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혜산 둘레길에서 죽순을 만나다
초여름, 대숲이 내어준 선물 /
원지를 지나던 날, 아내가 말했다.
“여기 유명한 빵집이 있다더라. 잠깐 들러서 빵 좀 사 갈까?”
양천강 변을 따라 남강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한 작은 빵집이었다.
입구 앞 안내판에는 오늘 판매할 빵과 커피 종류, 가격이 가지런히 적혀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지만 가게 안은 어딘가 허전했다.
기척을 하자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신사분이 주방에서 나왔다.
“빵을 사러 왔습니다.”
“지금은 빵이 없습니다. 오후에 나와요.”
사장님은 미안한 듯 웃으며, 빵이 필요하면 전날 밴드로 주문하면 오후에 찾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밀과 천연발효제만을 사용하는 빵이라며, 화학첨가물은 일절 쓰지 않는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강 건너 보이는 저 산이 엄혜산이에요.”
그는 성철 스님의 법외사까지 이어지는 둘레길이 내년 봄 완성될 거라며 자랑스레 말했다.
남은 호밀빵 두 개를 사니, 사장님은 어제 만든 거라며 길쭉한 쿠키 두 개를 넣어주었다.
그 작은 친절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6월 초 어느 일요일.
늦은 점심을 마치고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문득 빵집 사장님의 말이 떠올랐다.
‘엄혜산 둘레길.’
우리는 양천강 현수교(토현교) 앞에 차를 세우고 강을 건넜다.
남강과 합류하는 지점에서 흙길 산책로가 시작되었다.
대나무숲 사이로 이어지는 그 길은 범륜사까지 이어졌다.
그때였다.
대나무숲 사이로 뾰족하게 솟은 죽순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먼저 꺾어간 흔적도 있었지만, 여전히 많았다.
아내와 나는 대나무 밭으로 들어갔다.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나 욕심이 앞섰다.
결국 모자를 벗어 그 안에 죽순을 차곡차곡 담았다.
그날의 산책은 그렇게 ‘죽순 사냥’으로 끝났다.
집에 돌아와 삶고, 된장국에도 넣고, 나물로도 무쳤다.
아삭한 식감과 고소한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며칠 뒤, 시골집에 다녀오다 엄혜산 죽순 사냥에 나섰다.
이번에는 제대로 장비를 챙겼다.
배낭, 비닐봉지.
양천강변 잔디구장 근처에 차를 세우고 세월교를 건너 대밭으로 들어갔다.
주말보다 한적한 평일 오전, 죽순들은 아직 손을 타지 않았다.
아내가 죽순을 꺾어 던지면 나는 껍질을 벗겼다.
손끝이 아파 차 키로 벌려 벗기니 한결 수월했다.
배낭 가득, 검은 봉지까지 가득 채웠다.
오는 길에 처형 집에도, 앞집에도 나눠주었다.
냉동실에는 삶아서 우려낸 죽순이 지퍼백 가득 잠들었다.
그날 밤, 아리게 쑤시는 엄지손가락을 바라보며 웃음이 났다.
세 번째 죽순 사냥은 마치 예고된 듯 이어졌다.
이른 아침, 우리는 더 큰 배낭과 시장바구니, 긴소매 옷, 칼까지 챙겼다.
대밭 입구에 도착하자 다른 사람 두 명이 다가왔다.
“저 사람들도 죽순 캐러 오는 건가?”
잠시 멈칫했지만, 곧 숲 속 산책길로 사라졌다.
아내는 죽순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며 내게 던졌고
나는 칼집을 내 껍질을 벗겼다.
일사천리였다.
배낭과 바구니가 가득 차자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눈앞에 보이는 죽순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죽순이 얼굴을 내밀며 “나도 데려가” 하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하루 종일 죽순을 손질했다.
소금 간을 살짝 하고 20분 정도 삶은 뒤, 물에 우려내기를 반복했다.
우려낸 죽순은 지퍼백에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손가락 마디가 욱신거렸지만
초장에 찍어 먹는 아삭한 죽순의 식감은 그 고생을 잊게 만들었다.
그날 채운 냉동실의 죽순은
그 해 여름부터 겨울까지,
우리 식탁의 든든한 밥 친구로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