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목) 맑음
신수도는 사천에 있는 신수도차도선여객터미널을 통해 하루 여섯 번 오간다. 차도는 신수도 부속 무인도. 삼천포항 끝자락에 있는 터미널은 작은 여객선 한 척 댈 수 있는 부둣가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섬에 있는 야영장이나 민박집을 이용하는 여행객이 많아 금세 꽉 찼다. 일찍 온 우리는 열 시 반, 미처 타지 못한 차량은 점심때가 넘어서 있는 다음 배편을 줄지어 기다린다.
※ 선미가 열리면 차는 서너 대가 일 층 갑판에, 승객은 일 층 가장자리 벤치와 좁은 선실, 이층에 있는 평상에 승선한다.
날씨가 맑아 바다를 볼 겸 이 층에 올랐다. 사천시와 남해군 가까이 둘러싸여 한적하나 외롭지 않은 바닷길을 십 분 달렸다. 높은 언덕과 산이 길쭉하게 늘어선 섬은 모두 합쳐 일 제곱킬로미터 남짓, 가구 대부분은 여객선이 들어오는 신수항 근처에서 가장 큰 마을을 이루고 섬 군데군데 방파제 인근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신수항 왼쪽 끝은 해안전망대, 오른쪽은 왕가산을 지나 섬에서 가장 높은 대왕기산이 있다. 산은 어른 걸음으로 꼬박 네 시간이 걸려 아이와 아내에게는 무리였다.
구름 낀 하늘, 짧은 전망대 길로 갔다. 신수항 마을 뒤 능선을 따라 난 콘크리트 포장도로 양옆 언덕에는 고사리와 고구마가 심어졌고 드러난 누런빛 흙과 잔돌이 척박한 섬 환경을 말해주었다. 오르막길 꼭대기에 긴 의자가 하나 있었다. 아까부터 걷기 힘겨워했던 두 사람 볼멘소리를 모른 체 했으나 더 그럴 수 없었다. 식당이 하나도 없어 의자에서 잠시 쉬며 싸간 음식으로 요기했다. 전망대는 십 분 정도 더 가야 한다. 언덕을 내려가 작은 몽돌해변에 아이와 아내를 두고 혼자 천천히 오른 그곳에는 이국적인 하얀 액자 구조물과 정자가 어울린 듯 그렇지 않은 듯 함께 있었다. 앞으로 다가갔다. 경계 너머로 멀리서는 보지 못했던 바다 위 빨간 등대와 멀리 녹색 빛 섬이 함께 나타났다. 마치 잘 그린 풍경화처럼. 등 뒤 삼천포 화력발전소 역시 자연의 일부였다.
아내와 아이를 만나 마을 뒤편 순환도로를 따라 걸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고사리와 고구마밭만 여전하다. 아마 최근까지 섬 주민들 주식이 아니었을까. 다만 삶은 넉넉한 듯 농가와 농막은 허름한 곳이 없었다. 한 시간 남짓 후 항구로 돌아왔다. 둘은 그만 걷고 싶은 눈치. 배 출발까지 아직 두 시간 남았다.
마을 뒤편 순환도로를 따라가다 중간에 내려왔던 길을 혼자 다시 올랐다. 대왕기산은 시간 내에 돌아오기 어려워 섬 조망이나 하려 가까운 왕가산에 갔다. 콘크리트 언덕길을 따라 정상에 도착했으나 이정표 없이 빽빽한 나무와 덩굴에 사방이 가렸다.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적막한 곳이다. 반대편으로 내려갔다. 정상에서 바닷가까지 차 한 대 간신히 지날만한 너비는 그마저 가파르고 급히 굽었다. 경운기라면 모를까 여느 차량은 꼼짝없이 갇혔을지 모른다. 반가운 해안도로에 서서 어디로 갈까 주저하고 있을 때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배 들어왔어. 어디야?” 아차, 항구에서 헤어질 때 배가 정해진 시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많이 떨어져 있는데. 어쩌지.” 어림잡아 삼십 분 거리이었다.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에 애써 화를 누그러뜨리는 목소리. “기다리면 빨리 올 거라고 했지.” 부리나케 돌아가는데 다시 연락이 왔다. “예정대로 한 시 반 출발이래. 천천히 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죽방렴이 있었다. 모양이 어림 짐작되는 위치까지 썰물에 드러난 몽돌해변을 따라 걸었다. 일렬로 참나무 세운 기둥에 대나무로 그물을 엮어 만든 전통 어구는 ‘V’ 자 모양이다. 꺾인 쪽 끝에 작고 둥그런 공간이 있고 여닫이문 달렸다. 썰물 때 닫힌 공간 안쪽으로 그득히 잡힌 멸치는 온전한 비늘 덕에 상품성이 높다. 좀 더 곁에서 자세히 보고 싶었으나 남은 건 이제 한 시간 정도.
