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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을 막아주는 중양절의 나무 수유茱萸는?

오수유吳茱萸와 쉬나무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0년 11/12월)

by 경인

獨在異鄉爲異客 홀로 타향에서 나그네 되어

每逢佳節倍思親 명절을 맞을 적마다 친족 생각이 너무 간절하다.

遙知兄弟登高處 멀리서 생각하니 형제들은 산에 올라가

遍插茱萸少一人 모두들 머리에 산수유를 꽂을 때에 한 사람이 모자람을 알게 되겠지?

산수유 꽃, 2017.3.26 성남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 699~759)의 ‘9월 9일에 산동에 있는 형제를 생각함 (九月九日憶山東兄弟)’이라는 시로, 태동고전연구소를 창설하여 후진을 양성했던 청명 임창순(任昌淳 1914~1999) 선생의 <당시정해> 증보신판(1999년)에서 인용했다. 1956년에 간행된 초판본을 보면 마지막 구절 해석이 “모두 수유를 꼽는데 한 사람이 적으리로다”라고 되어 있다. 책을 증보하면서 왜 ‘수유’를 ‘산수유’로 고쳤는지 그 정황은 알 수 없다. 다만 추측해보자면, 우리나라의 나무에 ‘수유’라는 이름은 없으므로, 편집자가 이 시의 ‘수유’가 산수유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독자가 알기 쉽도록 고친 것이 아닐까 한다. 산수유(Cornus officinalis Siebold & Zucc.)는 우리나라에서 봄의 전령사로 알려진 나무로, 정원에 많이 심고 있어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숙한 나무이다. 약재용으로 열매를 채취하기 위해 대규모로 재배하기도 하는데, 이른 봄에 노란 꽃이 피고 가을에 빨간 타원형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다.

임창순, 당시정해 (좌) 1956년 초간본, (중) 초간본의 '9월9일 억산동형제' 해설, (우) 1999년 중간본

왕유의 시에 나오는 수유가 산수유는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는, 몇 해 전 <한국의 나무>를 저술하신 김태영 선생으로부터 들었다. 중국측 자료를 보면, 이 시를 소재로 그린 그림의 나무가 산수유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낱낱이 떨어져 있는 산수유 열매를 머리에 꽃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제부터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몇몇 문헌을 통해 수유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중국에서 수유茱萸라는 이름이 들어간 나무는 산수유 뿐 아니라, 식수유食茱萸(Zanthoxylum ailanthoides Siebold & Zucc.)와 오수유吳茱萸(Evodia rutaecarpa [Juss.] Benth)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이 중 산수유는 중국 원산인데 우리나라도 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식수유는 우리나라 남부지방에도 자생하는 운향과의 머귀나무를 말한다. 오수유는 운향과의 쉬나무(Euodia daniellii [Benn.] Hemsl.)와 비슷한데, 쉬나무를 <중국식물지>는 취단오유臭檀吳萸로 소개하고 있어서 오수유 류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머귀나무 열매, 2018.11.10 제주도 - 중국명 식수유食茱萸이다.

그렇다면, 왕유의 시에 나오는 수유가 어떤 나무일까? <당시정해> 초판본을 보면, 9월 9일 높은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는 등고登高 풍속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한환경漢桓景이 비장방費長房에게 道를 배우는 하루는 장방이 환경을 보고 ‘구월 구일에 너의 집에 큰 재난이 있을 터이니 빨리 가인家人에게 견낭絹囊을 만들게 하여 수유茱萸를 넣어서 어깨에 메고 높은 산에 올라서 국화주를 마시면 액厄을 면할 것이다’ 하였다. 환경이 그 말대로 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보니 계견鷄犬과 우양牛羊이 다 죽어버렸다. 이후부터 9일에 登山, 수유를 꺾기, 국화주 등은 중국인의 구일가절九日佳節을 맞이하는 통례通例로 되어 있다.”

쉬나무 꽃, 2017.8.14 봉화 청암정 - 중국의 오수유吳茱萸와 같은 속에 속하는 나무이다.


