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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를 기리는 행단杏壇 나무는?

살구나무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0년 9/10월호)

by 경인

1957년 발간된 <한글학회 지은 큰사전>에서 행단杏壇을 찾아보면 “학문을 닦는 곳. 공자가 행단 위에 앉아 있는데, 제자들이 그 곁에서 강학을 하였다는 옛일에서 나온 말”로 되어 있다. 다시 1992년 어문각에서 발간된 한글학회 지은 <우리말 큰사전>을 보면 “학문을 닦는 곳, 공자가 은행나무 단 위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일에서 나온 말”로 나온다. 인터넷 서비스중인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도 “공자가 은행나무 단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1992년 이후 사전 편찬자들이 행단杏壇의 행杏을 은행나무(Ginkgo biloba L.)로 보고 쉽게 풀어 쓴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공자를 모신 성균관에 은행나무 거목이 자라고 있고, 전국에 산재하고 있는 향교에도 은행나무가 많아서 1992년판 <우리말 큰사전>을 편찬한 학자들이 행단의 행杏을 은행나무로 판단했을 터이다.


은행나무 수꽃차례, 2018.4.29 성남

하지만 중국과 우리나라 고전에서 행杏은 살구나무를 가리키는 글자이다. <본초강목>이나 <중약대사전> 등 한의학 문헌에서 행인杏仁이나 행핵인杏核仁은 살구나무 씨이며, 오랫동안 약재로 써 왔다. 살구나무의 현대 중국명도 행杏이다. 1613년에 처음 발간된 <동의보감 탕액편>에서 허준許浚(1539~1615)은 행핵인杏核仁의 한글 이름을 “살고씨”라고 했고, 유희柳僖(1773~1837)의 <물명고>도 행杏을 “살고”라고 설명했다. 지석영의 <자전석요>이후 옥편들도 한결같이 행杏을 살구나무로 설명한다. 이렇듯 살구나무가 분명한 행杏을 유독 공자를 기리는 행단杏壇에서만 은행나무로 생각하게 되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조선시대 학자들이 행단의 나무를 은행나무로 이해했기 때문에 성균관이나 전국의 향교에 은행나무를 심었을 개연성이 있다. 이제 행단의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밝혀보기로 한다.


<장자莊子> 어부漁父 편에, “공자가 울창한 숲에서 놀 때에 행단杏壇 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노래를 부르며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곡을 반도 연주하기 전에 한 어부漁父가 배에서 내려 다가왔다*”가 있다. 이 글로 인해 행단은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친 곳을 기념하는 상징이 되었다. 그 후 공자의 후손인 공도보(孔道輔 987~1040)가 곡부曲阜에 공자묘를 중수하면서 단을 만들고 행杏을 심은 것이 실제 행단의 시작이라고 한다. 행杏은 <산해경>에도 “영산靈山 에는 .. 복숭아나무(桃), 자도나무(李), 매실나무(梅), 살구나무(杏)가 많다”에 나오는데, <장자>나 <산해경>의 행杏은 살구나무(Prunus armeniaca L. var ansu Maxim.)를 가리킨다. 대만학자 반부준의 <성어식물도감>도 행단의 행杏을 살구나무로 설명하고 있다.


살구나무 열매, 2020.5.22 성남

<본초강목>에서는 은행銀杏을 백과白果, 압각수鴨脚樹라고 하면서, “원래 강남江南에서 자란다. 잎이 오리 발바닥 비슷해서 압각鴨脚이라고 이름했다. 송宋나라 초에 비로서 조공으로 들어왔는데, 작은 살구 모양 같고 씨가 흰색이어서 은행銀杏으로 바꾸어 불렀다.**”라고 했다. 송나라 초기면 서기 960년경으로 고려 광종 시대이다. 이 은행나무는 중국 절강성 남서부 원산으로, <본초강목>의 설명에 의하면 기원전 5세기 경의 공자시대에는 산동성 곡부에 전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으로 보더라도 행단의 나무는 은행나무일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용문사 은행나무, 2020. 11. 7 양평

우리나라에서 은행나무는 불교 사찰에도 두루 심었던 나무이다. 신라의 마지막 태자가 심었다는 전설이 남아있는 용문사 은행나무는 수령이 1,100년 정도로 추정되므로 성균관의 은행나무보다 나이가 배는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은행나무가 왜 우리나라에서 공자를 기리는 나무로 되었는지는 그 근거는 찾을 수가 없었다. 최세진의 <훈몽자회>를 보면 행杏을 “살고행. 속칭 행아杏兒이다. 또한 은행銀杏이다. 백과白果 또는 압각鴨脚이라고 한다”고 하여 살구나무와 은행나무 2가지 훈을 달고 있다.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조선시대 학자들 중 상당수는 행단의 나무를 은행나무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왜냐하면, 정약용丁若鏞(1762-1836) 선생이 <아언각비>에서, 행단杏壇의 행杏을 은행나무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단락을 옮겨본다.