※ 남해 곳곳에 있는 죽방렴은 1469년 《경상도 속찬지리지》<남해현조 편>에도 나올 정도로 기원이 오래되었다. 지금은 바다 물살이 세고 너비가 삼백오십 미터에 불과한 지족해협에 많이 남아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한낮 항구 옆 공터 벤치에는 아내와 아이 둘 뿐이었다. 휴대전화 말고는 별달리 할 것 없던 모양. 땀에 흠뻑 젖은 얼굴을 찬물로 조금이나마 식히고 배에 올랐다. “섬은 배에 탄 게 가장 기억에 남네. 경치는 집 앞이 더 좋아.” “그래도 당신이 재미있었으면 그걸로 되었어.” 아내의 애써 괜찮다는 말이었다. 시간이 다시 주어진다더라도 같을 테지만 미안했다.
사천항으로 들어와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입맛 까다로운 아이가 고른 꼬마김밥을 찾아 여러 분식집에 들렀다. 아직 오후 두 시. 항구 식당들 절반은 벌써 정리하는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어선 조업에 맞추어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열기 때문인 듯, 결국 여행객 많은 회 식당에 들어갔다. ‘굴항식당’. 우연히도 며칠 전 매운탕 거리를 샀던 삼천포수산시장 앞에 있는 가게다. 멍게비빔밥과 메뉴판에도 없는 갈치구이를 시켰다. 여러 토막과 덤으로 나온 얼큰 매운탕, 넉넉한 인심에 아침도 걸러 주린 배를 가득 채웠다.
삼천포 옆 고성군에서는 공룡 자취를 느낄 수 있다. ‘까마등산’ 구불구불한 산길 너머 바다 바라본 곳에 선, 박물관부터 해안까지 이른 공원에 모두 담겨있다. 점점 오른 낮 기온이 삼십오 도에 가까워 바닷가 발자국 화석은 남겨두고 내부만 관람했다. 곳곳에 남은 지층 단면과 십칠 미터 크기 초식공룡에 작은 육식공룡이 무리 지어 덤벼드는 화석이 인상적이었다.
석양 깔리는 하늘, 지족해협 죽방렴에 갔다. 그곳에는 해안 가까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섬이 있다. 도롯가에서 연결된 다리는 죽방렴 위를 지나 ‘농가섬’이라 이름 붙은 곳에 닿았다. 매일 사람들이 드나들던 게 생각나 입구로 갔으나 잠겨진 철창문에 가로막혔다. 큰 아쉬움에 잠시 머물렀다 떨어지는 발간 해를 보며 내일을 기약했다. (작은 섬은 카페가 있는 데이지와 양귀비 가득한 정원이다)
오후 여섯 시. 오르락내리락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려다 왕후박나무가 떠올랐다. 집이 있는 지족, 그리고 신흥, 광천, 서대, 율도, 대벽 마을을 차례로 지나 삼천포대교 인근 단항까지 갔다. 십 미터 조금 모자라는 높이, 가로가 그 두 배인 나무는 오백 년도 넘는 시간 마을 어귀에 서서 사람들이 의지할 신수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쉬어갔다고 전해지는 곳은 지금도 주민들이 매년 건강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올린다.
오늘도 화덕 가에 앉았다. 이제는 아내가 더 불놀이에 빠졌다. 종이 상자를 한가득 태워 사람 키만 한 불을 만들며, 여행의 끝에서 생긴 아쉬움을 태워 날리는 의식 같다고 말했다. 까만 밤바다에 밝은 주황 화톳불과 함께 원시 부족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