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오동과 오동나무
아마도 “오동 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 밤에”로 시작하는 유명한 유행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동 잎 지는 것은 가을의 상징으로 우리 정서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근래의 임학자林學者 임경빈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잎의 오동나무 잎새가 떨어지는 소리로 온 천지에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다. … 가을이 오면 다른 나무의 잎도 단풍이 들고 노쇠가 오고 마치 권세의 자리였던 나뭇가지를 떠나 나락奈落의 길로 떠나지만, 유독 오동나무의 잎으로 가을을 말하고 그 운명에 관심을 가진다는 건 별다른데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역시 그 나무의 잎이 크고 나무가 높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큰 잎, …. 이것은 닫아놓은 창호지의 창을 지나 방안에 있는 사람의 귀에까지 울린다.” <나무백과2>에 나오는 글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나무에 관심을 가진 후, 가을에 오동나무 잎이 지는 모습을 관찰해보기 전 까지는 그랬다. 올 가을이 깊어가던 지난 10월 중순의 어느 날, 점심시간에 강남을 산책하다가 아직도 푸르고 넓은 잎을 고스란히 달고 있는 오동나무를 만났다. 갑자기, 가을의 전령사로 알려진 오동나무가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오동나무(Paulownia tomentosa [Thunb.] Steudel)인지, 혹시 벽오동(Firmiana simplex [L.] W. Wight)은 아닌지 궁금해져서 두 나무의 나뭇잎 상태를 비교해보고 싶어졌다. 내가 다니는 곳 근처에서는 벽오동을 관찰할 수 없어서, 벽오동은 나무애호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렇게 확인한 경기도의 한 벽오동은 11월 2일에 잎이 조금 졌지만, 노란 색조의 단풍이 든 잎이 거의 그대로 달려 있었다. 서울 강남의 오동나무는 11월이 되어 잎을 떨구기 시작하더니 초겨울로 접어들 즈음 잎사귀를 다 졌다. 결국, 오동나무와 벽오동 중 어떤 나무가 가을이 되어 잎이 먼저 지는지는 구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벽오동 잎은 황색으로 단풍이 지지만, 오동나무 잎은 단풍이 지지 않고 푸른 상태로 떨어진다.
이제, “한 잎의 오동나무 잎새가 떨어지는 소리로 온 천지에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다”라는 말의 출처에서는 무슨 나무를 의미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이 말은 “오동일엽락梧桐一葉落 천하진지추天下盡知秋”의 해석인데, 이것은 <군방보羣芳譜>의 오동梧桐, 즉 청동靑桐을 설명하는 부분 말미에 나온다. <군방보>에서는 오동梧桐을 수피가 푸르러 청동靑桐이라고도 하며, 음력4월에 대추나무 꽃 같은 작은 노란 꽃을 피운다고 하는 등 벽오동의 꽃과 열매를 설명하고 나서 말미에 이 유명한 구절을 적어 놓았다.* 즉, 가을의 전령사인 오동은 <군방보>에 의하면, 수피가 회갈색이고 봄에 잎보다 먼저 보라색 꽃이 피는 오동나무가 아니라 벽오동인 것이다.
<본초강목>에도 <이아익爾雅翼>을 인용하여, 오동梧桐은 “그 나무는 쉽게 자란다. 새가 씨앗을 물어다가 떨어뜨리면 곧 싹이 난다. 단 늦봄에 잎이 나고 이른 가을에 시든다. 예부터 봉황은 오동이 아니면 깃들지 않는다고 일컬었다.”**라고 했다. 이 봉황이 깃드는 나무는 벽오동인데, 이른 가을부터 잎이 시든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군방보>와 <본초강목> 뿐 아니라, <성어식물도감>이나 <당시식물도감>이나, <식물의 한자어원사전> 등 중국과 일본의 현대 문헌에서는 고전의 오동梧桐이나 오梧를 한결같이 벽오동으로 설명하고 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가을을 상징하는 나무가 벽오동이 아니라 오동나무로 보는 혼동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백李白(701~762)은 시 ‘맥상상陌上桑’에서 “쓸쓸한 쓰르라미는 푸른 풀을 사랑하고, 우는 봉황은 벽오동에 깃드네 (寒螿愛碧草 鳴鳳棲靑梧)”라고 했다. 벽초碧草와 대구를 이루는 청오靑梧, 즉 푸른 오梧는 봉황이 깃드는 벽오동을 말한다. 벽오동을 가을의 상징으로 쓴 이백의 시 한 편을 더 감상한다. ‘가을날 선성에 있는 사조謝眺의 북루에 올라 (秋登宣城謝眺北樓)’이다.
