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橘과 지枳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
과수원 농사를 지으시던 선친께서 생전에 밭 이곳 저곳에 심은 나무들 중 아직도 자라고 있는 것으로 호도나무, 음나무, 복사나무, 두충, 대추나무 등이 있는데 탱자나무도 한 그루 있다. 10여년 전 시골동네에서 트럭이 다닐 수 있도록 농로를 확장하면서 그 밭의 일부를 무상으로 기증해 달라고 부탁해왔을 때,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면서 조건을 하나 달았다. 바로 농로가 넓혀질 곳에 자라고 있던 탱자나무 한 그루를 옮겨 심어서 살려 달려는 것이었다. 다행히 확장 공사를 하면서 그 나무를 밭 안쪽으로 옮겨 심었는데, 덕분에 해마다 봄 가을로 고향마을에 갈 때마다 탱자나무 꽃이나 열매를 감상할 수 있다.
이 나무를 볼 때 마다 나는, 그리운 아버지를 추억하면서, 귤화위지橘化爲枳, 즉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성어를 떠올렸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는, “귤橘은 회수淮水 남쪽에 자라면 귤橘이 되고, 회수淮水 북쪽에 자라면 탱자(枳)가 된다. 잎 모양은 비슷하지만 그 열매의 맛은 같지 않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과 토질이 다르기 때문이다”*로 나오는데, 이 사자성어는 사람들의 성장 환경의 차이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어떤 종(species)의 나무가 강을 건너고 기후가 달라졌다고 다른 종으로 바뀔 수는 없다. 같은 종이었지만 서로 다른 대륙으로 헤어져서 지질학적 시간이 경과할 경우 근연종으로 진화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고사에서 귤과 탱자는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과, 귤나무는 회수 남쪽 즉 강남에 자라고 탱자나무는 내한성이 더 좋아서 회수 북쪽 지방까지도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한국의 나무>를 보면, 귤나무(Citrus reticulata Blanco, [C. unshiu Marcov.])는 중국 남부지방 원산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제주도에서 과실수로 재배하며, 탱자나무(Citrus trifoliata L., [Poncirus trifoliata [L.] Raf.)는 중국 중남부지방 원산으로 민가에 울타리용으로 식재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즉, 이 두 나무가 같은 운향과의 Citrus 속에 속해서 가까운 사이임을 알 수 있다. 귤을 감귤柑橘이라고도 하는데, 본초학 서적에서 탱자나무를 지枳 뿐 아니라 구귤枸橘, 취귤臭橘 등으로 부르는 것으로 보아 예부터 탱자도 귤의 일종으로 본듯하다. 또한 귤橘과 지枳는 중국에서 도입하여 식용 및 약용으로 재배한 역사가 오래여서 고전 번역에서도 혼동한 적은 없었다. 우리나라 문헌을 살펴보더라도, <훈몽자회>에서 “橘 굵귤, 속칭 금귤金橘”, “枳 탱자기, … 본음은 지止”라고 훈을 단 이후, 줄곧 이 글자를 귤과 탱자로 이해했다.
몇 해 전 굴원屈原(기원전353~기원전278)의 <초사楚辭> 구장九章 편을 읽다가 귤을 찬미하는 노래인 ‘귤송橘頌’**을 보고 감동한 적이 있다. 좀 길지만 전문을 옮겨본다.
后皇嘉樹 하늘과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
橘徠服兮 귤로 와서 이 땅에 적응했네.
受命不遷 천명을 받아 다른 곳에 가지 않고,
生南國兮 남국에서 자랐네.
深固難徙 뿌리는 깊고 튼튼해 옮기기 어렵고,
更壹志兮 더욱이 곧은 심지까지 가졌네.
綠葉素榮 녹색의 잎에 하얀 꽃,
紛其可喜兮 무성한 것이 사람을 즐겁게 하고,
曾枝剡棘 겹친 가지의 날카로운 가시,
圓果摶兮 둥근 열매가 알차게 맺혔네.
青黃雜糅 파랑과 노랑이 섞이고
文章爛兮 색깔은 찬란하네.
精色內白 붉은 껍질에 하얀 속살
類可任兮 도의를 품은 것 같네.
紛縕宜脩 무성하고 잘 다듬어져,
姱而不醜兮 아름답고 추하지 않네.
嗟爾幼志 어린 그대의 기개를 찬미하노니,
有以異兮 남들과 다른 곳이 있네.
獨立不遷 홀로 서며 옮겨가지 않았으니,
豈不可喜兮 어찌 기뻐하지 않으리.
深固難徙 깊고 튼튼해 옮기기 어렵고
廓其無求兮 마음은 넓어 다른 것을 구하지 않네.
蘇世獨立 세상에 홀로 깨어
橫而不流兮 뜻대로 하며 시류를 따르지 않으며,
閉心自慎 욕심을 절제하고 자신을 조심해
不終失過兮 끝내 잘못을 범하지 않네.
秉德無私 덕을 가지고 사사로움이 없으니
參天地兮 천지와 하나가 되네.
願歲並謝 바라건대 세월과 함께 흘러도
與長友兮 오랫동안 그대와 친구로 있고 싶네.
淑離不淫 아름다우면서 방탕하지 않고,
梗其有理兮 굳세면서 일관되네.
年歲雖少 나이는 어려도
可師長兮 어른과 스승이 될 수 있네.
行比伯夷 품행이 백이와 비견되니,
置以為像兮 나는 그대를 본보기로 삼으리.
아마도 과문한 내가 알기로, 이 ‘귤송’이 동양 고전의 시가 중에 특정 나무를 찬미한 최초의 노래일 것이다. 귤은 춘추전국시대에 초나라의 특산물이었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도 굴원의 귤송과는 다른 의미를 담고 있지만 제주도의 진상품인 귤에 대해 “공귤송貢橘頌”을 지었다. 이로 보면 “귤화위지橘化爲枳”는, 예로부터 강남의 좋은 환경에서 자란 귤나무가 군자의 상징으로 우러름을 받았는데, 강북이라는 거친 환경 탓에 귤나무가 되지 못한 탱자나무의 애환을 담고 있는 고사성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견강부회하여 선친께서 시골 밭 가에 탱자나무를 심으신 뜻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환경 탓 하지 말고 타고 난 본성을 잘 기르면서 즐겁게 살아가라는 뜻이라고.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이유출판, 2023. pp.220~225>『옛글의 나무를 찾아서』pp.220~225
*橘生淮南則爲橘 生於淮北爲枳 葉徒相似, 其實味不同. 所以然者何 水土異也 - 晏子春秋**楚辭 九章 橘頌, 권영호 번역을 참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