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람과 왕모람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3년 9/10월호)
고전을 읽다 보면 ‘초소유매楚騷遺梅’라는 표현을 만날 때가 있다. 초나라 굴원屈原이 쓴 이소離騷에서 매화는 노래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만큼 굴원은 초사를 지으면서 중국 남방의 많은 꽃과 나무를 읊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 중에 은사隱士를 상징하는 식물로 벽려薜荔가 있다. 벌써 여러 해 전 일이다. 옛글의 식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시경식물도감> 등 중국 고전의 식물을 연구한 책을 구했을 때, 지인 한 분이 ‘벽려薜荔는 초사에 나오는 향초香草’라고 하는데, 이 벽려가 <초사식물도감>에 어떻게 설명되어 있는지를 물었다. 책을 살펴보니 다행히 벽려가 실려 있었다. 뽕나무과 무화과나무속의 식물로 학명이 Ficus pumila L.이다. 상록 덩굴성 나무로 중국의 동부, 남부, 서남 지방과 대만, 일본, 인디아에 자생한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또 식물체에 향기는 없다고 했다. 무화과나무속의 식물들은 대개 열매처럼 보이는 화낭 속에서 꽃이 피므로 화낭을 잘라보기 전에는 꽃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꽃이 없는 열매’라는 뜻의 무화과無花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벽려를 상록 덩굴성 식물로 이해할 수 있는지 궁금해져서 용례를 더 살펴보기로 했다. 우선 <초사>에서 벽려가 쓰인 곳을 찾아보니 굴원屈原이 쓴 이소離騷, 구가九歌, 구장九章 및 유향劉向이 쓴 구탄九歎 등에서 여덟 곳 정도 보인다. 다음과 같다.
이소離騷에서,
(1) 擥木根以結茞兮 나무 뿌리를 캐어 구릿대를 묶고,
貫薜荔之落蘂 벽려에서 떨어진 꽃술을 꿴다.
구가九歌 상군湘君 에서,
(2) 薜荔柏兮蕙綢 벽려 발과 바질(basil) 휘장
蓀橈兮蘭旌 창포 노와 등골나물 깃발.
(3) 採薜荔兮水中 벽려를 물에서 캐고
搴芙蓉兮木末 연꽃을 나무 끝에서 꺽네.
구가九歌 상부인湘夫人에서,
(4) 罔薜荔兮爲帷 벽려를 엮어서 휘장을 만들고
擗蕙櫋兮既張 바질을 따서 처마에 널어 놓았네.
구가九歌 산귀山鬼에서,
(5) 若有人兮山之阿 누군가 있구나! 저 산 언덕에
被薜荔兮帶女羅 벽려 옷을 입고 송라 띠 둘렀네
既含睇兮又宜笑 은근한 눈길 주면서 또 정답게 웃으니
子慕予兮善窈窕 그대는 나를 사모하네, 아름다운 모습을!
구장九章 사미인思美人에,
(6) 令薜荔以爲理兮 벽려를 매개로 삼으려 해도
憚舉趾而緣木 발을 들고 나무에 오르기가 싫고
因芙蓉而爲媒兮 연꽃으로 중매하고 싶지만
憚蹇裳而濡足 치마를 걷고 발을 적시기는 싫네
구탄九歎 봉분逢紛에서,
(7) 薜荔飾而陸離薦兮 벽려로 꾸미고 아름다운 구슬을 드림이여!
魚鱗衣而白蜺裳 물고기 비늘 옷에 밝은 무지개 치마 입었네
구탄九歎 석현惜賢에서,
(8) 搴薜荔于山野兮 산과 들에서 벽려를 걷고
采撚支于中洲 섬 가운데에서 잇꽃을 따네
이제 앞에서 인용한 초사의 용례들로 보아 벽려를 Ficus pumila L.로 볼 수 있는지 살펴본다. 우선 (1)에서 “벽려에서 떨어진 꽃술을 꿴다”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 벽려, 즉 Ficus pumila L.은 무화과나무와 마찬가지로 꽃이 화낭 안에서 성숙하여 열매를 맺으므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꽃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2)에서는 벽려로 늘어뜨리는 발을 만들었으므로 덩굴성 식물로 이해할 수 있다. (3)은 “연꽃을 나무 끝에서 꺽”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벽려를 물에서 캐”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불가능한 상황을 표현한 시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4)에서는 벽려로 휘장을 만들었고, (5)에서도 벽려 덩굴을 휘감아 옷으로 삼았다는 뜻이므로 상록 덩굴성 식물로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다. (6)은 나무에 감겨 자라고 있는 벽려 덩굴을 걷는다고 이해할 수 있다. (7)과 (8)도 마찬가지로 상록 덩굴성 식물인 Ficus pumila L.로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다. 단지 (1)의 용례는 이해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꽃술을 Ficus pumila L.의 화낭(꽃 주머니)으로 이해하면 화낭에 난 구멍으로 실을 꿸 수 있으므로 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용례로 보아, 벽려를 Ficus pumila L.로 보는데 문제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식물지>에 의하면 Ficus pumila L.의 현대 중국명도 벽려薜荔이다. 일본의 <식물의 한자어원사전>에서도 벽려를 Ficus pumila로 보고 있으며, Ficus oxyphylla (모람)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므로 <초사식물도감>의 설명처럼 벽려를 Ficus pumila L.로 이해해도 잘못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의 <물명고>에서도 벽려薜荔에 대해 “덩굴성 나무로 담장에 드리워지며, 털마삭줄(絡石)만큼 크다. 꽃이 피지 않고 열매가 열린다. 열매 크기는 술잔만 하고 연밥(蓮蓬)과 살짝 비슷한데 조금 더 크다. 6/7월에 열매가 열리고 안쪽은 비어있고 붉다. 8월 이후에는 피(稗) 낟알 크기 만한 자잘한 씨앗이 배 속에 가득해진다. 씨앗 하나에 털 하나가 있고 맛은 조금 텁텁하지만 아이들이 많이 먹는다.”*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무화과나무의 꽃주머니 화낭을 열매로 오해하고 있는데, 이 설명은 대략 마삭줄 잎 비슷한 벽려의 잎과 열매 특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벽려를 무엇으로 번역해야 할까? <한국의나무>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무화과나무속의 식물로는 천선과나무와 모람, 왕모람이 자생하고 있다. 이 벽려는 모람이나 왕모람과 대단히 유사한 식물이다. 일본에서 벽려를 모람(Ficus oxyphylla)으로 본 데에서도 그 유사성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조선식물향명집>에서는 Ficus pumila L.을 ‘왕모람’으로 적었고, 최근의 국립수목원 <국가재배식물목록집>에서는 ‘모람’으로 적고 있기도 하다.
