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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Ming Jul 07. 2024

아빠, 왜 함께 살아야 하는 거야?

책 읽는 아들, 글 쓰는 아빠 #4


바야흐로 혼자가 더 익숙한 시대가 되었다.


이미 대한민국 삼분의 일이 일인가구이며, 북유럽 선진국은 일인가구가 절반을 차지한다. 세상은 왜 아직도 홀로 살고 있지 않냐고 묻듯, '혼밥, 혼술'로도 모자라, '혼영(영화)''혼핑(쇼핑)'등의 신조어가 등장했고, TV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와 같은 나 홀로 관찰 예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우리 사회는 앞으로도 일인가구가 계속 증가할 것이며, 일인가구를 위한 시장 또한 급속도로 성장할 것이다.


내가 성장하던 1990년대에는, '혼자 산다는 것'은 고독과 외로움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했고, '도대체 무슨 재미로 그렇게 사냐?'는 질문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자살 때 언제가 제일 외롭냐는 질문에 한 연예인이 문지방에 발 끝을 찧었는데 혼자 소리 없이 아파했다고 하자 모두 측은하게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의 발전으로, SNS를 통한 상호 간의 연결이 일상화되었고,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많아, 공중파 방송에서 케이블 TV와 유튜브지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되면서, 홀로 사는 사람들을 더 이상 외롭다고 여기지 않게 되었다.


여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는 것이라는 상식도 점차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스무 살에 친구들과 함께 가슴 설레며 떠났던 첫 여행은 이제 '혼행(혼자 여행)'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로 변모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가며, 게스트하우스에서 필요한 만큼의 최소한의 대인관계만 유지하는 새로운 여행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세상 어느 부모의 마음과 똑같이 나는 아들이 일생을 혼자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또, 가능하면 결혼도 하고 손자, 손녀까지 낳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로 지금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이다.) 절한 나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돌이켜보면, 사실 나조차도 때로는 혼자이고 싶고, 인간관계 인해 더 이상 상처를 주기도 고 싶지 않으며, 때로 대화보다침묵을 좋아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도대체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함께 사는 게 뭐예요?


나는 대인관계에 대한 애매모호함을 함께 고민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아들과 함께, '함께 사는 게 뭐예요?'라는 책을 읽어 보기로 했다.  책은 랑스 작가인 '오스카 브르니피에'가 어린이들의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기 위해, 시리즈물로 집필하였다.



이 책에서는 어른들도 쉽사리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과감하게 어린이에게 질문한다. 이런 것들을 어린아이에게 물어도 될까라고 생각될 만큼 파격적이라고 생각했던 질문들을 아래와 같이 모아봤다.

혼자 살고 싶어, 혼자 살면 때로는 싫증이 나지 않을까?
우리의 행복은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 있는 걸까요?
사람들은 정말로 이유가 있어서 태어난 걸까요?
예절은 거짓말의 한 모습일까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언제나 동의해야 하나요?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까요?
똑똑한 사람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지배해야 하나요?
정의에 대한 생각은 어느 곳에서나 같을까요?


이런 질문들 속에서 아들의 생각을 엿볼 수도 있었다.

아빠 : 살아가면서 우리는 함께 정한 규칙을 지키면서 살기로 약속했어,
         그렇다면 규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을까?
아들 : 나는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아빠 : 왜 그렇게 생각해? 만약 흉악범이라면? 혹시 사람을 죽이고 아이들을 납치한 사람이라면?
아들 : 사람은 모두 동등하게 존중받을 권리를 가졌어. 아빠도 경찰이 나쁜 사람을 잡았을 때, 고문을 하거나 심하게 때리지 않는다고 했잖아.


물론 책을 읽고 있는 아들에게 질문하면 성의 있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아빠 :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다고 하는데, 어린이는 어른과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아들 : 응.
아빠 : 응....?!!! 끝??!!


또는, 가족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주제로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질문 : 친구들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 해야 할 말을 참아야만 하나요?
아들 : 음, 너무 어려워~ 그렇지만 나는 말을 할 거야!
엄마 : 나는 친한 친구한테는 얘기를 해야 하고, 친하지 않은 사람한테는 말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
아들 : 나도 비슷한 생각이야.
아빠 : 친하지 않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꼭 말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반드시 대화가 되는 사람한테만 말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시간만 낭비하게 되거든.


