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櫟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0년 7/8월)
저력지재樗櫟之材라는 말이 있다. 저륵지재라고 하기도 한다. 옛날 학자들이 스스로 재주가 없음을 말할 때 쓰는 일종의 겸손한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가죽나무와 참나무 재목이라는 뜻으로, 아무 데도 쓸모 없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나는 이 표현을 학창시절에, 1969년 1월호 신동아 부록으로 나온 <한국의 고전 백선>을 보다가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익제집益齋集>을 해설하는 글에서 처음 접했다. 다시 찾아보니, 이제현의 <역옹패설櫟翁稗說> 서문을 인용하고 있는 곳이었다. 다음과 같다.
“… 이를테면 력자(櫟字)가 락(樂)를 따른 것은 성(聲)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력목(櫟木)이 부재(不材)로써 해(害)를 멀리 하였으니 그 나무 자체에 있어서는 즐거울 만하다 해서 락(樂)을 따르게 된 것이다. 내가 일찍이 대부(大夫)의 래반(來班)에 있다가 스스로 사면하고 졸(拙)함을 기르려고 력옹(櫟翁)이라 호(號)를 하였으니 부재(不材)로써 수(壽)나 할까 한 것이요, …”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대 학자가 자신의 재주가 부족해서 호를 력옹櫟翁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터이지만, 력櫟 자字를 스스로 타고난 바를 즐기면서 장수를 누리는 상징으로 사용한 듯하다. 그 때 이후로 나는 이 글자가 정확이 어떤 나무를 말하는지는 몰랐지만, 일종의 신비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 후 언젠가 저력지재의 출전이 <장자莊子>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저樗는 가죽나무(Ailanthus altissima (Ml.) Swingle)이고 중국 원산인데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어 마을 인근 곳곳에 자라고 있다. 력櫟은 참나무 종류임에는 틀림없지만 어떤 나무인지는 분명치 않아서,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참나무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이제부터 력櫟이 정확히 무슨 나무를 지칭하는지 여러 문헌을 통해 알아본다. 우선 <장자>에서 해당 부분을 살펴보자.
력櫟은 인간세人間世 편에 나오는데, 뛰어난 목수인 장석匠石의 일화에서 소개된다. 장석이 제자들과 함께 제나라로 가다가 곡원曲轅에 이르러 사당 앞에 서 있는 거대한 참나무를 만났다. 장석이 그냥 지나치자, 나무를 실컷 구경하고 난 제자들이 이렇게 좋은 나무를 왜 거들떠보지도 않느냐고 묻는다. 이때 장석은 "그만두어라. 더 말하지 말라. 쓸 데 없는 나무다. 그것으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을 것이고, 관을 만들면 쉬 썩을 것이며, 그릇을 만들면 속히 깨질 것이고, 문을 만들면 진이 흐를 것이며, 기둥을 만들면 좀이 먹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재목이 될 수 없는 나무다. 아무 쓸 데가 없어서 이렇게 수명이 긴 것이란다.”*라고 대답한다.
<이아爾雅>에는 “력櫟의 열매는 구梂이다”로 나오는데, 1527년 편찬된 <훈몽자회>에서 구梂는 “당아리구, 민간에서 조두皂斗 또는 상완아橡椀兒라고 부른다. 또 상두橡斗라고 한다.”로 나온다. 당아리는 깍정이인데 열매를 싸고 있는 받침을 말한다. 또한 훈몽자회에서 상橡은 “도토리샹”으로 나오므로 상두橡斗를 풀이해보면 도토리 깍정이 정도가 될 것이다. 력櫟은 “덥갈나무륵”으로 나온다. 덥갈나모는 현재 우리가 떡갈나무(Quercus dentata Thunb.)라고 부르는 것일 터이다. 그러므로 1500년대에 최세진은 이 글자를 참나무의 일종인 떡갈나무로 생각했다. <동의보감 탕액편>에 역수피櫟樹皮가 나오는데, ‘덥갈나무겁질’이라고 했으니, 허준도 떡갈나무로 봤던 것이다. 1796년 경에 편찬된 <전운옥편全韻玉篇>에는 “櫟 ‘력’, 가죽나무와 비슷한 작柞 종류로 포력苞櫟이다.” 여기에서는 무슨 나무를 말하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이 글자의 발음이 ‘륵’에서 ‘력’으로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후, 1820년대에 편찬된 류희柳僖의 <물명고物名考>에는, “력櫟은 상수리 열매의 나무이다. 혹은 장자에 의거하여 재목이 못 되는 것을 뜻한다. 곧 ‘딥갈’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드디어 류희는 이 글자를 상수리나무로 보면서 떡갈나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후, 일제시대 옥편인 지석영의 <자전석요字典釋要>에는 “도토리력”으로, 박문서관 간행본 <한일선신옥편漢日鮮新玉篇>에도 “도토리나무력”으로 되어 있다. 해방 후 1963년 간행된 동아출판사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에는, “굴참나무 력”으로 설명하고 있고, 민중서림의 <한한대자전漢韓大字典>에서는, “상수리나무력”으로 되어 있다. 참고로, 한글학회가 편찬한 <우리말 큰사전>을 보면 상수리는 상수리나무 열매이고, 도토리는 떡갈나무 열매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참나무의 열매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도토리라고 부르는 듯하다.