<한국고전종합DB>를 살펴보면, 대부분 글자 그대로 벽려로 번역하고 있으나, 줄사철나무, 담쟁이덩굴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조선 중종때의 학자 최세진崔世珍(1468~1542)의 <훈몽자회>에서는 벽薜을 “담쟝이 벽”, 려荔 “담쟝이 례, (중국) 속칭 벽려초薜荔草”라고 설명했다. 즉 벽려를 담쟁이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는 모람과 줄사철나무의 한자명으로 벽려薜荔를 기재했으며, 민중서림의 <한한대자전>에서는 벽薜과 벽려薜荔를 ‘줄사철나무’로 훈을 달고 있다. 이로 보면, 실제 우리나라에서 벽려를 담쟁이덩굴이나 줄사철나무로 이해한 경우도 있었던 듯 하다. 하지만 벽려는 줄사철나무와 담쟁이덩굴과는 과가 다른 나무이다. 벽려를 한자명 그대로 우리말 번역에서 사용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 경우에는 벽려가 모람이나 왕모람과 거의 같은 나무라는 사실은 묻히게 될 것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벽려를 모람으로 번역해도 괜찮을 것 같다.
이제 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773~819)의 시 ‘유주성 누각에 올라 (登柳州城樓 寄漳汀封連四州刺史)’를 읽어본다. 중국 남부 지방에서 담장에 자라는 벽려이므로 모람 류가 분명하다.
城上高樓接大荒 성 위 높은 누각에서 황야를 보노라니
海天愁思正茫茫 근심 걱정은 바다와 하늘처럼 망망하구나
驚風亂颭芙蓉水 사나운 바람에 연꽃 핀 물은 어지럽게 출렁이고
密雨斜侵薜荔牆 거센 비는 모람 덮인 성벽에 들이친다
嶺樹重遮千里目 고갯마루 나무들은 아득한 시선을 가리고
江流曲似九回腸 굽이치는 강물은 구곡간장 같구나
共來百越文身地 문신하는 남쪽 땅에 함께 왔건만
猶自音書滯一鄕 아직도 소식은 한 곳에 막혀 있네
한편,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1564~1635)의 ‘양문역梁文驛 마을에서 읊다 (梁文驛村口占)’에 나오는 벽려는 줄사철나무나 담쟁이덩굴일 가능성이 크다. 양문역은 현재 경기도 포천 지방에 있었던 역이라고 하므로 줄사철나무와 담쟁이덩굴은 자랄 수 있지만, 모람이나 왕모람은 자라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시가 지어진 때가 <훈몽자회>가 유포된 이후이고, 또 경기도 일원의 인가에서 담쟁이덩굴을 더 흔히 만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이 시의 벽려는 조심스럽게 담쟁이덩굴로 번역해본다.
驛古人煙少 옛 역참에 인가의 연기 드문데
村墟薜荔長 마을 터에는 담쟁이덩굴이 무성하네
爛畦瓜芋熟 반짝이는 밭둑엔 오이와 토란이 익고
挾路豆稭香 좁은 길에는 콩 짚이 향기롭네
行帳依深樾 나무 그늘 깊숙이 휘장을 치고
官廚傍廢墻 허물어진 담장 곁에 주방을 차렸다
蕭然生野興 한적하게 시골 흥취가 일어나니
却訝是還鄕 도리어 고향에 돌아온 듯 하여라.
나는 오랫동안 야생에서 자라는 모람과 왕모람을 보고 싶어 하다가, 2018년 11월 제주도에서 비로소 그 모습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운 좋게도 모람과 왕모람의 열매 모양 화낭까지 보았다. 특히 왕모람 화낭은 일행 중 한 분이 너덜지대에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덩굴 속에서 가지를 헤쳐가며 어렵사리 찾은 것이었다. 모람과 왕모람 화낭 끝에는 작은 구멍이 있어서, 꽃주머니를 실로 꿸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초사>에서 은자가 그 덩굴을 둘러 옷으로 삼았을 모습을 상상하면서 한참 동안을 감상했다.
<2016.12.26 처음 쓰고, 2020년 12월 20일 다시 쓰다.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통권206호, 2023년 9/10월호, pp.72~80.>
* 薜荔, 蔓延樹木垣墻 大于絡石 不華而實 實大如盃 微似蓮蓬而稍長 六七月實 內空而紅 八月後則滿腹細子 大如稗粒 一子一鬚 其味微濇 童兒多食之 – 물명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