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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Ming Jun 30. 2024

빗자루처럼 바보 같은 아빠

책 읽는 아들, 글 쓰는 아빠 #3


심쿵 (엄마!), 심쿵 (아빠!)


우리 부부는 결혼 후 한 번의 아픔을 겪고 지금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임신 소식을 다시 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망설임 없이 한 마음으로 뱃속의 아기에게 '심쿵'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지난 시간, 마음 아프게도 듣지 못했던 심장 소리를 이번에는 반드시 듣겠다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괜찮을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심장 소리를 기다렸다.


어느 날, 마침내 그 순간이 찾아왔다. 의사 선생님께서 우리의 간절했던 마음을 아셔서 일부러 볼륨을 크게 조정해 주셨던 걸까. 심쿵이의 심장 소리는 마치 행진곡의 큰 북처럼 '쿵쾅쿵쾅'하고 울렸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고, 서로의 눈에서 글썽이는 눈물을 보았다.


우리가 심장 소리를 너무나도 간절히 기다렸던 걸까. 

우리를 향해 힘차게 울리는 아기의 심장 소리가, 마치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이 맞붙었던 봄, 심쿵이가 이 세상에 왔다. 간호사 선생님은 나에게 심쿵이를 안아보라고 하셨다. 심쿵이는 작은 몸으로 온 힘을 다해 얼굴이 벌게지도록 "응애응애"하고 울고 있었다. 갓난아기를 한 번도 안아본 적이 없던 나는, 너무나도 작고 소중한 생명이 다칠까 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조심스럽게 아기를 받았다. 용기 내어 아기의 얼굴을 쳐다봤을 때, 나는 '아빠'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심쿵이는 나의 세계를 말할 수 없이 확장시키고 깊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에게 사랑의 다른 이름이 책임감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책임감은 단순히 의무를 다하는 것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었다. 아들이 밤새 울 때마다 잠을 설치며 달래주고, 아침이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헌신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사랑을 배울 수 있었고 이 책임이 나의 것임에 감사했다. 


나는 앞으로도 아들이 겪게 될 모든 '처음의 순간'을 함께하고 싶지만, 아들은 용감한 모험가처럼 스스로 그 순간들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그래서 아직 어린 아들과 함께하는 지금의 시간이 더욱 소중하고 감사하다. 오늘도 나는 아들의 사랑스러운 볼에 마음껏 입을 맞춘다.




아빠가 뭐예요?


나는 언제부터 아빠가 된 걸까. 아들이 처음 '아빠'라고 불러줬던 순간부터였을까, 아니면 심쿵이를 처음 품에 안던 순간부터였을까? 아니, 어쩌면 심쿵이의 심장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말 어쩌면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이 아이의 아빠로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셨다. 비록 섬세함은 부족했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가족을 존중하고 다정하게 대하려 노력하셨다. 특히 막내로 태어난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셨다. 어린 시절, 나는 힘줄이 솟은 아버지의 발등을 밟고 춤을 추는 것을 좋아했다. 춤을 추고 나면 아버지는 나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형광등이 있는 천장까지 팔을 쭉 뻗어 높이 올려주셨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따뜻하고 커다란 발의 감촉과 형광등의 눈부시게 밝은 빛 속에서 '아빠'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나를 아빠로 만드는 것은 우리 아기


나는 아빠라고 불리기에는 너무나도 미숙한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아끼는 방법도, 아껴야 하는 이유도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남들에게도 무심하기만 했다. 나는 삐죽삐죽한 밤송이나 까끌까끌한 철 수세미처럼 까다롭고 불편한 사람이었다.


최근에 나를 알게 된 사람들은 나를 젠틀한 사람으로 알고 있기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수십 년 동안 나를 알아온 사람들은 나의 다정한 척하는 모습에 콧방귀를 뀐다. 나는 철저히 인정한다. 젊은 시절, 내가 누군가를 따뜻하게 품고 사랑하며 모범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철 수세미처럼 까칠하고 제멋대로인 내가 다정한 아빠를 꿈꿀 수 있었던 건 바로 우리 아들 덕분이다. 나 혼자서는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었던 아빠의 길을 아들의 작은 손을 잡고 용기 내어 한 발 한 발 걸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려 하고, 신사답게 행동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아들의 반짝이는 눈, 빵빵한 볼, 고사리 같은 작은 손, 말랑말랑한 발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아들을 생각하면, 아들이 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솟구친다. 그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의 이름은 본능, 사랑, 운명일 것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들이 잘 살아가기 위해 내가 좋은 아빠가 되어야 한다고 끝없이 다그친다. 스스로 진실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예의 바른 사람, 규칙적인 사람, 꿈꾸고 도전하는 사람, 회사 일을 멋지게 해내는 사람, 아내를 소중히 대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아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들에게도 다정하게 대해야 하며, 올바른 가치관을 가르쳐 줘야 한다고, 평등과 존중, 존경과 책임이 어떤 단어인지 알려줘야 한다고 내 마음속의 울림이 나를 다시 깨어나게 한다.