대만 학자 반부준의 <시경식물도감>에서는 력櫟을 상수리나무(Quercus acutissima Carruth.)로, <성어식물도감>에서는 갈참나무(Quercus aliena Blume)로 설명하면서, 중국에 자생하는 50여종의 참나무속(Quercus) 나무 중 상수리나무와 갈참나무가 가장 널리 분포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식물지>에서는 력櫟을 상수리나무(Quercus acutissima Carruth.)로 보고, 현대 중국명 마력麻櫟, 력櫟, 또는 상완수橡碗樹라고 했다. 갈참나무(Quercus aliena Blume)의 중국명은 곡력槲櫟이다. 또한 일본의 연구서인 <식물의 한자어원사전>도 력櫟을 상수리나무(Quercus acutissima Carruth.)로 보고 있다. 대신 곡槲은 떡갈나무(Quercus dentata Thunb.)로 본다. 그러므로 대체로 중국과 일본에서는 력櫟을 상수리나무로 이해했음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사실 옛 사람들이 이 글자를 쓸 때, 정확히 무슨 나무인지 구분하지 않고 일반적인 참나무를 지칭하면서 썼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력櫟에 대해서는 <물명고>에서 상수리나무라고 했고, 굴참나무도 잎 모양이 갈참나무보다는 상수리나무와 더 유사하며, 또 <한한대자전>에서 상수리나무라고 했으므로, 우리나라에서도 대체로 상수리나무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조선중기의 문신인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은 뛰어난 글 재주와 경륜으로 정승의 반열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는 “가죽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천성을 보존하는 이치를 안 지 오래라 (久知樗櫟全天性)”라는 시 구를 남긴 데서 알 수 있듯이,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등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가면서 쓸모 없는 나무가 천수를 누린다는 <장자>의 교훈을 잊지 않으면서 살았던 듯 하다. 그의 “올해 쉰 여섯이다. 거울을 보며 실없이 짓다 (今年五十六矣 臨鏡戱書)”를 감상해본다.
臨鏡休嫌老 거울 보며 늙었다고 싫어하지 말게나
人生老亦難 인생 살이 늙어가기도 어려운 일이거니
眼明猶識字 눈 밝아서 아직은 글자도 알아보고
齒落尙能餐 이 빠져도 충분히 먹을 수 있네
涉世安鳩拙 세상 살이, 서툰 재주에 까치 집에 사는 비둘기처럼 편안하고
將身效櫟完 몸가짐은 상수리나무의 천수 누림을 본받는다네
殘年參內景 남은 여생은 양생법을 참고하여
已得大還丹 대환大還이라는 단약丹藥을 곧 얻으리.
내가 자란 도산면의 산골 마을에는 엄청나게 크고 곧게 자란 참나무 한 그루가 산 기슭의 농로 가에 자라고 있다. 보통 참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쓰는데, 이 나무는 너무 커서 함부로 벨 수 없는 마을의 한 상징물로 인정된 나무였다. 나는 스스로 즐겁게 살면서 수를 누리는 나무, 력櫟을 생각할 때 마다 이 나무를 떠올렸다. 하지만 작년 가을 오랜만에 고향 마을에 갔을 때 그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니, 상수리나무가 아니라 굴참나무였다.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통권 187호, 2020년 7/8월, pp.79~82>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 이유출판, 2023, pp.75~82 초고>
*已矣 勿言之矣 散木也 以為舟則沈 以為棺槨則速腐 以為器則速毀 以為門戶則液樠 以為柱則蠹 是不材之木也 無所可用 故能若是之壽 – 莊子 人間世
**櫟, 橡實之樹也 或据莊生不材二字 遂謂딥갈 誤矣 - 物名考
+표지사진: 상수리나무 겨울 모습, 2021.1.9 의성 지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