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하모니카대회, 뜻밖의 행운 그리고 진한 여운
서울국제하모니카대회, 뜻밖의 행운 그리고 진한 여운
1. 서울로 향한 설렘
2019년 8월, 서울국제하모니카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한 3박 4일의 여정이 시작됐다.
벌써 세 번째 참가지만, 언제나 처음처럼 설레고 긴장됐다.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고구마치즈롤과 요구르트를 곁들여 간단히 요기를 했다.
서울에 도착해 두 번의 지하철 환승 끝에 처형집에 닿았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도 잠시, 처형 부부는 강릉으로 떠났다.
오후엔 하모니카 독주 연주를 보러 갈까 하다가, 내일 대회를 위해 집에서 ‘과수원 길’을 연습하기로 했다.
그러나 몸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연주는 매끄럽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다시 ‘과수원 길’을 불었다.
그 소리를 듣던 조카가 말했다.
“이모, 너무 좋아요. 우승할 거예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랬으면 좋겠다.”
2. 무대 위의 떨림
아내와 나는 서울시청 공연장으로 향했다.
시니어 2중주 부문에는 20팀이 참가했다.
우리 팀명은 ‘라온부부’. 다섯 번째 무대에 올랐다.
아내는 편안한 원피스를, 나는 청바지에 흰 셔츠를 입었다.
공연장 밖 계단 한쪽에 앉아 다른 팀들 틈에서 마지막 연습을 했다.
나는 소프라노, 아내는 알토.
연주 도중 두 번 박자를 놓쳤지만, 아내가 정확히 맞춰주어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조카들은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주었다.
곧이어 무대에 오른 부산팀이 ‘동백 아가씨’를 완벽하게 연주했다.
‘아, 저 팀이 1등이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공연장을 나오며 우연히 채점에 참여한 부산 하모니카 단장님을 만났다.
연주가 어땠냐고 묻자 단호한 한마디가 돌아왔다.
“복장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아서 점수를 줄 수 없었어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묘한 서운함이 밀려왔다.
결과는 둘째 치고, 말이라는 게 참 따뜻할 수도, 차가울 수도 있구나 싶었다.
3. 뜻밖의 1등
한 시간쯤 지나 성적표가 붙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밑에서부터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맨 위 줄에서 눈이 멈췄다.
‘1등 라온부부’
몸이 떨렸다.
아내와 나는 마주 잡은 손을 놓지 못한 채, 벙찐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믿기지 않는 기쁨이었다.
오후 합주에서는 남가람 하모니카 단원 여섯 명이 앙상블로 출전했다.
단장님이 물었다.
“2중주 결과는 어땠어요?”
나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1등 했어요.”
“진짜요?”라며 놀라는 얼굴.
‘설마’ 싶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으니, 놀랄 만도 했다.
4. 축하의 밤, 그리고 여운
마지막 날, 우리 남가람팀과 부산팀이 연합해 ‘부산연합오케스트라’로 ‘Top of the World’를 연주했다.
대합주 부문 2등을 차지했다.
공연을 마친 단원 대부분은 집으로 돌아갔고,
아내와 나는 시상식에 남았다.
비가 내려 시청광장 대신 시민청에서 시상식이 열렸다.
‘시니어 2중주 1등 라온부부’
호명된 이름을 듣는 순간, 다시 가슴이 뛰었다.
단상 위에서 상장과 하모니카를 받았다.
조카들은 꽃다발을 안겨주었고,
처형부부는 ‘서울하모니카대회 수상 영상’을 만들어 주었다.
모두 함께 광화문 거리와 청계천 유등을 구경했다.
밤이 내려앉은 청계천, 반짝이는 등불 아래에서
우리는 갈비탕과 냉면, 온면을 나눠 먹으며 조용히 축배를 들었다.
다음날 집으로 가는 길, 조카는 말했다.
“이모, 9호선 급행 타면 금방 가요.”
그러나 사람에 밀려 꼼짝달싹 못한 채 지옥철을 겨우 빠져나왔을 땐 온몸에 땀이 배어 있었다.
강남터미널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며 모자를 하나 샀다.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 벅차고 설레는 1등.
하모니카로 피워낸 우리의 작은 ‘과수원 길’은
집으로 내려가는 길 내내 마음 한가득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