수많은 질문 속에서 어린 아들과 어느 수준까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내 지혜의 주머니에는 얼마나 많은 답이 들어 있는지, 그리고 잘 살아가는 것의 정의를 쉽게 내려도 되는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저 정답이 없는 질문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나 자신을 위하고, 우리를 위하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 무엇일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했다.




첫째, 더 큰 행복을 만드는 길


나는 평소 넓은 인간관계보다는 진실되고 깊은 인간관계를 지향했기에, 유학 시절 많은 오해와 핀잔을 듣곤 했다. 한국 유학생들의 비난과 비방 속에서 내가 가진 인간관계의 가치관에 대한 믿음을 점차 잃어갔고, 마흔이 넘은 지금에서야 비로소 내가 남과 다를 수 있으며, 내 생각은 스스로에게 먼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어렵게 얻은 지혜를 아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모두 전달해주고 싶다. 하지듣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을 깨달았기에 아들과의 대화에 있어 입보다 귀를 열려고 노력한다. 엇보다, 질문은 아이의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과정을 통해서 깊게 생각하지 못했거나 어렴풋이 생각했던 문제들에 대철학을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심쿵아, 우리는 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거야?"

아들이 남들과 함께 사는 즐거움을 알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아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냐면,

나의 행복은 내가 만들기도 하고, 가끔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주기도 하기 때문이야."


아들은 반짝이는 눈,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은 자신의 말처럼, 스스로가 만든 행복과, 우리가 주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들의 대답으로부터 큰 가르침을 얻었다.

'그렇다. 내가 스스로 만들 수 없는 행복이 있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 줘야 하는 행복이 있다.'


책을 많이 읽은 어린 아들은, 우리 집의 척척박사일 뿐만 아니라, 작고 위대한 스승이기도 했다. 곁에 사람을 두는 것은 때로 귀찮고 번거롭고 불편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나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결핍과 외로움은 오직 타인으로부터 채울 수 있으며, 나 또한 사랑하는 주위 사람들의 알 수 없는 부족함을 채워줄 의무가 있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다.




둘째, 더 크게 성장하는 길


아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 반에서 수십 명의 동갑 아이들을 만났을 때,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교우관계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 반에도 수 십 명이 있다양한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 모기에, 아들이 아직 경험해보지 구쟁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나이를 먹은 나 또한 상급 학교에 진학하거나, 새로운 회사로 이직할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곤 했으니, 어린 아들의 마음이 무척이나 이해가 갔다.


그러나 우리는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감수하더라도, 나와 다른 색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하는 상황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스로 아무리 책을 많이 고 부모님과 다양한 주제로 깊은 대화를 나눌지라도, 때로는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 우리를 '사회적인 사람'으로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편하고 생소한 세상에 용기 내어 뛰어들어야 하며, 그 안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새로움, 그리고 다름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아들은 내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세상보다 수백 배 넓고 다양한 세상의 사람들과 함께할 것이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에 갈 것이고, 다른 색의 눈을 가진 사람, 기후가 다른 곳에 사는 사람,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과 소통하며 그때마다 답이 없는 문제들에 대해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갈 것이다.


아들은 내가 살면서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좋은 스승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로부터 아빠가 가르쳐 줄 수 없 지식을 배우고 지혜를 얻을 것이, 좋은 친구와 선후배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시간들은 아들을 분명 크게 성장시킬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울 것 하나 없는 무례하고 무지한 사람 또한 만나게 될 것이다. 때로는 그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하지 말아야 할 일들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이고, 또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아버지로서, 그저 아들 곁에 가능하면 아름다운 색을 입힐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 기도하고 또  뿐이다.



아들의 성장 과정 속에서 만나게 될 많은 사람들은, 자라나는 아들의 철학과 가치관에 작고 큰 영향을 줄 것이다. 그 시간 속에서, 아들은 우정을 배울 것이고, 사랑을 배울 것이며, 감사함을 알게 되고, 분노하는 법을 깨우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법을 알게 될 것이며, 그들에게 존중받는 법을 깨우쳐 나갈 것이다.


아들은 혼자 가면 힘들거나 외로워서 가지 못할 길을, 함께하는 좋은 사람들이 있어 더 멀리 더 즐겁게 세상을 향해 날아오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들이 살아갈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나를 즐겁게 만든다. 아들의 작가가 되겠다는 꿈이 계기가 되어 나는 글을 쓰는 취미가 생겼고, 아들의 삶을 꿈꾸며 새로운 세상과 인생을 상상하면서 설렐 수 있었다.


다 아들을 잘 둔 덕이다. 오늘도 아들에게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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