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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란지교芝蘭之交에서 난蘭이 난초일까?

등골나물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0년 5/6월호)

by 경인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며,

천 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격려하리라.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유명한 수필가이지 시인인 유안진의 시, ‘지란지교를 꿈꾸며’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지芝와 난蘭을 모티프로 시인이 꿈꾸는 우정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고, 이 시를 읽으면 나도 벗들과 지란과 같은 향기로운 만남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지란芝蘭을 영지와 난초과(Orchidaceae)의 난초라고 생각한다. 시인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고전에서 난蘭은 난초과가 아니라 국화과(Compositae)에 속하는 등골나물이라고 한다. 이제 중국 고전에서 蘭이 난초가 아니라 등골나물일 개연성에 대해 살펴본다.


보춘화-20190406-해남-춘란의 일종.JPG 보춘화 (춘란), 2019. 4. 6 해남

아마 지란지교는 <공자가어> 육본六本 장에서 공자가 말한, “좋은 사람과 지내면 지란芝蘭이 있는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 있으면 그 향기를 느끼지 못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 향기에 동화되기 때문이다. (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 即與之化矣.)”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아니면 <공자가어> 재액在厄 장에 나오는, “지란芝蘭은 깊은 숲 속에 나지만, 사람이 없다고 향기를 내뿜지 않는 것은 아니다 (芝蘭生於幽林 不以無人而不芳)” 일지도 모른다. 후자는 공자가 소왕昭王의 초빙을 받고 초나라로 가다가, 진陳, 채蔡의 병사에게 막혀, 양식이 끊어진 지 7일이고 따르는 자들이 병드는 등 곤경에 처했을 때, 마음 상한 자로子路가 왜 성인聖人도 재앙을 받느냐고 물었을 때 공자가 대답한 말에 들어있는 구절이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굴원屈原의 <초사楚辭>에도 나온다. 비회풍悲回風 장에, “방가지똥과 냉이는 같은 곳에서 자랄 수 없고, 蘭과 구릿대는 외진 곳에서 홀로 향기를 내네 (荼薺不同畝兮 蘭茝幽而獨芳)”이다. 그렇다면 이 지란芝蘭은 춘추전국시대부터 쓰이던 표현으로 봐야 할 것이다. 지芝가 영지(Ganoderma lucidum [Leyss. ex Fr] Karst.)라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이견이 없다. 지초芝草라고도 하지만 지초도 <삼재도회>를 보면 영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난蘭은 좀 사정이 다르다. <훈몽자회>에 “란촛 란”, <전운옥편>에는 “향초香草로 한 줄기에 꽃 하나”라고 되어 있고, <자전석요>에도 “향초香草로 한 줄기에 꽃 하나, 란초 란”, 박문서관 <한일선신옥편>에도 “란초 란”이니 난초과의 난초 외에 다른 해석의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인다. 하지만 현대의 민중서림 <한한대자전>을 찾아보면, 첫째 해석으로 “난초란, 난초과에 속하는 다년초”를 소개하지만, 셋째 해석으로 “풀이름 란, 엉거시과에 속하는 다년초. 등골나물 비슷함”이라고 해 놓았다. 지금은 엉거시과를 국화과라고 한다.


이제 난蘭을 난초과가 아닌 국화과 식물로 해석할 여지가 생긴 셈이다. 우선 여러 곳에서 주요한 향초로 난蘭이 언급되는 <초사>에서 그 용례를 살펴보자. 이소離騷 장에서, “가을 난蘭을 엮어 노리개로 찼습니다 (紉秋蘭以為佩)”, “저는 이미 구원이나 되는 넓은 땅에 난蘭을 재배했고 (余既滋蘭之九畹兮)”, “난蘭이 자라는 물가의 언덕에 말을 풀어놓고 (步余馬於蘭皋兮)”, “저는 난蘭을 엮으며 오랫동안 서 있습니다 (結幽蘭而延佇)”, “사람마다 냄새 나는 쑥을 허리에 가득 차고 다니며 그윽한 곳에 자라는 난蘭은 찰 수 없다고 합니다. (戶服艾以盈要兮 謂幽蘭其不可佩)” 등이다. 구가九歌 장에서, “난탕蘭湯에서 몸을 씻으시니 온 몸이 향기로우시고, 화사하고 아름다운 옷 입으시니 꽃과 같으시네 (浴蘭湯兮沐芳 華採衣兮若英)”, “무성한 가을 난, 잎은 푸르고 줄기는 보랏빛이네요. 방 안에 가득한 미인들, 문득 나에게만 눈길을 주는군요. (秋蘭兮青青 綠葉兮紫莖 滿堂兮美人 忽獨與余兮目成)” 등이다. 이 외에도 용례가 많지만 이만 인용을 그친다.


