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실업급여일이 만든 가족의 리듬

한 달에 두 번의 만남

by 허정호

한 달에 두 번의 만남

막냇동생이 입국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한 달에 두 번’의 만남을 약속했다.

마치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리듯, 정해진 리듬이었다.

한 번은 동생이 실업급여를 받는 날.

다른 한 번은 일주일 뒤, 우리가 동생 부부를 초대해 점심을 함께 하는 날이다.

동생은 입국과 동시에 백수가 되었고, 나 역시 백수지만 동네가 달라 자주 얼굴을 보기 어렵다.

그래서 동생이 실업급여를 받는 날을 ‘만남의 날’로 정했다.

나는 농담처럼 말했다.

“실업급여 언제 타?”

그렇게 만들어진 ‘만남의 장’.

그날은 맛집에서 밥을 먹고, 멋진 카페에서 차와 디저트를 곁들여 오후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다음 주엔 우리가 동생을 불러 밥과 차를 산다.

지난해엔 이 만남을 열 번이나 이어갔다.

어느새 이 리듬이 우리 가족의 일상이 되었다.

설 명절에 김해 동생 식구들이 독감으로 함께하지 못했기에,

3월 막냇동생이 입국하자 13명의 가족들이 단톡방에서 왁자지껄 날자를 잡고 메뉴를 정한 뒤 모였다.

그간 밀린 이야기와 게임으로 시끌벅적한 하루를 보냈다.

설 모임을 마치고 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실업급여 언제 받니?”

“다음 주에 뵙시다. 시천에 있는 맛집 어때요?”

속전속결이다.

“형님, 이번에 새로 산 차도 데리러 와 주세요.”

하지만 그날은 우리가 ‘어반스케치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식당까지 가기엔 시간이 늦었다.

결국 집 근처 절집 아래에 있는 비빔밥 맛집으로 장소를 정했다.

식당에 도착하니 입식 테이블이 하나 비어 있었지만,

휴가 중이던 딸까지 다섯 명이라 좌식 방으로 안내받았다.

주문이 늦어 딸이 직접 나가서 주문을 했다.

좁은 방, 문지방에 걸린 엉덩이, 창가 쪽으로 테이블을 틀며

서로의 자리와 불편함을 배려하는 모습들이 소소한 웃음을 자아냈다.

“삼촌, 육전이 먹고 싶어요.”

딸이 말했다.

“그건 비싸니 부추 해물전 먹자.”

“7천 원 아껴서 뭐 하게요?”

“다음 입국 때 너 키링 사주려고!”

작은 방 안에 웃음이 터졌다.

해물전은 금세 사라졌고, 비빔밥이 나왔다.

각자 고추장을 적당히 넣어 비벼 먹으며, 몇 번이나 반찬을 리필해 달라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청곡사로 산책을 나섰다.

연못에 비친 월아산과 절의 그림자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종무소 마루에 걸터앉아 쉬는데, 옆 건물에 새로 생긴 찻집이 눈에 들어왔다.

‘보이차 무료로 드시고 가셔요.’란 문구가 보였다.

들여다보니 메뉴판도 없고, 안에는 스님과 보살님 몇 분이 도란도란 이야기 중이었다.

“불교와 천주교는 잘 지내는 것 같지 않아요?”

성당을 다니는 제수씨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성당이 법당 옆으로 이사 온 이후로는 부처님 오신 날과 크리스마스마다 서로 꽃바구니를 보낸답니다.”

찻집에 들어서니 마루는 윤이 반질반질 났고, 의자를 당기자마자 지네가 인사를 했다.

“지네다!”

“절에서 키우는 겁니다.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스님의 센스 있는 대답에 웃음이 꽃 피었다.

보살님이 은은한 갈색 보이차를 가득 담은 유리 주전자와 튀긴 강냉이를 가져다주며 말했다.

“차는 더 갖다 드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잠시 후 젊은 여인 둘이 들어와 가져온 카스텔라를 스님과 함께 나누어 먹더니 보살님이

우리에게도 두 조각을 나눠주며 “차를 더 드릴까요?” 했다.

모두가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주전자가 바닥을 보일 무렵, 고민이 생겼다.

‘그냥 나가도 될까? 보시통이 있는데 아무도 보시를 하지 않네...

그래도 내 마음이니 하고 나가야겠다.’

가방을 뒤적이다가 아뿔싸, 지갑이 차에 있었다.

결국 “잘 먹었습니다.” 인사만 하고 나왔다.

‘다음엔 지갑 꼭 챙기자. 부처님 오신 날엔 절밥 먹으러 오자.’

혼잣말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절간을 벗어나자 동생이 수수께끼를 냈다.

“형님, 매트 5m가 5만 원이면 10m는 얼마게요?”

“10만 원.”

“어떻게 아셨어요?”

“지난번에 와서 봤거든.”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근데 형님, 용량이 크면 싸야 되는 거 아닌가요?”

“시주하는 거니까 그런 거겠지.”

그리고 또 이어지는 농담.

“형님, 다음번 만날 때 새 차에 광을 내 볼 테니 이 만원 준비해 오시죠.”

“어, 그걸 해 주겠다고? 고맙다야!”

절 입구 저수지에 황톳길을 만들며 시주를 받는 현수막을 보고 나눈 이야기였다.

마음이 푸근해졌다.

동생 부부는 아이들 저녁을 준비하러 집으로 향했다.

이 작은 의식들, 이 반복되는 만남을 통해

아내는 어머니의 임종 시 귓속말로 들려주었던

“어머니 걱정 마세요, 3형제 잘 지낼게요.”

그 약속을 실천하고 있었다.

막냇동생의 실업급여받는 날의 따뜻한 기억은

우리 가족을 다시 하나로 묶어준다.

그날의 햇살과 웃음은 오래도록 우리의 마음을 데워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부터

다음 주엔 어디서, 무얼 먹을 건지

휴대폰을 열고 검색에 열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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