부족한 아빠를 사랑하는 아들


아빠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던 초보 아빠 시절, 우리 가족은 앤서니 브라운의 팬이 되었다. 그의 전시회와 뮤지컬을 보러 다녔고, 나중에는 영어 버전의 책까지 구매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앤서니 브라운의 대표작인 '우리 아빠가 최고야'라는 책을 소개하고 싶다.



우리 아빠가 최고야_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우리 아빠는 최고예요. 커다랗고 험상궂은 늑대도 안 무서워하고, 달을 뛰어넘을 수도 있어요. 달리기도 잘하고, 힘도 무척 세요. 집채만큼이나 몸집이 크고, 곰 인형처럼 부드러워요. 춤도 멋지게 추고, 노래도 굉장히 잘 부르지요. 우리 아빠는 정말 최고예요. 그중에서도 가장 최고인 것은 아빠가 날 사랑한다는 거예요. 언제까지나 영원히요.


이 책은 멋진 아빠로 시작해서 현실적인 아빠, 그리고 조금은 부족한 아빠의 모습을 차례대로 보여준다.


책의 초반부에는 '슈퍼히어로' 같은 아빠의 모습이 나온다. 책 속의 아이는 "우리 아빠는 커다랗고 험상궂은 늑대, 거인 프로 레슬러와 싸워서 이길 수 있고, 빨랫줄 위를 떨어지지 않고 걸어 다닐 수 있으며 달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혹시 우리 아들이 나를 그렇게 바라볼까? 내가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아기에게 거짓말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책을 읽어주는 마음이 불편했다.


책의 중간쯤에는 좀 더 현실적인 아빠의 모습이 나온다. 달리기나 수영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책 속의 아빠는 여전히 달리기에서 1등을 하고, 수영하는 모습은 물고기 같았다. 나는 아들이 '아빠, 달리기 1등 할 수 있어?'라고 물어볼까 봐 불안해하며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겼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책 속의 아이는 아빠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우리 아빠가 최고야 中 후반부 내용
우리 아빠는 집채만큼이나 몸집이 크면서도, 곰 인형만큼이나 부드럽다.
우리 아빠는 부엉이처럼 똑똑하기도 하고, 빗자루처럼 바보 같기도 하다.
나를 얼마나 웃겨 주는지 모른다.
나는 우리 아빠가 정말 좋다. 왜 그런지 알아? 아빠가 나를 사랑하니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아이는 아빠가 몸집은 크지만 사실은 작은 곰인형처럼 부드럽고, 똑똑하지만 때때로 빗자루처럼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의 눈에는 아빠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슈퍼히어로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숨겨진 아빠의 나약하고 부족한 면모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가 자신을 웃겨주고 사랑해 주기 때문에 아빠를 정말 좋아한다고 했다. 

아이는 부족한 아빠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고 있었다.


나는 작은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며, 눈에 고인 눈물을 슬쩍 닦아냈다. 

그리고 천진난만하게 내 무릎에 앉아있는 아들의 볼록 튀어나온 볼에 입을 맞추었다. 


아들에게 말했다. "사랑해."  

"아빠, 나도"라고, 심쿵이가 대답했다.




나침반이 되어 주는 아들


나는 사고뭉치였다. 젊은 시절, 마음대로 유학을 가고, 마음대로 편입도 하고, 또 마음대로 첫 직장을 중국에서 시작하고 제멋대로 살아갔다. 해야 하는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우선에 뒀기에 안정보다는 모험을 추구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무모하다고 생각할 만큼 자유분방하게 살아왔다. 때때로 나는 이기적이고, 때로는 무심하며, 종종 무책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빠가 되는 순간,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빠로서 첫발을 내디딜 때,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다. 하지만 심쿵이가 나의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그의 웃음소리, 울음소리, 그리고 처음 '아빠'라고 부르던 그 순간까지, 모든 것이 나에게는 새로운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었다. 


아들이 나를 아빠로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 아들이 보여주는 사랑과 신뢰는 나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될 용기를 줬다. 심쿵이의 반짝이는 눈과 천진난만한 미소는 나를 더 좋은 아빠가 되고자 하는 의지로 가득 채웠고, 아들의 작은 손이 내 손을 잡을 때, 나는 그 따스함 속에서 큰 책임감을 느꼈다. 그 책임감은 나를 더 좋은 사람, 더 다정한 사람, 더 좋은 남편, 더 좋은 아들이 되도록 이끌었다. 


비록 오늘의 나는 아직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남들에게 다정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다. 좋은 남편도, 좋은 아들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좋은 아빠가 된다면, 자연스레 좋은 사람, 다정한 사람, 좋은 남편, 좋은 아들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혼자만의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다. 

장마가 시작되며 비가 유리창을 두드린다. 아들에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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