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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Apr 22. 2022

오랜 세월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과꽃, 배추국화

취국翠菊, 자국紫菊


올해도 과~꽃이 피~었읍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읍~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어효선 작사, 권길상 작곡의 동요 ‘과꽃’이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에 이 노래를 불렀지만 과꽃이 어떤 꽃인지는 몰랐다. 화단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우리 집 담장 밖에 한 줄로 엉성하게 심어진 화초 중에 어머니가 ‘배차국화’라고 부르던 꽃이 있었다. ‘배차국화’는 ‘배추국화’의 안동 사투리이다. 나는 최근에 원예가 김영전이 1963년에 간행한 <백화보>를 펼쳐서 과꽃(翠菊) 부분을 읽다가, 이 꽃이 바로 ‘배차국화’ 임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음악시간에 배워서 노래로 불렀던 ‘과꽃’이 그 ‘배차국화’ 였다니! 그럼 나는 초등학교 시절 과꽃을 알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몰랐다고 해야 하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과꽃, 2022.7.25 춘천

김영전은 <백화보>에서, “과꽃은 어릴 적에는 마치 배추잎의 모양과 같으나 막상 꽃대가 나오면서는 잎이 좁은 댓잎처럼 꽃대에 돋아난다. 화려한 이 꽃은 품위 있는 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대중적인 꽃으로서 오랜 세월을 우리와 함께 살아왔다. … 과꽃을 당국화(唐菊花)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중국꽃으로 잘못 알고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과꽃은 우리의 꽃으로서 백두산, 고무산, 혜산진, 부전고원 같은 고냉지에 자생으로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온 과꽃(Callistephus chinensis (L.) Ness)은 고전에서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당국唐菊은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阮堂全集>이나 이유원李裕元(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 등에서 추모란秋牡丹의 우리나라 속명으로 나온다. <중약대사전>이나 <중국식물지>에서 추모란은 Anemone hupehensis var. japonica, 우리가 ‘대상화待霜花’로 부르는 화초로, 과꽃과는 거리가 멀다. 과꽃을 일부에서 당국화로 부르기도 한 것은 사실일 터이지만, 중국의 추모란과는 다르다. 대신 <중국식물지>는 과꽃을 취국翠菊 혹은 오월국五月菊이라고 했다. 그런데, 취국翠菊은 일부 문인들의 시에 쓰이기도 했지만 조선말엽의 한자어휘집인 <물명고>나 <광재물보>에는 실려있지 않다. 대신 <물명고>에는 자국紫菊이 실려있는데, 자국에 대해, “꽃은 국화 비슷하지만 홑 꽃잎이어서 이 이름으로 부른다. 사실 국화는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한글로 ‘개구화’라고 했다. 이 ‘개구화’는 남광우南廣祐(1920~1997)의 <고어사전>에 “과꽃, 취국(翠菊)”으로 나온다. 이제서야 과꽃이 우리 고전에 어떤 한자로 표현되었는지 실마리가 찾아진 셈이다.


과꽃, 2022.7.25 춘천

그런데, 한가지 더 살펴볼 점은, <본초강목>에서 마란馬蘭의 이명으로 자국紫菊이 나온다는 점이다. 좀 더 살펴보면, “마란馬蘭, 석명釋名 자국紫菊, 그 잎은 난蘭(등골나물) 비슷하며 크고, 그 꽃은 국화 비슷한데 자주빛이라서 이러한 이름이 지어졌다. 속칭 물건이 큰 것을 말(馬)이라고 한다. … 마란馬蘭은 호수나 연못의 낮고 습한 곳에 아주 많다. 2월에 싹이 크고 붉은 줄기에 흰 뿌리이다. 긴 잎은 깍인 톱니가 있으며 택란澤蘭(등골나물) 비슷한 모양이다. 단 향기는 없다. … 입하入夏에 2, 3척 크기로 자라고 자주 빛 꽃이 피며 꽃이 그치면 자잘한 씨앗이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중약대사전>과 <중국식물지>에서 마란馬蘭은 Kalimeris indica (L.) Schulz-Bip.으로 쑥부쟁이 류와 비슷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자생하거나 재배하지 않는 식물이다. 그러므로 우리 고전의 자국紫菊은 마란馬蘭이 아닐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러므로 과꽃은 중국에서는 주로 취국翠菊이라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자로 자국紫菊이라고 쓰고 민간에서 ‘개구화’로 불렀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속명으로 당국唐菊이라고 했던 추모란秋牡丹이 과꽃이라는 견해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자. 우선, 추모란과 취국翠菊은 <군방보>에 서로 다른 화초로 기재되어 있으므로 최소한 중국에서는 과꽃으로 보지 않았다. “추모란秋牡丹은 초본草本으로 두루 땅으로 덩굴로 뻗는다. 잎은 모란 같은데 조금 작다”**라고 <군방보>는 설명하고 있는데, 과꽃은 덩굴지는 풀도 아니고 잎 모양도 3출엽, 혹은 2회 3출엽인 모란과는 다르다. 그런데 <물명고>에서 추모란秋牡丹을 ‘당구화’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물명고> 기록을 근거로 우리나라 고어사전들은 ‘당구화’를 “당국화唐菊花, 과꽃”으로 해설하고 있다. 아마 이러한 해설 때문에 과꽃을 추모란이라고 하는 견해가 형성되었을 것이지만 이는 제고해볼 문제이다. 왜냐하면, <물명고>에서 서로 다른 식물로 기재한 것이 분명한 두 식물, 즉 자국紫菊과 추모란秋牡丹이 모두 과꽃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추모란을 조선시대에 당국唐菊이라고 불렀고, 과꽃도 당국唐菊으로 부른 사례가 있어서 혼동이 생긴 것이 아닐까 추정해볼 따름이다.


