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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우애를 상징하는 나무 상체常棣가 산앵도나무일까?

이스라지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0년 1/2월)

by 경인

안동시 풍산읍에 체화정(棣華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만포晩圃 이민적(李敏迪)이 형 이민정(李敏政)과 함께 학문을 닦으면서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히 한 장소라고 한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에, “체화정은 예안 이씨 이민적(李敏迪, 1663~1744)이 지은 것으로, 그의 조카 이한오(李漢俉)가 노모를 모시고 효도한 곳이고, 훗날 순조가 효자 정려(旌閭)를 내린 명소이다. 체화란 산앵두나무의 꽃으로 <시경>에서 형제의 두터운 우애를 비유적으로 노래하였다.”라고 소개되기도 한 정자이다. 이 정자 이름인 체화棣華는 시경의 소아小雅 상체常棣 편의 첫 구절 “상체지화常棣之華”에서 따온 것이다.


이렇게 형제간의 우애를 나타내는 이 상체常棣가 과연 산앵도나무일까? 문헌을 통해 자세히 살펴본다. <이아爾雅>에서 상체常棣는 ‘체棣이다’라고 했고,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는 체棣를 “아가외 톄, 민간에서 산리홍山梨紅이라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유희의 <물명고>에서는 상체常棣를 “씨앗이 앵도櫻桃와 같고 먹을 수 있다. 적백赤白 두 종류가 있으며 잎은 시무나무(刺楡) 같은데 조금 둥글다. 어디에 속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했고, <광재물보>에서는 산사山樝라고 했다. 또한, <자전석요>에서는 체棣를 “욱리郁李, 적체赤棣, 산앵도 체”라고 했고, <한선문신옥편>에서는 체棣를 “산이스랏 체, 당체唐棣”라고 했다.현재 통용되는 <한한대자전>에서는 체棣를 ‘산앵도나무’로, 상체常棣를 ‘산이스랏나무’로 설명하고 있다. 이를 요약하면, 조선시대에는 상체를 아가외, 산사, 산앵도 등으로 이해하다가, 구한말 시기부터 산이스랏 혹은 산앵도나무로 보게 되었다.


이스라지-체화정_MG_4171-20190428안동.JPG 체화정의 봄, 2019. 4. 28 안동

이런 사정을 반영하여 현재 우리는 상체常棣를 산앵도나무(Vaccinium hirtum Thunb. var. koreanum [Nakai] Kitam.)나 이스라지(Prunus japonica Thunb. var. nakaii (H. Lev.) Rehder)로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산앵도나무는 진달래과에 속하고, 이스라지는 장미과에 속하는 나무로 상당히 다른 나무이므로, 상체가 정확히 어떤 나무를 지칭하는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초강목>에서 상체常棣는 욱리郁李의 이명 중 하나로, 울리蔚李, 거하리車下李, 작매雀梅와 함께 소개되어 있다. 거하리車下李, 즉 ‘수레 아래 오얏’이라는 이름에서 키 작은 관목으로 추정할 수 있다. 좀 더 살펴보면, “욱郁은 <산해경>에서 욱栯으로 썼는데, 향기가 자욱한 것이다. 꽃과 열매가 모두 향기로와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 <이아>의 상체常棣가 이것이다. 간혹 당체唐棣라고 하는 것은 오류이다. 당체는 부이夫栘나 백양白楊 종류이다. … 욱리는 고산의 시내와 계곡 및 구릉 위에 자란다. … 열매는 적색으로 익고 먹을 수 있다. … 보승保升이 이르기를, 나무 크기는 5~6 척尺이다. 잎과 꽃, 나무가 모두 큰 자도나무(李)와 비슷하다. 오직 씨앗이 앵도櫻桃처럼 작다. 달고 시고 향기로운데 조금 떫은 맛이 난다.*”


