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열전> 첫 편은 백이열전伯夷列傳이다. 대학시절 읽었던 을유문화사에서 간행된 남만성南晩星 번역으로 일부를 옮겨본다.
“… 무왕이 이미 은나라의 어지러움을 평정하매 온 천하가 주나라를 종주국으로 받들었다.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이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의를 지켜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薇)를 캐어 먹고 지냈다. 굶어서 죽게 되었을 때에 노래를 지었으니 그 가사가 이러하다.
登彼西山兮 저 서산에 올라가
采其薇矣 고사리를 캐네.
以暴易暴兮 무왕은 폭력으로 주왕의 폭력을 바꾸었건만
不知其罪矣 그 잘못을 알지 못하네.
神農虞夏 신농씨와 순임금, 우임금의 도가
忽焉沒兮 홀연히 사라졌으니
我適安歸矣 내 어디로 가서 몸을 의탁할 것인가?
吁嗟徂兮 아아 죽어야겠다,
命之衰矣 운명이 다하였구나!
이렇게 하여 드디어 수양산에서 굶어죽었다.”
사마천이 열전의 첫 머리에 이 이야기를 올린 후,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먹으며 굶어 죽은 백이 숙제는 의義, 옳음의 상징이 되었다. 김천택金天澤이 1728년 경에 편찬한 <청구영언靑丘永言>에 다음과 같이 수양산 고사리를 읊은 시조가 2수 실려있다.
주려 죽으려 하고 수양산에 들었거니
현마 고사리를 먹으려 캐었으랴
물성物性이 굽은 줄 미워 펴 보려고 캠이라.
고삐잡고 간해도 못 이뤘거던 은나라 때 못 죽던가
수양산 고사리 긔 늬 땅에 나단 말이고
아무리 푸새의 것인들 먹을 줄이 있으랴
이렇게 1700년대 초반에 한글로 지어진 시조를 보더라도, 우리나라에서 백이 숙제가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먹었다는 관념은 상당히 뿌리가 깊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제사상에 오른 고사리를 먹으며 은연중에 백이와 숙제를 떠올렸다. 하지만 미薇가 과연 고사리일까?
(좌) 고사리 새순, 2019.4.28 안동. (우) 고사리 잎, 2020.6.20 남한산성 고사리는 독성이 있어서 그냥 생으로는 먹지 못한다. 봄에 고사리를 꺾은 후 독성을 제거하기 위해 데쳐서 말리고, 다시 불리고 끓여서 나물로 먹는다. 보통 안동지방의 제사상에 세가지 나물의 하나로 필수로 올라간다. 그래서 백이와 숙제가 고사리를 날로 먹어서 그 중독으로 죽었을 것이라거나 고사리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이제 백이와 숙제가 먹었다는 미薇를 우리나라에서 어떤 나물로 인식했는지 문헌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최세진崔世珍(1468~1542)의 <훈몽자회>를 보면 미薇는 ‘쟝밋미’, 궐蕨은 ‘고사리궐, 속칭 권두채拳頭菜’로 나온다. 미薇를 고사리로 보지 않았고, 대신 궐蕨을 고사리로 해석했다. <전운옥편>에는 ‘薇미 고사리(蕨) 비슷한 나물, 꽃 이름 자미紫薇’, ‘蕨궐, 나물 이름으로 미薇 종류이다”로 설명했다. 하지만 유희柳僖(1773~1837)는 <물명고>에서 미薇를 ‘야완두野豌豆’로, <광재물보>는 “덤불자괴, 덩굴성으로 줄기와 잎이 완두 비슷하다. 그 잎은 나물로 쓰고 국에 넣는다. 두 종류가 있는데 큰 것이 이것이고 작은 것은 원수채元修菜이다. 수수垂水, 야완두野豌豆, 대소채大巢菜라고도 한다”*라고 설명하여, 확실하게 고사리가 아님을 밝히고 있다. 이 <광재물보>의 설명은 <본초강목>의 설명을 인용한 것이다. 또한 <본초강목>에는 “삼진기三秦記에서 이르기를 백이와 숙제는 이것(薇)을 3년 동안 먹었는데 얼굴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무왕이 그것을 경계하자 먹지 못하여 죽었다”라는 재미있는 내용도 나온다. 그리고 미薇를 미궐迷蕨, 즉 고비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하여튼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대체로 미薇를 고사리로 보지 않았고, 본초강목을 참조하여 야완두野豌豆로 본 듯하다. 옛말사전에 찾아보면 덤불자괴는 들완두의 하나이다.
