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시골집 마당의 하루
그리고 시골집 마당의 하루
아내는 다급하게 물었다.
“어제 매실 어떻게 했어?”
“냉장고에 넣어 뒀는데.”
“안 되겠다, 가 보자.”
봄에 담가 두었던 매실 진액을 전날 항아리에서 덜어냈는데, 설탕이 부족했는지 발효가 심해져 신맛이 강했다. 아내는 그것을 페트병 두 개와 꿀병 하나에 나누어 담았다. 페트병 하나는 시골집 냉장고에 두고, 나머지는 집으로 가져왔다. 오는 동안 혹시 발효가 심해져 병이 터질까 걱정되어 뚜껑을 살짝 열어 둔 채였다. 항아리에 남은 매실은 그대로 덮어 서늘한 방으로 옮겨 놓았다.
시골집에 도착하자 아내는 배추밭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종묘상에서 사다 심은 배추 서른 포기. 아내가 잎을 들춰 보더니 소리쳤다.
“어, 배추벌레! 빨리빨리 와봐!”
짐을 옮기던 나는 서둘러 장갑을 끼고 모기장이 달린 모자와 장화를 챙겨 밭으로 달려갔다. 배추는 심은 지 20일쯤 되어서 잎이 무성하게 자라 서로 겹쳐 있었다. 하지만 그사이 벌레들이 먼저 잔치를 벌인 모양이다. 작은 구멍이 뚫린 잎이 곳곳에 보였고, 큰 구멍이 숭숭 난 잎도 있었다. 잎 뒤에 붙어 있던 배추벌레 두 마리를 종이컵과 나무젓가락으로 조심스레 담았다. 젓가락 끝이 뭉툭해 잘 잡히지 않아 밀어 넣듯 담아야 했다. 그날 배추 두 포기에서 배추벌레 네 마리와 달팽이 한 마리를 잡았다. 순간 밟아 죽일까 하다가, 수도가로 가서 하수도로 흘려보냈다.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아내가 또 불렀다.
“케일에도 있다!”
같은 날 심은 케일 열 포기에도 배추벌레가 기어가고 있었다. 8월에 심은 케일은 진딧물이 가득해 뽑아 버렸는데, 이번엔 잘 자라나 싶었더니 벌레가 붙었다. 큰 잎들을 갉아먹는 걸 보니 맛있는 걸 귀신같이 알아보는 모양이다. 두 마리를 잡아 종이컵에 넣으며 혼잣말을 했다.
“너희는 케일을 먹는데 왜 배추벌레라 부르니?”
결국 이번에는 발로 밟아 즉사시켰다. 매실 진액이 폭발이라도 했을까 걱정되어 급히 왔는데, 정작 하고 있는 일은 벌레 잡기였다. 냉장고 문을 열어 보니 매실 병은 얌전히 누워 있었다. 뚜껑을 열어도 아무런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밭으로 나가 보니 이틀 전 뿌린 가을 무가 벌써 떡잎을 내밀고 있었다. 가는 줄기 끝에 두 장의 잎을 달고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아내는 또 들깨밭을 가리켰다.
“이것들도 좀 세워 줘!”
들깨가 무 밭으로 기울어져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지줏대를 양쪽에 박아 끈으로 묶어 세워 주니 밭이 한결 정리되어 보였다. 옥수수 옆에서는 봉숭아가 옥수수만큼 자라 꽃을 피웠다. 떨어진 씨앗에서 돋아난 봉숭아 여러 포기가 하얀 꽃, 붉은 꽃을 저마다 피우며 가을을 채우고 있었다. 백일홍도 옆에서 마지막 힘을 다해 곁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있다.
그때, 언제 왔는지 마당양이 치량이 가 나타났다. 우산을 펼쳐 놓은 안쪽에서 꼬리를 살랑거리며 고개를 내밀었다.
“치량이 왔네, 밥 줄까?”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치량이는 꼬리를 바싹 세우고 방문 앞에 앉았다. 딸이 사놓은 과자를 몇 알 섞어 주니 과자만 골라 먹는다. 녀석 맛있는 건 알아가지고.
시골집을 떠나려는 순간, 아내는 치량 이를 향해 말했다.
“잘 있어, 집 잘 지키고.”
시골집의 하루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