이러한 <본초강목>의 설명에 따르면 상체는 진달래과의 나무라기 보다는 자도나무가 속한 장미과의 나무로 판별해도 좋을 것이다. 실제 <중국식물지>에서 욱리郁李는, 학명이 Cerasus japonica (Thunb.) Lois로 장미과에 속하는 관목으로 나온다. 또한 이스라지도 장경욱리長梗郁李라는 이름으로 실려있다. 즉, 중국에서는 욱리를 이스라지의 일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산앵도나무_MG_8040-20180908태백산.JPG 산앵도나무, 2018. 9. 8 태백산


이제 상체가 무슨 나무인지 정리해보자. <한국의 나무>에 의하면 산앵도나무는 한반도 고유종으로 1.5m 정도 자라는 낙엽관목이므로 중국의 나무인 상체常棣와는 거리가 멀다. 한편 이스라지는 중국 동북지방과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키 1~1.5m의 작은 관목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스랏이나 이스라지는 앵두의 옛말인데, 이스라지 열매는 지름 1cm정도로 빨갛게 익으면 꼭 앵두를 닮았다. 현대 분류학에 의거하여 나무의 이름을 정하기 전에는 아마도, 이스랏이 앵도와 같은 뜻이었으므로, 산앵도나무나 이스라지는 같은 종류의 나무를 지칭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나라 최초의 식물도감인, 1943년에 발간된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을 봐도 알 수 있는데, 욱리郁李(Prunus Nakaii Leveille)의 조선명으로 이스라지나무, 산앵도나무, 유스라지나무, 오얏 등을 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책에서 Vaccinium koreanum Nakai도 산앵도나무로 적고 있어서 나무 이름에 혼동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이스라지-_MG_4234_20180512-보성.JPG 이스라지 열매, 2018. 5. 12 보성 오봉산

아무튼, 그 후 우리나라 표준명을 정할 때, 장미과에 속하면서 학명이 Prunus japonica Thunb.인 나무에 ‘이스라지’를, 진달래과에 속하는 학명이 Vaccinium hirtum Thunb. var. koreanum [Nakai] Kitam.인 나무에 ‘산앵도나무’라는 이름을 부여하면서 이스라지와 산앵도나무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나무가 되었다. 그러므로 형제의 우애를 상징하는 상체를 현재 우리가 쓰는 나무 이름으로 번역할 때에는 산앵도나무가 아니라 이스라지로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시명다식詩名多識, 즉 시경을 공부하면 이름을 많이 알게 된다는 말이 있으나 제대로 이름을 알기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느끼면서, <시경>에 나오는 시, ‘상체常棣’, 즉 ‘이스라지’를 감상해본다.


이스라지꽃-IMG_5894-20200418남한산성.JPG 이스라지 꽃, 2020.4.18 남한산성


常棣之華 이스라지 꽃이

鄂不韡韡 환하게 피었네

凡今之人 세상 사람 가운데

莫如兄弟 형제보다 좋은 이 없어라.


死喪之威 죽을 고비 당해서도

兄弟孔懷 형제만은 염려해주고,

原隰裒矣 벌판 진펄 잡혀가도

兄弟求矣 형제만은 찾아 다니네.


脊今在原 할미새 들판에서 바쁘듯

兄弟急難 형제의 어려움을 급히 구하네.

每有良朋 아무리 좋은 벗이 있다 해도

況也永歎 그럴 때에는 긴 한숨만 쉬네.


兄弟鬩于牆 형제가 집안에선 다투다가도

外禦其務 밖에서 업신여기면 손 잡고 막네.

每有良朋 아무리 좋은 벗이 있다 해도

烝也無戎 와서 도와주는 이 없어라.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통권 184호, 2020년 1/2월호, pp.80~82.>


* 郁 山海經作栯 馥郁也 花實俱香 故以名之 … 爾雅常棣即此 或以為 唐棣 誤矣 唐棣乃夫栘白楊之類也 … 別祿曰郁李生高山川谷及丘陵上 五月六月採根 弘景曰山野處處有之 子熟赤色 亦可啖 保升曰 樹高五六尺 葉花及樹並似大李 惟子小若櫻桃 甘酸而香 有少澀味也. - 본초강목

+표지사진, 이스라지 꽃, 2023.4.8 인천 계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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