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금) 맑음
남해에 와서 우리 부부는 각자 운전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아내는 서울에서 여러 번 사고가 났다. 난폭 운전자의 뺑소니, 복잡한 길 주행과 좁은 곳 주차 중 파손 등. 남해 역시 처음에는 버거웠다. 심한 굴곡과 잦은 오르내림, 가로등 하나 없는 밤까지. 하지만 아내는 한 주 동안 회피하지 않았다. 어려움은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즐거움으로 변했다고 한다. 반면 난 운전이 무서워졌다. 십여 년 된 차는 항상 신경 쓰였고, 남해까지 여러 번 장거리 운전과 언제 이탈할지 모를 집 앞 좁은 포장도로는 가능하다면 회피하고 싶었다. 다행히 운전에 익숙해진 아내로 인해 부담을 덜었고 원할 때 한 잔 할 수 있어 감사하다.
마지막 날. 한여름 더위를 피해 숲으로 갔다. ‘국립남해편백자연휴양림’은 남해도 남동쪽, 창선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입구로 들어서 맑은 시내에 걸친 다리를 건너 넓은 나무 덱이 있는 곳에 자리 폈다. 아이는 해변에서 형, 누나와 같이 있던 시간이 그리워 그때처럼 셋이 게임 하자 졸랐다. 네 박자 맞춘 손동작과 함께 스스로 지은 별명을 말하는 놀이. 처음은 남해군 동네 명칭을 따서, 다음은 그간 반달살이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로 자신을 나타냈다. 송정해변의 ‘송정’, 죽방렴의 ‘죽방’, 한여름 밤 불놀이 ‘장작’. 단순한 놀이지만 틀리기 일쑤였다. 실수마다 깔깔 웃음소리에 엄마 아빠와 아이, 삼십 년 이상 나이차는 같은 즐거움으로 메워졌다.
휴양림 뒤편은 넓은 숲길이 있다. 가장 많은 편백과 곰솔, 졸참나무, 삼나무 네 수종이 군데군데 무리 지어 녹색 잎사귀 지붕을 이루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나뭇잎 하늘에는 미처 다 가리지 못한 빛살이 점점이 박혀있었다. 꼭 밤하늘 별빛 같다.
길이 끝나는 지점 여러 갈래 숲길로 갈라졌다. 잠시 섰다 더 가지 못하고 내려와 체험관으로 갔다. 아이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오르골, 열쇠고리를 두고 나무쟁반을 골랐다. 처음 해봄에도 제법 익숙한 못질로 하나를 금세 만들었다. 며칠 말미가 있다면 하루 정도 묵으련만 남해에서 시간은 반나절 남았다. 들어올 때만 해도 간간이 보인 차들이 어느새 많이 늘었다. 일부러 멀리서도 온다는데, 오래 있지 못해 아쉬웠다.
휴양림을 내려오니 작은 촌락이 나왔다. 집 근방은 비탈에 돌이 많아 고사리만 자랐다면 하천이나 저수지 가까운 이곳은 논이 죽 이어졌다. 봉화리 산골 내산마을 제법 넓은 들판에는 상한 데 하나 없는 파릇파릇한 벼가 자랐다. 산과 들, 바다, 개펄이 가까이 모인 창선도는 육지를 축소해 놓은 듯하다.
‘화천’을 따라 내려가다 오른편 독일로로 갈라졌다. 큰 언덕 꼭대기에 독일마을이 있었다. 십 년 전 아내와 이미 와봤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때는 이국적인 집과 펜션이 몇 채 있었을 뿐이었다. 그 사이 규모 커진 마을에는 이색적인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가 늘어났고, 집집마다 상아색 나무 펜스와 주황색 삼각 지붕으로 작은 독일이 되었다. 문득 동유럽을 여행하며 먹던 학센이 그리웠다. 소금과 향신료에 절인 돼지 다리를 오븐에 익힌 다음 맥주 부어 다시 굽는 음식은 그곳에서 매우 대중적이다. 다만 좋은 맛을 내려면 많은 수고와 시간이 든다. 한국의 작은 독일은 어떤 맛을 낼까. 쿤스트라운지, 언덕 있는 입구에서 이 층 크기였던 건물은 반대편 바다쪽에서 서너 배 높이 절벽에 가까웠다. 멀리 항구와 파란 수평선을 마주한 창가에 앉아 시원한 맥주와 학센, 샐러드를 시켰다. 맥주를 한입 들이키고 껍데기와 함께 저민 갈색 다리 살을 집었다. 그때와 같진 않았으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파독전시관으로 갔다. 위쪽 입구로 들어가 여러 사진이 걸린 비탈진 통로를 지나면 본 전시실이 나온다. 광부가 쓰던 도구들과 한국에서 가져간 물품 그리고 독일에서 마련한 세간살이가 놓여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파견인들 인터뷰 장면이 재생되었다. ‘독일에 간 건 잘한 선택, 돌아와 남해에 정착한 것도 잘한 선택, 남해는 어머니 품처럼 따뜻한 곳’. 먹을 것도 없이 일 년 치 소득 76달러에 불과했던 `60년대, 젊음을 바친 이들에게 조용히 찬사를 보냈다. 양지바른 곳 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에 만들어진 평온한 집들, 그동안 고생에 작은 보답이 되었을지.
다섯 시가 다 되었다. 돌아오는 길 어제 굳게 닫혔던 죽방렴에 갔다. 만조기, 가까스로 위만 조금 남긴 채 물이 찼고 바램과 달리 출입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가던 방향으로 잠시 달려 바다 건너편 집이 바라보이는 곳에 내렸다. 아내가 남해 생활 내내 찬탄하던 석양과 은빛 바다를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겼다. 해변으로 내려간 아이는 물수제비를 떴다. 역광을 받아 주광색과 회색 음영으로 도드라져 역동적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지난 시간을 이야기 나누었다. 남해로 정한 이유, 창선리에 집을 구한 까닭, 가장 좋았던 장소, 재미있던 일, 앞선 두 번 한달살이와 비교까지 이 주간 매일이 한 장면씩 되살아났다. 마지막은 다음 여행지에 대해. 아마 주문진이나 대천, 아니면 산청쯤이지 않을까. 일정은 이 주가 아닌 그 절반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