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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일 제주 협재 일기 이틀 <여행의 목적>

첫 한달살이, 2022.4.25일부터 5.27일까지 제주 일기입니다.

by 준환

어제는 잠들기까지 한참 걸렸다. 설렘이었을까 뒤척이다 겨우 든 잠이 얼마 되지 않아 깨었다. 간밤은 날씨도 사나워 세찬 비바람이 아침까지 그치지 않았다. 삼다(三多)에서 바람을 몸소 느낀 밤이었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일어나 이번 여행의 목적을 생각했다.


처음 한달살이를 준비하며 든 생각은 너무 길지 않을까였다. 일부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심심하지 않겠어?’ 그래서 첫째 목적은 무엇이든 즐겁게 받아들이기이다. 그동안 과한 자극에 익숙했다. 이제는 일상에서도 사소한 재미를 느끼고 싶다. 그래서인지 아침 새소리가 반갑다.


둘째는 싸우지 말기. 어제도 언짢은 상황이 있었다. 아내는 비바람이 쏟아지는 날씨에 혼자 가서 차 가져와달라고 했다. 장을 보기 위해 어차피 원래 주차되어 있던 데로 돌아가야 했는데 불편함과 서운함이 뒤섞였다. 이런 감정은 평소보다 더 자주 생기겠지. 여행지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려니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셋째는 자연과 전통 즐기기. 테마 박물관이나 체험은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제주도는 더 다양하니. 하지만 오름이나 섬, 재래시장 등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곳을 최대한 찾아가려 한다.


넷째는 시간 지키기. 3~4월 우리 가족은 아이의 일정을 중심으로 모든 게 돌아갔다. 유치원 등원과 하원, 학원. 비교적 규칙적인 일상이었다. 이제는 모든 일정이 자율이다. 그래서 여행지이지만 아이와 매일 공부하기로 약속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에는 늦지 않게 자도록 하자.


다섯째 손님들과 거리두기. 일정 중에 세 가족이 올 예정이다. 제주도에 장기체류한다니 짧게라도 함께하길 원했고 우리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지내고 싶어 흔쾌히 수락했다. 다만 원하는 게 달라 계속 함께 다니는 건 어렵지 않을까. 낮은 각자에게 맞는 여행, 밤은 즐거운 대화의 시간으로 분리하고 싶다. 잘 될진 모르지만.


사실 오기 전에 여행의 목적 따위는 없었다. 즐기는 것 외에 다른 게 있을까. 또 사고 없이 왔던 모습 그대로 돌아가면 충분하다.



레고 테마파크


늦은 아침을 먹었다. 집에서처럼 누룽지를 끓였는데 어떤 이유인지 육수처럼 뽀얀 국물이 훨씬 구수했다.


목적지는 레고 테마파크. 한참을 달려 도착했으나 뭔가 이상했다. 안내받은 곳이 보이지 않아 다시 확인하니 내비게이션 주소가 업종이 비슷한 다른 가게 이름으로 입력되어 있었다. 어제는 아내의 건망증을 놀렸는데, 오늘은 반대 상황. 여행에서는 실수에 관대해야 한다. 예상치 못하게 늦어져 입장권만 끊고 가까운 식당으로 갔다.


입맛 까다로운 아이와 같이 다닐 때 가장 어려운 건 음식 고르는 일이다. 좀체 새로운 것을 먹으려 하지 않아 최대한 입에 맞게 주문하지만 남기기 일쑤다. 지금 들어온 곳은 고기국수 전문점. 그나마 잘 먹는 비계 뺀 살코기와 국수만 골라줬으나 한참 깨작대다 물까지 쏟았다. 참다못해 폭발한 엄마 대신 아이를 달래 간신히 한 접시 먹도록 했다.


테마파크는 대단한 전시물이 많았다. 관람 한 시간을 예상한 어른들도 두세 시간은 기본이었다.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성이나 캐릭터, SF 영화 스타워즈의 대형 전함 등 가상 소재의 창작물부터 실제 건물이나 풍경을 본뜬 것까지 엄청난 창의력의 산물이었다. 구경 온 관람객 모두 감탄을 연발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다양한 회사의 브릭 제품이 특색을 유지한 채 대부분 호환된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전시물 관람 후 체험관으로 갔다가 한 시간 반 동안 푹 빠져 있던 야니를 간신히 꾀어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은 수육을 삶았다. 앞다리 살이 부드러운 맛있는 한 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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