이것을 보면 수유가 액을 물리치는 벽사僻邪의 나무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문헌에서는 이 등고登高 풍속에서 쓰이는 수유를 식수유나 오수유 열매로 보고 있다. 반부준의 <당시식물도감>에서는 식수유, 즉 머귀나무로 보고 있으나, <본초강목>에서는 오수유로 보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본초강목>에서 오수유를 해설한 부분에, 바로 위에서 인용한 임창순 선생의 등고登高에 대한 설명이 거의 그대로 ‘속제해기續齊諧記’를 인용하여 실려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본초강목>에서는, “주처풍토기周處風土記를 살펴보면, 민간에서 9월 9일을 숭상하여 상구上九라고 하는데, 수유는 이 날에 이르러 기운이 강렬해지면서 붉은 색으로 익는다. 그 열매 송이(房)를 꺾어 머리에 꽂을 수 있는데,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겨울 추위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산수유 열매, 2018.11.3 창경궁

산수유는 낱낱의 열매가 가지에 매달려 있어서 열매를 꺽는다(折)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반면, 머귀나무나 쉬나무 열매는 송이로 되어 있어서 송이 채 꺾을 수 있다. <본초강목>의 이러한 설명을 참고해 보면 등고 풍속에서 머리에 꽂는 열매는 산수유가 아니라, 오수유, 즉 우리나라의 쉬나무 류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참고로, 이우철의 <한국식물명의 유래>를 보면, 쉬나무의 이명으로 수유나무, 오수유 등이 나온다. 수유나무라는 이름이 변해서 쉬나무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제, ‘편삽수유소일인遍插茱萸少一人’을 다시 해석하면, “모두들 머리에 쉬나무 열매를 꽃을 때에 한 사람이 모자람을 알게 되겠지?”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쉬나무는 중국의 오수유와는 같은 속의 다른 나무이므로 주의할 필요는 있다. 중양절을 노래한 당시 한편을 더 감상해 보자.


중양절 놀이(九日宴) - 장악張諤


秋葉風吹黃颯颯 가을 바람 불어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나부끼고

晴雲日照白鱗鱗 맑은 하늘 흰 구름 비늘처럼 수놓았다.

歸來得問茱萸女 쉬나무 열매 머리에 꽂고 돌아오는 여인에게 묻노니

今日登高醉幾人 오늘 등고에 술 취한 이 많던가?

쉬나무 열매 송이, 2018.11.3 창경궁

쉬나무는 우리나라에 자생한다고 알려져 있고, 민가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쉬나무는 7~8월에 꽃이 피고, 9~10월에 열매가 익는다. 처음에는 푸르던 열매 껍질이 붉은 색으로 익어가는데, 씨앗이 여물면 껍질의 붉은 색은 탈색되고 벌어져서 까만 씨앗이 보이게 된다. 쉬나무 씨앗으로는 기름을 짤 수 있는데, 옛날 선비 집안에서는 밤에 불을 밝힐 기름을 얻기 위해 집 근처에 심었다고 한다. 나는 몇 해 전 여름 봉화 청암정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청암정으로 들어가는 대문 왼편에 쉬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 쉬나무를 보면서 선비들의 야독에 필요한 기름을 떠올렸다. 창경궁의 통명전通明殿 뒤에도 쉬나무 고목이 자라고 있다. 창경궁을 갈 때 마다 나는 이 쉬나무를 보면서, 중양절 등고登高 풍속을 떠올린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도 중양절을 기념했는데, 국화주를 마신 기록은 꽤 있지만 수유 열매를 머리에 꽂은 기록은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 문인들도 중양절을 많이 노래하면서 수유와 국화를 언급하고 고향 생각에 잠겼지만, 이때 시인이 쉬나무를 떠올렸는지 노란 꽃이 피는 산수유를 떠올렸는지는 지금으로선 확인할 길이 없다.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통권 189호, 2020년 11/12월, pp.88~91.>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 이유출판, 2023, pp.146~152. 초고>


*續齊諧記云 汝南桓景 隨費長房學道 長房謂曰 九月九日汝家有災厄 宜令急去 各作絳囊盛茱萸以繫臂上 登高飲菊花酒 此禍可消 景如其言 舉家登高山 夕還 見雞犬牛羊一時暴死 長房聞之曰 此代之矣 故人至此日 登高飲酒 戴茱萸囊 由此爾. – 本草綱目 吳茱萸

**按周處風土記云 俗尚九月九日 謂之上九 茱萸到此日 氣烈熟色赤 可折其房以插頭 云辟惡氣禦冬. – 本草綱目 吳茱萸-이 글은 임창순의 <당시정해>와 임경빈의 <나무백과(6)> 등을 참고했다.

+표지사진: 쉬나무 열매, 2018.11.3 창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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