화를 기다리며, 기도로 오늘 하루를 보내신다.


이제 할머니가 된, 어머니가 손주들에게 표현하는 사랑의 방식 또한 헌신과 인내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볼 때면 가슴이 저릿해진다. 그리고 어머니의 표정은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하지만, 점점 더 작아져가는 몸을 보며 시간이 가는 것이 무섭다.


그러나 시간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또한 시간은 반드시 흘러야만 한다. 

어머니와 내가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어가면, 심쿵이도 한 살 더 나이를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쿵이는 어머니와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또한, 영화의 주인공처럼 아름다운 아내를 만나 사랑스러운 자식을 가지게 될 것이다.


미래의 심쿵이가, 심쿵이의 아내가, 심쿵이의 자식들이, '그들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아쉽지만, 용기내어 과거를 보내주고 미래를 맞이해야 하는 이유다.


아쉬워도 괜찮다.

할머니와 아들과 손자의 시간은 '지금'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의 이 시간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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