“행단杏壇 이야기는 본래 <장자>에 나온다. 사마표司馬彪는 ‘행단은 연못 가운데 높은 곳이다’라고 했다. 고정림顧亭林은 ‘<장자>의 이야기는 모두 우언寓言이다. 어부漁父가 반드시 그 사람이 있을 필요는 없으며, 행단은 반드시 그 땅이 있을 필요는 없다. 지금의 행단은 송宋나라 건흥乾興 연간에 공도보孔道輔가 공자묘를 증수增修하면서 박석으로 단을 만들고 그 둘레에 살구나무(杏)를 심고 나서 행단杏壇으로 명명한 것이다. (정림亭林의 말은 다만 이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여 공자의 사당 뒤편에 은행나무를 벌려 심으면서 행단杏壇을 상징하게 되었다. 은행銀杏은 일명 압각수鴨脚樹, 일명 평중목平仲木이다. 좌사左思의 <오도부吳都賦> 주注에 ‘평중목은 열매가 은처럼 희다’라고 했는데,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이른바 행단에 심은 나무이겠는가? ***”


은행, 2016.10.3 여주

하지만 조선시대 학자들이 모두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에 ‘증점이 비파를 타는 그림 (曾點鼓瑟圖)’이라는 제목으로 어세겸(魚世謙 1430~1500)이 지은 시가 실려있다. 이 시에 ‘행단의 봄빛이 꽃 가지에 비치네 (杏壇春色透花枝)’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살구꽃을 가리킨 것일 것이다. 또한, 조선 중기의 한문사대가 중의 한 분인 계곡谿谷 장유張維(1587~1638)의 <계곡집谿谷集>에 ‘행단금슬 杏壇琴瑟’ 그림에 대한 찬미 시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條風淑景 실바람 부는 맑은 날씨에

杏花滿庭 살구꽃은 뜰에 가득하네

弟子拊絃 제자는 줄을 퉁기고

先生默聽 선생은 가만히 듣고 있구나

一團和氣 한 덩어리 따뜻한 기운이

冲融無間 빈틈 없이 녹아 흐르네

其形可描 그 정경은 묘사할 수 있어도

意不容讚 그 깊은 뜻은 기릴 수가 없어라


개살구나무, 2021.4.4 청계산 - 살구나무는 중국 원산으로 알려져있다. 개살구나무는 우리나라 자생종이다.


이 시를 읽어보면, 장유張維가 행단의 나무를 살구나무로 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국어사전에서 잘못 설명하고 있지만, 행단의 나무는 살구나무가 분명하다. 이제부터 공자를 기리는 향교에 나무를 더 심는다면 살구나무를 심어도 좋을 것이다. 매화 질 무렵 살구꽃이 피는데, 살구꽃이 만발하면 성균관과 향교에도 따뜻한 기운이 충만할 것이다.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0년 9/10월호, pp.84~87>

*孔子遊乎緇帷之林 休坐乎杏壇之上 弟子讀書 孔子弦歌鼓琴 奏曲未半 有漁父者 下船而來 – 莊子

**原生江南 葉似鴨掌因名鴨脚 宋初始入貢 改呼銀杏 因其形似小杏而核色白也 – 本草綱目

***杏壇之說 本出莊子 司馬彪曰 杏壇 澤中高處 顧亭林云 莊子皆是寓言 漁父不必有其人 杏壇不必有其地 今之杏壇 乃宋 乾興間 孔道輔增修祖廟 甃石爲壇 環植以杏 取杏壇之名名之 (亭林說止此) 東人錯認 乃於聖廟之後 列植銀杏 以象杏壇 銀杏一名鴨脚樹 一名平仲木 左思吳都賦 注云 平仲之木 實白如銀是也 豈所謂杏壇之所植乎 – 雅言覺非

+표지사진: 살구꽃, 2017.4.8 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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