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아들, 글 쓰는 아빠 #5
작은 테두리 안에 홀로 있는 나
나는 고등학교를 한국에서 졸업하고,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베이징, 하얼빈, 칭다오에서, 그리고 군대에서 이십 대를 보냈다. 중국이라는 새롭고 커다란 세계가 나에게 열렸지만, 그 여정 속에서 만나는 친구들을 가족으로 삼아야 했고, 때로는 그저 스스로에게 기대어 살아야 했다.
십 년을 타지에서 지내며, 가까이 두고 싶은 사람들보다는, 멀리 해야 할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다. 나는 중국이라는 넓은 세상에서, 마음속에 나만의 작은 원을 그리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십 대에 큰 꿈을 품고 중국으로 떠난 나에게 함부로 잘 모르는 사람을 가까이 두는 것은 위험한 일처럼 느껴졌다.
중국어로 30분의 대화도 어려운 한국인 유학생들, 한국에서 사고를 치고 도망쳐 온 사람들까지, 대인관계는 나에게 불필요하고 불편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중심으로 몇 개의 원을 그리고, 그 안에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채워 넣는 것이었다.
이십 대의 나에게 '좋은 대인 관계'란 잡을 수 없는 '파랑새'나 '유토피아' 같은 것이었다. 어차피 가질 수 없기에,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내가 타인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는 '무관심'이었다. 내가 곁을 내주고 싶지 않음에도, 기어코 나에게 다가오는 '위험하고 별난 사람들'에게 내가 보낼 수 있는 신호는 무관심, 적대적인 표정, 날카로운 말투였다.
최대한의 사랑의 표현은, 나의 자리를 내어 주는 것
외로운 이십 대를 보내고,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지혜로웠고 아름다웠다. 영화 '바닐라 스카이'의 톰 크루즈가 페넬로페 크루즈를 처음 만나고, '이 도시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순수한 여자를 만났다'라고 말한 것처럼, 나도 아내에게 그렇게 반했다. 그녀는 내 작은 원 속으로 들어온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나는 아내를 참 사랑했고, 소중하게 대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항상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원 중심에 있던 나의 자리를 그녀에게 내어주었다. 이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의 표현이었다.
결혼 후, 우리는 곧 새 생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심쿵이는 봄에 태어났기에 여름에 신생아를 키우는 건 참 힘들었다. 더운 여름에 에어컨을 제대로 켜지도 끄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아내와 24시간을 둘로 나누어 아들을 안고 있어야 했다. 아내는 임신한 순간부터 엄마가 되었지만, 나는 아빠라는 사실이 익숙하지 않았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나는 책임감이라는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본능, 책임감이 나를 움직였다. 잠들지 않는 아기를 돌보고, 수유를 돕고, 수많은 배넷 손수건을 널고 개는 일들 속에서 나는 책임감이라는 마음속의 강한 본능으로 나라는 사람을 내려놓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에서 둘로 늘어났다는 사실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나의 마음속 가장 작은 원은 이미 아내에게 양보한 상태였기에, 새롭게 온 아들에게 내어줄 자리를 다시 찾아야 했다.
우리 가족에게 안아준다는 의미
그 시기에 우리는 제즈 앨버로우의 그림책 ‘안아 줘!’를 자주 읽었다. 작은 아기 원숭이 보보가 엄마를 찾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아기 원숭이의 모험을 함께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해요!
아기코끼리와 엄마코끼리가 껴안은 모습을 보고 아기 원숭이 보보는 '안았네'하고 외칩니다. 엄마를 잃어버린 보보는 이런 모습이 부럽기만 합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투덜투덜 걸으면서 보보는 코끼리에게 안아달라고 투정도 부려봅니다. 한참을 가고 있는데 이번엔 엄마 호랑이, 기린, 하마가 아기 호랑이, 기린, 하마를 꼭 안아 주고 있지 않겠어요. 마침내 보보는 동물들을 향해 안아 달라며 엉엉 울기 시작하는데. 동물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깔끔하고 커다란 그림과 함께 엮은 유아용 그림동화입니다. (교보문고)
우리는 작은 아기 원숭이 '보보'의 모험을 한 발 한 발 따라가며, 아기 원숭이 '보보'를 걱정했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엄마 원숭이가 아기 원숭이를 찾아오길 바랐다. 아기 원숭이가 걱정됐지만 우리 세 명은 책의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사랑했다.
엄마 원숭이가 저 멀리서 아기 원숭이 이름 '보보'를 크게 외치며 힘차게 뛰어오는 장면을 보며, 우리 부부는 늘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고, 아들은 마치 책 속의 '보보'가 된 듯, 수백 번을 읽어도 똑같이 기뻐하고 행복해했다. 심쿵이는 엄마와 아빠를 안았고, 가지고 있는 인형 하나하나를 꺼내어 꼭 안아주었다.
어두운 밤, 아기를 위해 읽어줬던 '안아 줘'라는 책은,
우리 가족에게 서로를 안아준다는 큰 의미와 추억을 선물했다.
아기의 체온이 녹인, 나의 작은 원
아기의 목을 받쳐 품에 안고 아들을 바라보면, 나의 눈앞에 아기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있었다. 작은 코에서 나오는 꽃 향기처럼 달콤한 숨, 밤하늘의 달을 비춘 호수처럼 반짝이는 눈, 항상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옹알거리는 작은 입, 그리고 말랑말랑한 팔다리가 내 몸에 맞닿고 있으면 없던 힘이 다시 생겨났다.
내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의 표현은, 최대한 많이 안아주고 따뜻한 체온을 나누는 것이었다.
아기의 체온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랑의 교과서였다. 아기의 체온은 나의 작은 원의 테두리를 녹이고,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그 체온을 통해 나는 새로운 사랑의 형태를 배우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하던 공간에 아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왔고, 그로 인해 나의 마음속에는 더욱 따뜻하고 큰 공간을 함께 만들 수 있었다.
나의 작은 원은,
이제 더 이상 혼자만의 테두리가 아니며,
사랑으로 가족이 함께하는 연결고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