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상, 나무늘보로 다시 태어나련다.

by Liu Ming
살다 보면 '거슬리게 하는 놈들' 천지입니다.


저는 어릴 적엔 시간이 해결해 줄 줄 알았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 중국 유학까지 마치면, 혹은 조금 더 괜찮은 조직에 속하게 되면 이런 사람들과는 자연히 멀어질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살아보니 인생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이기적이거나 서열을 만들려는 사람들은 더욱 다양하고 교묘한 모습으로 제 곁을 맴돌았습니다. 마치 여름밤, 홀로 밝게 켜진 LED등에 몰려드는 나방 떼처럼, 제가 피하려 해도 그들은 어김없이 저를 찾아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약이다." 이 말은 이미 사십 년 넘게 제 귓가를 맴돌았기에 더는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어른이 되면서 달라진 점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대학생이 되고 나서 더 이상 ‘싸움을 잘하는 강한 남자’ 임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중학교 시절, 정글 같았던 서열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큰 해방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나빠진 점도 분명 있습니다. 특히 남자 어른들끼리 시도 때도 없이 인간적인 서운함을 토로하는 풍경은 어린 시절의 우정을 떠올릴 때마다 쓸쓸함을 안깁니다.


장맛비 속 높은 파도도, 얼음장 같은 호수도 친구와 함께면 두렵지 않았는데… 이제는 어렵게 시간을 맞춘 자리에서 서로에 대한 원망만 주고받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기에 작은 실수는 덮어주고, 의도치 않은 부족함은 감싸줘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인간적인 품격을 스스로 저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들에게서 풍겨오는 비열함과 냉소는 정신적인 악취처럼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특히 직장에서는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곤혹스럽습니다. 은근한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려 하거나, 자신의 티끌 같은 우월감을 과시하려는 행동, 혹은 동물들처럼 약자를 괴롭히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모습은 저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괴롭힘의 대상이 내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해야 할지, 그저 눈감은 채 그들 무리에 편입되기를 택해야 할지,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건, 저는 어머니에게 ‘인간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의 가르침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기에 스트레스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무리 지어 건재함을 과시하는 이들은, 언제나 비슷한 유형끼리 모여 아무 죄책감 없이 타인을 향해 날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들을 조용히, 그리고 단호하게 ‘거슬리는 놈들’이라 부릅니다.


아무리 제 마음을 다잡고 올바르게 살아보려 해도, 그들은 고통을 주고도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습니다. 그 결과, 그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피로는 온전히 제 몫이 됩니다. 감정의 기류에 예민한 저는 자주 지칩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심쿵이를 제대로 키워내야 하고, 회사도 한참 더 다녀야 하기에 무조건 지금 자리에서 버텨야만 합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다음 생엔 ‘웃상 나무늘보’로 태어나기로.



나는 관계의 초월자, 웃상 나무늘보입니다.


사진출처 : 123RF


정글 한복판, 나무에 매달려 세상을 바라보면, 바쁘게 움직이지 않는 것들이 없습니다. 토끼를 쫓는 재규어, 꿀을 나르는 벌들, 앞 다투어 자라나는 잎들조차 모두 나에게는 너무 빠르게만 보입니다.


나의 하루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느릿느릿하게 존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나는 하루를 천천히, 더 천천히 쪼개어 흘려보냅니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고, 보송보송한 털 위에 맺힌 이슬방울을 나는 가만히, 아주 오랫동안 바라봅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그러나 모든 것을 느낍니다.


나무늘보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세상엔 나보다 느린 존재가 없습니다. 하지만 잎사귀 하나를 맛보기 위해 한 시간을 들여 팔을 뻗는 그 과정은 조금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바람의 흐름을 느끼고, 잎사귀에 맺힌 작은 물방울을 관찰하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는 조용히 배가 불러 있습니다.


먹이를 씹는 일조차 서두르지 않습니다. 한 입, 한 입, 그 맛과 향을 온전히 느끼며 나의 삶을 음미합니다. 사람으로 살면서 식판 위의 음식을 정신없이 입에 밀어 넣던 기억은 이제 끔찍한 꿈처럼만 느껴집니다.


세상이 분주하게 돌아가는 동안, 나는 조용히 나의 나무 위에서 우주를 만들어냅니다. 나의 털에는 초록빛 이끼들이 자라나고, 작은 곤충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삶들을 만들어갑니다. 나는 그들에게 집이 되어주고, 그들은 나에게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나의 온몸은 하나의 작은 생태계이며,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삶의 터전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재규어의 날카로운 눈빛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가만히,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그 자리에 있습니다. 이끼가 자라난 내 털과 나뭇잎은 재규어의 눈에도 구분되지 않으니까요. 느림은 더 이상 나약함이 아니라, 내게 가장 강력한 방어막이 되었습니다.


최대한 느리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환한 웃음으로 살아온 저는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진짜로 지혜로운 존재는, 자신이 지키고 싶은 평화를 포기하지 않는 존재라는 걸.

느림은 도피가 아니라, 끝끝내 지켜낸 나의 품격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제 몸 위에 이끼가 자라도록 허락해 주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제 안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때엔, 오늘의 저처럼 당신에게도 환한 웃음을 나눠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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