등갈퀴나물, 2017.5.14 성남그러다가 구한말 <자전석요>에서 미薇를 “고사리와 비슷함. 고비 미”로 해석하고, 그 후 <한선문신옥편>도 같이 풀이했다. 특히 <한일선신옥편>에서는 미薇의 훈으로 ‘고비’에 일본명 ‘젠마이’를 붙였다. 중국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미薇를 고비, 즉 ‘젠마이(Osmunda japonica Thunb)’라고 했는데, 이 영향으로 미薇의 뜻이 ‘고비’로 굳어진 듯하다. 현대의 <한한대자전>에도 ‘고비 미’로 풀이하고 있다. 한편 궐蕨은 한결같이 ‘고사리 궐’로 훈을 달고 있다. 의문이 하나 생긴다. 훈몽자회 이후 편찬된 옥편이나 자전들을 죽 살펴보아도 미薇를 ‘고사리’로 설명한 책은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백이 숙제가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먹고 살았다고 배웠을까? 아마도 ‘고비’ 보다는 ‘고사리’가 대중에게 더 익숙하고, ‘고사리 같다’라는 설명을 보고 대강 ‘고사리’라고 했다고밖에 다른 근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권문해權文海(1534~1591)가 저술한 <대동운부군옥>에서 “궐蕨은 채소명으로 곧 미薇다”라고 하여 궐蕨과 미薇를 구분하지 않았지만, 이 책은 필사본으로 전하다가 겨우 1836년에야 목판본으로 간행되었기 때문에 많이 읽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벌완두, 2018. 9. 12 태백산<대동운부군옥>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선후기 문인들이 고사리를 뜻하는 글자로 미薇와 궐蕨을 혼용하여 쓴 것을 사실인 듯하다.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열하일기> 관내정사關內程史중에 이제묘夷齊廟를 지나면서 고사리가 들어간 닭개장을 맛있게 배불리 먹고 체한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의 사신 행렬이 난하灤河 기슭에 있는 수양산首陽山의 이제묘를 지날 때에는 백이伯夷 숙제叔齊를 기려 고사리를 먹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박지원은 이 일화를 기록하면서 고사리를 표현할 때 ‘미薇’와 ‘미궐薇蕨’을 혼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薇로 고사리를 표현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백이 숙제가 먹은 미薇가 고사리가 아니라는 것은 어느 정도 밝혀졌으니, 이제 어떤 식물을 지칭하는지 살펴본다. 중국 문헌을 보면 야완두野豌豆의 학명이 “Vicia sepium Linn.”, 즉 구주갈퀴덩굴로 나온다. 갈퀴나물(Vicia amoena Fisch), 벌완두(Vicia amurensis Qett.), 들완두(Vicia bungei Ohwi)와 비슷하다. 시어로 쓰인 미薇를 번역할 때에는 중국명 야완두와 덤불자괴를 참조하여 들완두로 번역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하여간,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서 들완두의 일종을 먹었을 것이다. 참고로 고비(Osmunda japonica Thunb)는 중국에서 자기紫萁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시경의 시 두 편을 읽어본다.****
들완두를 캐며 – 詩經/小雅/采薇
采薇采薇 들완두를 캐네 들완두를 캐네.
薇亦柔止 들완두 새싹이 부드럽기도 해라.
曰歸曰歸 돌아가자 돌아가자 했건만
心亦憂止 마음 속에 걱정만 일어나네.
憂心烈烈 걱정으로 애태우며
載飢載渴 굶주리고 목마르건만,
我戍未定 나의 수자리가 끝나지 않으니
靡使歸聘 고향으로 돌려보내줄 생각도 않네.
풀벌레 - 詩經/召南/草蟲
陟彼南山 저 남산에 올라
言采其蕨 고사리를 캤네
未見君子 당신을 못 보았을 적엔
憂心惙惙 내 마음 어수선터니,
亦旣見止 당신을 보고나자
亦旣覯止 당신을 만나고나자
我心則說 내 마음 기뻐지네
췌언贅言을 단다. 사마천이 <사기열전>에서 ‘의義’를 주제로 백이열전伯夷列傳을 첫머리에 올렸는데, <맹자孟子>의 시작부인 양혜왕梁惠王편 첫 구절도 ‘인의仁義’를 강조하고 있다. 양혜왕이 “노인께서 천리를 멀리 여기지 않고 오셨으니, 또한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함이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맹자가 “왕께서는 하필 이利를 말씀하시니까? 또한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하는 장면이다. 아마 이는 옳음을 뜻하는 의義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평생 추구하는 가치가 되어야 함을 말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각이 있고 대개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옳음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동시에 양혜왕이 그랬듯이 보통 사람들은 먼저 이익을 생각하고, 또 현실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자원의 한계 때문에, 옳다고 하더라도 실행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또한, 옳다고 하는 것은 상당부분 개인의 가치 판단 영역이고, 과학적 객관적 사실의 영역은 아니다. 그러므로 춘추전국시대 때 백이 숙제나 맹자가 옳다는 여긴 일이나 행위가 현대에도 여전히 옳은지는 의문이며, 사회 환경에 따라 옳음은 언제나 재해석되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훈몽자회>에서 의義를 찾아보면 “마잘 의, 일을 행함에 마땅함을 얻는 것을 의義라고 한다 (行事得宜曰義)”라고 설명되어 있다. “일을 행함에”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마땅함을 얻는 것”은, 의義가 가진 가치 판단 영역 때문에 달성 불가능할 것인데, 그럼에도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통권 185호, 2020년 3/4월, pp.82~84.>
* 薇 미 덤불자괴 蔓生莖葉皆似豌豆 其藿作蔬入羹 有二種 大者卽此也 小者卽元脩菜 = 垂水 野豌豆 大巢菜 <廣才物譜>
** 三秦記云 夷齊食之三年 顔多不異 武王誡之 不食而死 <本草綱目>
*** 昨日夷齊廟 中火時 爲供薇鷄之蒸 味甚佳 沿道失口者久矣 忽逢佳味 欣然適口 爲之一飽 不識其舊例也 路値急雨 外寒內壅 所食未化 滯在胷間 一噫則薇臭衝喉 遂服薑茶 中猶未平 問方秋非時 廚房薇蕨 何從生得 左右曰 夷齊廟 例爲中火站 必供薇蕨 無論四時 廚房自我國持乾薇而來 至此爲羹 以供一行 此故事也 – 열하일기/관내정사/ 二十七日癸卯
**** 이가원·허경진의 <시경> 번역에서 식물이름 수정
+표지사진 - 고사리, 2013.5.11 하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