영지-20170917-안동.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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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란芝蘭 - (좌) 영지, 2017.9.17 안동. (우) 등골나물, 2017.8.13 봉화

이 용례를 살펴보면, 우선 난蘭은 잎이 푸르고 줄기는 보랏빛이다. 넓은 땅에 재배하기도 하고 물가에 자라기도 한다. 그리고 난을 엮어서 노리개로 허리에 차거나 난을 넣은 욕탕에서 몸을 씻기도 한다. 이것으로 보면 난초과의 난을 설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등골나물이라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초사에 나오는 식물을 연구한 반부준의 <초사식물도감>을 보면 蘭을 등골나물(Eupatorium japonicum Thunb.)로 해석하고 있고, 중국명은 택란澤蘭이다. 그러므로,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부터 국화과의 등골나물을 난蘭으로 부르다가, 동양화에서 난초가 사군자의 하나로 많이 그려진 송나라 이후에 의미가 난초로 바뀌었고, 기존의 난蘭은 택란澤蘭으로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명나라 때 발간된 <삼재도회三才圖會>를 보면 난蘭 그림은 모두 난초과의 난蘭인데, “한 줄기에 꽃 하나로 향기가 좋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사정이니 조선시대의 문인들도 모두 난蘭을 난초과의 난蘭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양화소록>을 지은 강희안(姜希顔 1418~1465)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의 <본초강목>을 보면 난초蘭草와 난화蘭花를 구별하고 있는데, 난화가 난초과의 난蘭이다. 택란도 따로 기재해 놓았다. 이시진은 “근세에는 다만 난화蘭花만 알고 난초는 모른다. … 옛날의 난초는 지금의 천금초千金草로 속명으로 해아국孩兒菊인데 이것은 근거가 있는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것으로 보아도 난초 그림이 유행하면서 蘭의 의미가 바뀌어 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으로 봤을 때 공자가어가 출전인 지란지교의 蘭은 택란, 즉 등골나물이라고 주장해도 근거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57년에 간행된 정태현의 <한국식물도감>을 보면 등골나물(Eupatorium japonicum Thunb. 山蘭)과 향등골나물(Eupatorium japonicum Thunb. var. angustum Nakai)이 Eupatorium japonicum Thunb. 학명을 포함하고 있다. 정태현은 등골나물을 난蘭의 일종으로 보고 산란山蘭이라는 한문 명칭을 써 놓은 것이리라. 이제 공자가 곤궁에 빠졌을 때 언급한, 앞에서 인용한 지란芝蘭 구절의 앞 뒤 문장을 더 살펴보면서 글을 의미를 새겨본다. 지란지교의 의미는 각자 다를 것이다.


“사람이 쓰이거나 쓰이지 못하느냐는 때에 달려 있고, 현인이냐 불초한 사람이 되느냐는 재능에 달려 있다. 박학심모博學深謀한 군자 중에도 때를 못 만난 사람이 많다. 어찌 나만 그러하겠느냐? 또, 지란芝蘭은 깊은 숲 속에 나지만, 사람이 없다고 향기를 내뿜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군자는 도를 닦고 덕을 세우지만 곤궁하다고 절의를 버리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이다. 생사는 운명에 달려 있다”**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통권 186호, 2020년 5/6월, pp.78~80>


%초사 인용문의 번역문은 <권영호 옮김, 초사>를 참고했음.

*近世但知蘭花 不知蘭草 … 古之蘭草即今之千金草 俗名孩兒菊者 其說可據 –本草綱目. (<중약대사전>을 참조하면, 蘭草는 현대명으로 佩蘭이며, 학명은 Eupatorium fortune Turcz.로 등골나물 비슷하다. 千金草와 孩兒菊은 모두 佩蘭의 이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夫遇不遇者時也 賢不肖者才也 君子博學深謀 而不遇時者衆矣 何獨丘哉 且芝蘭生於幽林 不以無人而不芳 君子修道立德 不為窮困而敗節 為之者人也 生死者命也 –孔子家語 在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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