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조개, 거거로 다시 태어나련다.

by Liu Ming
어른이 되면 마음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지는 줄 알았습니다.


십 대의 사춘기는 내 기억 속에서 여전히 선명합니다.

처음 느꼈던 두근거림, 그리고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마치 봄꽃처럼 피어나야 할 나의 십 대를 불꽃처럼 뜨겁게 태웠습니다. 그 감정의 불길 속에서 저는 스스로 눈을 가린 채, 짙은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이었습니다. 목적지와 다른 길들로 빠져 방황했고, 가보지 않아도 될 길에서 길을 잃었으며, 피해야 할 함정에 스스로 빠져 허우적댔습니다.


십 대에는 고난과 시련은 나를 더 크게 성장시킬 것이라 믿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아주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아직 학생인 저는 여린 마음에 받지 않아도 되는 상처를 받았고, 입히지 않아도 되는 상처를 친구들과 나누었으며, 또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길을 돌아갔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청소년기는 어른의 손을 잡고 멋진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요.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면서도 불안했던 이십 대의 청년기가 기억 속에 선명합니다.

나의 이십 대는 중국과 함께 했습니다. 중국은 나에게 날개를 달아주어 가보지 못했던 세상으로 날아가게 해 줬지만, 때로는 그 높은 곳에서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도 했습니다. 유학 시절, 곁에는 늘 친구들이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외로움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이십 대의 나는 남들과는 다른, 오직 나만의 멋진 삶을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의 중국은 그 시절의 나에게 충분히 광활했고, 사람들은 열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인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살아가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인들과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매일매일 크고 작은 언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부러 길을 돌아가는 삼륜차 기사 아저씨와 싸우는 일은 빈번했고, 월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집주인과 눈을 부라리며 싸운 것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십 대의 끝자락, 칭다오의 시골 마을.

혼자서 말없이 회사 차에서 비틀스의 헤이쥬드를 들며, 중국에서 독특한 삶을 만들겠다고 한 결심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성장하기에는 경험이 부족했고, 곁에는 이끌어줄 멘토가 없었으며, 무엇보다 오래되고 지독했던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떠나야 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철인 삼종 경기처럼 숨이 벅차오르던 삼십 대가 기억 속에 선명합니다.

나의 삼십 대는 아내와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 온 힘을 쏟았던 시간입니다. 무엇보다 부족한 나를 믿고 결혼해 준 아내에게 후회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오로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이 사회에서 실력을 쌓을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비열하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에게라도 고개를 숙이고 또 무릎을 꿇고 일을 배웠습니다.


일터는 전쟁터와 같았습니다. 일, 상사, 고객 모두 나를 힘들게 했지만, 십 년 동안 모은 돈으로 작은 집이라도 갖게 됐고 '남편'과 '아빠'로 불릴 수 있다는 행복에 때로는 괴로운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구두끈을 동여 메며 회사를 향했습니다. 십 대 그리고 이십 대에 할 수 없던 나에 대한 증명을 냉혹한 현장 경험과 총칼 없는 경쟁을 통해 삼십 대에 갑절로 치러냈습니다.


그렇게 사십 대가 되었습니다.

몸과 마음은 여전히 어린 시절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지만, 어느새 사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린 시절 상상했던 사십 대의 모습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도발에도 초연하며, 여유롭게 타인을 품어주는 너그러운 어른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사십 대가 되어보니, 마음이 무쇠처럼 단단해졌다거나 바다처럼 넓은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십 대는 십 대처럼 마음껏 실패할 자유도 없고, 이십 대처럼 자신의 신념을 목소리 높여 외칠 수도 없으며, 삼십 대처럼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세상과 맞설 수도 없는 나이입니다.


그저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내가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말없이 하루를 버텨내는 것, 그것이 저의 몫이 된 듯합니다. 사람들의 비난과 현실의 냉혹함 앞에서 초연하면서도 너그럽게 행동하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또한 세상에 지지 않고 스스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은데, 그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다음 생에는 파푸아뉴기니의 거대 조개, 거거로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거대한 껍질 안에 몸을 숨기고, 느리지만 흔들림 없이 바닷속에서 살아가는 삶. 더는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고요히 존재하는 그런 삶을 살아보겠습니다.




나는 거대조개, 거거입니다.


나는 파푸아뉴기니의 산호초 옆에 몸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대 조개, 거거입니다. 내 주변의 바닷속은 언제나 잔잔하면서도 생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붉고 노란 산호초가 파도의 리듬에 맞춰 부드럽게 흔들리고, 그 사이로 작은 물고기들이 군무를 추듯 무리를 지어 지나갑니다.


플랑크톤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점들이지만, 햇살이 바닷물을 가르며 들어올 때마다 은빛으로 반짝이며 물결처럼 흐릅니다. 거대 조개로 성장하기 위해 문어, 게, 물고기 그리고 불가사리의 공격으로부터 수십 년을 버텨내야 했지만, 산호초의 틈새를 타고 들어오는 바람 같은 물살이 나를 스칠 때면, 거대 조개로서의 삶이 만족스럽습니다.


나의 무게는 무려 200kg, 길이는 1.5m나 됩니다. 나는 이 바다에서 가장 큰 조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극히 드뭅니다. 나는 아주 거대한 산호초의 그늘에 가려져 있으니까요.


거대 조개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눈이나 귀 혹은 코, 그 어느 하나 갖고 있지 못하지만 필요성 또한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고 해서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낮에는 푸른색의 따뜻함이 나를 지키고 밤에는 주홍 빛의 신비로움이 나의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거대 조개가 된 뒤, 나의 시간은 인간의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흐릅니다. 나의 몸은 파푸아뉴기니의 바다 어딘가에 있겠으나, 나의 마음은 바닷속을 유랑하듯, 우주의 공허함을 여행하듯, 구름 위에서 폭신함을 느끼며 떠다닙니다. 마치 캐논 연주곡의 악보 위를 미끄러지듯,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기분입니다.


거대 조개인 나는 모든 사회적 책임에서 자유롭고, 세상의 그 어떤 원망이나 비난도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저 산호초 옆에 숨어 플랑크톤을 섭취하는 거대 조개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요즘 내 몸으로 작은 모래가 들어오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 거대조개로서 더 오래 살기 위해 진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이 흐르자, 내 조개 속의 진주는 수십 센티미터만큼 커졌습니다. 그만큼 나의 작은 불편함들을 참아내고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 결과일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으로 살았던 지난 삶, 특히 사십 대의 고뇌 속에서 이런 자세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며 머릿속을 스칩니다.


거대 조개인 제 진주는 영롱한 빛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조개의 껍질 속에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사람이 마음속에 진주를 품게 된다면, 대화를 통해 타인의 마음의 어둠을 걷어내고, 미소로 향긋한 향기를 선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음 생에 사람이 되어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 제 조개 속의 진주를 제 마음속에서 키워보려 합니다. 그때는 그 진주가 어쩌면 제 마음을 먼저 밝혀줄지도 모르니까요.


화면 캡처 2025-01-15 011302.png


이 글을 읽는 분들께도,

세상의 비난과 현실의 냉혹함 속에서도 당신의 마음속에 작은 진주가 자라날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진주가 언젠가 당신을 지켜줄 거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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