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마음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지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 느꼈던 두근거림, 그리고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마치 봄꽃처럼 피어나야 할 나의 십 대를 불꽃처럼 뜨겁게 태웠습니다. 그 감정의 불길 속에서 저는 스스로 눈을 가린 채, 짙은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이었습니다. 목적지와 다른 길들로 빠져 방황했고, 가보지 않아도 될 길에서 길을 잃었으며, 피해야 할 함정에 스스로 빠져 허우적댔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청소년기는 어른의 손을 잡고 멋진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요.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면서도 불안했던 이십 대의 청년기가 기억 속에 선명합니다.
나의 이십 대는 중국과 함께 했습니다. 중국은 나에게 날개를 달아주어 가보지 못했던 세상으로 날아가게 해 줬지만, 때로는 그 높은 곳에서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도 했습니다. 유학 시절, 곁에는 늘 친구들이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외로움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이십 대의 끝자락, 칭다오의 시골 마을.
나의 삼십 대는 아내와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 온 힘을 쏟았던 시간입니다. 무엇보다 부족한 나를 믿고 결혼해 준 아내에게 후회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오로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이 사회에서 실력을 쌓을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비열하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에게라도 고개를 숙이고 또 무릎을 꿇고 일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막상 사십 대가 되어보니, 마음이 무쇠처럼 단단해졌다거나 바다처럼 넓은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십 대는 십 대처럼 마음껏 실패할 자유도 없고, 이십 대처럼 자신의 신념을 목소리 높여 외칠 수도 없으며, 삼십 대처럼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세상과 맞설 수도 없는 나이입니다.
나는 거대조개, 거거입니다.
나는 파푸아뉴기니의 산호초 옆에 몸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대 조개, 거거입니다. 내 주변의 바닷속은 언제나 잔잔하면서도 생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붉고 노란 산호초가 파도의 리듬에 맞춰 부드럽게 흔들리고, 그 사이로 작은 물고기들이 군무를 추듯 무리를 지어 지나갑니다.
플랑크톤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점들이지만, 햇살이 바닷물을 가르며 들어올 때마다 은빛으로 반짝이며 물결처럼 흐릅니다. 거대 조개로 성장하기 위해 문어, 게, 물고기 그리고 불가사리의 공격으로부터 수십 년을 버텨내야 했지만, 산호초의 틈새를 타고 들어오는 바람 같은 물살이 나를 스칠 때면, 거대 조개로서의 삶이 만족스럽습니다.
거대 조개인 나는 모든 사회적 책임에서 자유롭고, 세상의 그 어떤 원망이나 비난도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저 산호초 옆에 숨어 플랑크톤을 섭취하는 거대 조개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요즘 내 몸으로 작은 모래가 들어오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 거대조개로서 더 오래 살기 위해 진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이 흐르자, 내 조개 속의 진주는 수십 센티미터만큼 커졌습니다. 그만큼 나의 작은 불편함들을 참아내고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 결과일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으로 살았던 지난 삶, 특히 사십 대의 고뇌 속에서 이런 자세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며 머릿속을 스칩니다.
거대 조개인 제 진주는 영롱한 빛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조개의 껍질 속에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사람이 마음속에 진주를 품게 된다면, 대화를 통해 타인의 마음의 어둠을 걷어내고, 미소로 향긋한 향기를 선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음 생에 사람이 되어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 제 조개 속의 진주를 제 마음속에서 키워보려 합니다. 그때는 그 진주가 어쩌면 제 마음을 먼저 밝혀줄지도 모르니까요.
이 글을 읽는 분들께도,
세상의 비난과 현실의 냉혹함 속에서도 당신의 마음속에 작은 진주가 자라날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진주가 언젠가 당신을 지켜줄 거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