대상화, 2021.10.16 화담숲 - 잎 모양이 3출엽으로 모란과 유사하다.


이제 과꽃 자국紫菊과 국화 黃菊을 대비한 구암懼庵 이수인李樹仁(1739~1822)의 시 “노란색, 자주빛 두 국화를 읇다 (黃紫二菊吟)”를 소개한다.


紫菊生於黃菊邊   자주빛 과꽃이 노란 국화 곁에 자라니

黃菊猶遲紫菊先   국화는 늦어지고 과꽃이 먼저 피네

由來正道多遲就   본래 바른 길은 더디게 이루는 일 많으니

遲就方能耐久全   늦게 피어 오래도록 온전함을 지키려네


일반적으로 과꽃이 7~9월에 피고, 국화는 가을에 피므로, 시인은 과꽃이 먼저 피는 점을 포착하여 자신의 뜻을 국화 꽃에 이입하고 있는 것이다. 취국翠菊으로 과꽃을 표현한 글도 있다. 조선 중기의 학자 경와敬窩 김휴金烋(1597~1638)의 “한 언덕 (一丘)”이라는 시이다.


一丘煙月屬閑居   한 언덕 풍경은 한가롭게 살기 좋아라

長夏深山樹擁廬   긴 여름 깊은 산속, 초가를 감싼 나무들

荷葉細撓風過後   바람 스치자 연 잎은 살며시 흔들리고

鳥聲微到午眠初   낮 잠이 막 드는데, 새 소리는 희미하게 들리네

疏籬翠菊和煙種   성근 울타리에 과꽃은 요초와 어울리고

晩圃幽蘭帶雨鋤   저물 녘 채소밭에서 비 맞으며 난초를 돌보노라

不逐時人賭寵祿   벼슬살이 녹봉 좇는 사람들을 따르지 않으리니

懶夫生理只琴書   게으른 사나이 생활은 거문고와 책뿐이라


김휴金烋는 <해동문헌총록海東文獻總錄>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지학 책을 저술하면서 수많은 책을  박학다식한 학자였다. 아마도 그는 <군방보> 취국翠菊이 과꽃임을 알았을 것이다. ‘ 언덕 (一丘)’ 보통 은자가 사는 곳을 뜻하는데, 시골에서 책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그의 뜻이 보인다.


과꽃, 2022.7.25 춘천

김영전은 <백화보>에서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과꽃을 당국화로 부르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듯, 도봉섭 등이 1956년 평양에서 간행한 <조선식물도감 제2집>에서 “과꽃 (Callistephus chinensis Nees),  북부 산지에 자생하며 또 관상용으로 재배하는 1년생 초본이다”라고 적고 있고, 이창복은 <대한식물도감>에서 “부전고원赴戰高原에서부터 만주와 중국 북부에 걸쳐 자라는 一年草”라고 했다. 하지만 2015년 산림청과 국립수목원에서 간행한 <한반도 자생식물 영어이름 목록집>에는 과꽃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생식물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비록 남한에는 자생하지 않지만 과꽃은 시골 촌부들에게 사랑 받아 우리집 담장 밖에도 심어졌던 꽃이다. 과꽃을 배추국화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마도 어릴 때 잎 모양이 배추와 비슷해일 것이다. 함께 자란 형제들에게 옛날 시골집의 ‘배차국화’가 생각나는지 물어보니, 꽃을 좋아하는 누님과 동생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끝>


*紫菊, 花似菊而單瓣故名 實非菊也 개구화 - 물명고

**秋牡丹草本 徧地蔓延 葉似牡丹差小 花似菊之紫鶴翎黃心 秋色寂寥 花間植數枝 足壯秋容 分種易活 肥土為佳 - 佩文齋廣羣芳譜 卷第三十四

***馬蘭, 釋名紫菊, 其葉似蘭而大 其花似菊而紫 故名 俗稱物之大者 爲馬也 … 馬蘭湖澤卑濕處甚多 二月生苗 赤莖白根 長葉有刻齒 狀似澤蘭 但不香爾 … 入夏高二三尺 開紫花 花罷有細子” - 본초강목

+표지사진 - 과꽃, 2022.7.25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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