江城如畵裡 강가의 성은 그림 속 같은데
山晩望晴空 저물 녘 맑은 하늘을 바라보네.
兩水夾明鏡 두 물은 거울처럼 반짝이고
雙橋落彩虹 두 다리는 고운 무지개가 뜬 듯 하여라
人烟寒橘柚 인가의 찬 연기에 귤과 유자는 흐릿하고
秋色老梧桐 벽오동 시든 잎새엔 가을 빛이 짙어지네
誰念北樓上 누가 생각했으랴, 북루 위에서
臨風懷謝公 바람 맞으며 사공謝公를 그리워하리란 걸
안휘성安徽省 선성宣城에 있는 북루北樓는 사조루謝朓樓라 불리는데, 사조謝朓(464~499)는 이백이 경애한 육조시대의 시인이다. 두 물은 선성宣城을 휘돌아 흐르는 완계宛溪와 구계句溪이고, 쌍교는 완계宛溪의 봉황교鳳凰橋와 제천교濟川橋라고 한다. 이 시의 ‘추색노오동秋色老梧桐’은 중국에서 그림으로도 그려졌는데, 그림 속의 나무는 벽오동이다. 봉황교라는 다리 이름도 벽오동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중국의 하북河北, 광동廣東, 운남雲南 지방에 자란다는 벽오동이 현지에서는 가을에 일찍 잎이 시들어 떨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중국 고전 시가에서는 벽오동을 가을의 상징으로 여긴 것은 틀림없다고 하겠다.
지난 11월 초에 나는 홀로 천마산으로 단풍의 끝자락을 구경하러 갔다. 벌써 물푸레나무는 잎이 다 졌고, 고로쇠나무와 당단풍나무도 낙엽이 지거나 잎이 말라가고 있었다. 산 중턱 위로는 이미 거의 모든 나무들이 잎을 다 떨구어내었다. 내려오다가 천마산 입구 근처에서 아직 잎이 청청한 오동나무를 만났다. 바람이 불 때 마다 푸른 오동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있었다. 한참 동안 무심히 보노라니, 유행가의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 밤”의 오동 잎이 꼭 초가을에 잎이 지는 가을의 전령사일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오동나무 큰 잎이 툭 툭 떨어지는 소리가 가을 밤에 들려오는 정경을 노래했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벽오동은 정원수로 드물게 심지만, 오동나무는 곳곳에 자라고 있어서 쉽사리 만날 수 있으니, 정원이 없는 보통 사람들의 가을 정서에 더 맞을 것 같기도 하다.
<끝>
* 梧桐 一名青桐 埤雅今以梧桐皮青號曰青桐 一名櫬 爾雅櫬梧注今梧桐 皮青如翠 葉缺如花 姸雅華淨 賞心悦目 人家齋閣多種之 其木無節 直生理細而性緊 四月開嫩黄小花如棗花 墜下如醭 五六月結子 莢長三寸許 五片合成 老則開裂如箕 名曰櫜鄂 子綴其上 多者五六 少者二三 大如黄豆 雲南者更大 皮皺淡黄色 仁肥嫩可生噉 亦可炒食 … 立秋至期一葉先墜 故云 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 - 御定佩文齋廣羣芳譜
** 梧桐, … 爾雅翼云 梧桐多陰靑皮白骨似靑桐而多子 其木易生 鳥銜子墮輒生 但晩春生葉 早秋卽凋 古稱鳳凰非梧桐不棲 – 본초강목
+표지사진: 오동나무 꽃, 2020.5.22 이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