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토) 맑음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아쉬움 때문인지 서울에 남겨둔 텃밭 작물이 궁금해선지는 알 수 없다. 분리수거하려 집을 나섰다. 아침이지만 날씨가 습해 걷는 동안 조금씩 땀이 흘렀다. 길가 후박나무 군락이 나타났다. 왕후박나무에 비한다면 별것 없으나 한 그루 한 그루가 나뭇잎으로 만든 공 같아 이채로웠다. 집으로 이어진 내리막길에 섰다. 아침은 선명한 노란 햇살만 보아왔는데 안개처럼 희끄무레하기도 했다. 매일 드나들던 집 앞 좁은 길. 다시 보니 트럭도 들어갈 수 있는 넉넉한 너비다. 그동안 왜 항상 더 위쪽까지 갔다가 돌아 내려왔을까. 여행 마지막, 느끼지 못했던 면들에 눈이 뜨였다.
짐 정리하다 안내 카탈로그가 있어 펼쳤다. 입주와 퇴거 시 할 일, 기름과 가스 보충 방법이 쓰여 있다. 맨 뒤에는 주변 가볼 만한 곳이 기록되어 있었다. 추천하는 바닷가는 은모래해변과 송정해변. 두 곳은 바지락잡이 체험도 가능하단다. 미리 읽어 두었다면 친구들이 왔을 때 좀 더 즐길거리 많은 바닷가에 갔을 거란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지 못한 곳이 비단 이곳뿐이었겠는가. 금산과 보리암, 지족해협 농가섬, 전망대, 바래길, 노도문학관까지 아직 많이 남았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
다시 볼 그때를 위해 좋은 모습 간직하길. 안녕 남해.
후기
남해는 제주도와 강릉에 이어 세 번째 한달살이였다. 온전한 한 달은 아니지만 회사원에게 보름은 한 달에 비견할 만하다.
지난해 겨울, 올 여름 휴가를 계획하며 두 번의 한달살이가 떠올랐다. 그 이후 짧은 여행들만 가능했던지라 질리도록 머물고 싶어 다시 긴 여행을 준비했다.
여러 군데를 찾아보았다. 강릉, 양양, 부산, 거제, 통영, 여수, 산청, 변산반도 등 짧게 다녀왔거나 한달살이 한 장소들이 후보지였다. 그곳들을 두고 남해를 택한 건 바닷가에 있는 가장 시골이기 때문이었다. 같은 이름 ‘남해’로 인해 유달리 익숙해진 점도 이유였다.
아이에게 물었다. “어떤 집이 좋아?” 문을 열면 잔디밭 있던 제주 협재 이층 집을 항상 그리워했던지라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마당 있는 집.” 예약 홈페이지를 찾았다. 남해가 유독 많이 올라온 곳에서 열 군데를 골랐다. 창선도 해안가 마을, 은모래해변처럼 바다와 남해군 명소에서 가까운 곳들이었다. 기간은 칠월 말부터 팔월 초.
성수기 숙박료는 비수기 두 배가 넘었다. 게다가 여름휴가 기간 짧게 체류하는 손님들을 받아 한 철 장사 하려는 집주인에게 이 주 임차인은 달갑지 않았다. 대부분 응답이 없거나 임대가 어렵다는 답장이었고, 한달살이만큼 숙박료를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 창선도 언덕 비탈에 있는 집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 숙소가 결정되었다.
남해군은 남해도와 창선도로 이루어졌다. 반달 살이 결과 큰 남해도보다 작은 창선도가 잘한 선택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지족리는 항구를 품은 데다 남해도와 연결된 다리로 오가는 사람이 많아 편의시설이 잘 갖춰졌다. 게다가 사천시와 가까웠다. 집에서 이십 분 거리인 삼천포대교를 건너면 대형마트와 수산시장에 갈 수 있었다. 면사무소 있는 상신리가 사천에서 더 짧으나 시골 분위기가 덜하겠고, 신흥항에서부터 단항까지 창선도 왼쪽 해안도로에 있는 고급 펜션들은 한가한 분위기가 더하나 편의시설이 멀었다.
남해군에서 가볼 만한 곳은 다양했다. 고찰과 해변, 휴양림은 부족하지 않았고 죽방렴은 남해만이 가진 매력이었다. 사시사철 어종이 다양하고 낚싯배로 멀리 나가지 않아도 밀물 방파제 근처에서 고기가 잘 잡힌다. 다만 박물관이나 전시관은 관광객이 많지 않은 탓인 듯 규모가 작고 볼거리가 적었다. 시골 생활이 그립고 낚시를 좋아한다면 강릉보다 괜찮은 선택일 거다.
※ 삼십 삼일 제주 협재 살이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