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불초金沸草,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4년 5/6월호>
我愛金錢花 내가 사랑하는 금전화金錢花는
對之淸心目 마주하면 마음과 눈이 맑아지는데,
如何孔方兄 어찌하여 엽전은
一見令人慾 한번 보고 사람들은 욕심을 내는가?
사육신의 한 분인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1418~1456)이 안평대군安平大君(1418~1453)의 ‘비해당匪懈堂 사십팔영四十八詠’에 화답한 시 중 금전화金錢花이다.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로 유명한,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은 시문과 글씨에 뛰어난 비운의 예술가로, 당시 집현전 학사들이 그를 많이 따랐다고 한다. 안평대군이 지금의 인왕산 자락에 있던 자신의 집 비해당匪懈堂 주변의 48가지 아름다움을 시로 읊은 것이 ‘비해당 48영’인데, 여기에 모란, 배꽃, 살구꽃, 동백 등 유명한 꽃과 함께 등장하는 것이 ‘황금 돈 꽃’이라는 뜻의 금전화金錢花이다.
사실 ‘돈’이 화초의 이름으로 사용된 사례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남부지방에 자라는 돈나무(Pittosporum tobira)가 있지만, 돈나무 꽃은 흰색으로 피었다가 황색으로 변하는 작은 꽃이라서 황금색 돈이라는 표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언론인 문일평文一平(1888~1936)의 <화하만필花下漫筆>에도 금전화가 소개되어 있는데, “꽃빛이 누렇고 그 모양이 돈과 같음으로 해서 금전화金錢花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설명하고, “우리 근역槿域에서는 어느 때부터 이 꽃을 금전화金錢花라고 했는지 그는 알 수 없으나 이조초기李朝初期의 안평대군安平大君의 사십팔영四十八詠 중에 금전화金錢花의 이름이 나타난 것을 보면 그 유래由來가 퍽 오랜 것을 알 것”이라고 했다. 이 설명을 읽어도 금전화가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
이 금전화는 안평대군보다 2백여년 앞서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에도 등장하고 있고, 비해당 48영으로 인해 문인들이 많이 노래한 꽃이지만, 각종 식물의 국명을 수집해 정리한 이우철의 <한국 식물명의 유래, 2005>에도 채록되어 있지 않아서 지금은 거의 잊혀진 이름으로 보인다. 1963년에 간행된 원예가 최영전의 <백화보>를 보면, 여름 꽃의 하나로 금전화金錢花가 그림과 함께 실려있다. 학명이 Calendula officinalis, 영명은 Pot marigold, Calendula, 카나리섬, 페르시아 원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꽃을 금송화 또는 옥동동화라고도 하나 흔히 금전화(金錢花)로 통한다. 그 꽃 빛이 돈(金)처럼 누렇고 모양이 둥글기 때문에 금전화라는 이름이 붙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Calendula officinalis는 현재 ‘금송화’ 혹은 ‘금잔화金盞花’라고 불리고 있고 우리나라에는 조선 후기 이후에 서양에서 도입된 원예종이라서 세종 당시에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과연 금전화는 무엇일까? 우선 문일평은 <화화만필>에서 금전화의 출전으로 <군방보群芳譜>를 인용하여, “이른바 일개야락日開夜落, 낮에 피었다가 밤에 지게 됨으로써 자오화子午花라는 별호”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광군방보廣群芳譜>를 자세히 살펴보면, 2종의 금전화가 나온다. 하나는 자오화의 이명으로, 또 하나는 선복화旋覆花의 이명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금전화金錢花. 일명 자오화子午花이다. 격물총화格物叢話에서 이르기를, ‘꽃을 금전金錢으로 이름지은 것은 그 모양이 비슷함을 말한 것이다. 단지 모난 빈 구멍이 없다’. 화사花史에서 이르기를, ‘오시午時에 피고 자시子時에 져서 자오화子午花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명 야락금전화夜落金錢花이다’ ... 꽃은 가을에 피고 노란색 꽃송이가 돈 같고 푸른 잎에 부드러운 가지가 예뻐서 사랑할 만하다. 원림초목소園林草木疏에 이르기를, ‘양梁 대동大同(535~546) 연간에 외국에서 진상했다. 지금은 곳곳에 있다. 옹기 화분에 심어 작은 대 시렁으로 꾸미면 서재의 고상한 취미이다.”*
“적적금滴滴金. 일명 하국夏菊, 일명 애국艾菊, 일명 선복화旋覆花이다. … 화사花史에서 일명 금전국金錢菊이라고 했다. 본초本草에서도 금전화金錢花로 이름했다. 줄기가 푸르고 향기로우며, 잎은 푸르고 길며 뾰족하고 갈라진 곳이 없다. 키는 겨우 2, 3척이고 꽃은 황금색이다. 수많은 가느다란 꽃잎이 대개 2, 3층을 이룬다. 밝은 노란색 안에 이어진 짙은 노랑 가운데 연두색 점이 하나 있어서 공교롭다. 엽전 같이 작으며 절이전折二錢 같이 큰 것도 있는데, 자라는 땅이 다르기 때문이다. 6월부터 8월까지 핀다.”**
즉, <광군방보>에서는 자오화로 불리는 금전화와 선복화로 불리는 금전화는 서로 다른 화초로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시진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금전화가 선복화旋覆花, 즉 금불초金沸草의 이명으로만 기록되어 있고, “잎은 석잠풀(水蘇) 같고, 꽃은 국화 같이 노랗다. 6월에서 9월까지 꽃을 딴다”***라고 설명했다.
우선 군방보에서 금전화의 하나로 소개한 자오화는, 현대 중국에서 오시화午時花, 야락금전夜落金錢 등으로 불리는데, <중국식물지>에 의하면 학명이 Pentapetes phoenicea L.인 아욱과 식물이다. 인디아 원산으로 중국의 광동, 광서, 운남 등 남부지방에서 관상용으로 재배하고 있다. 정오 무렵에 꽃이 피고, 다음날 새벽에 지므로 오시화午時花라는 이름이 붙었고, 꽃송이 채 떨어져서 야락금전夜落金錢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영어로는 ‘noon flowers’로, 우리나라에서 ‘펜타페테스’, 불리는 원예용 식물인데, 식생 환경이 달라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에 도입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중약대사전>에 의하면, 선복화旋覆花, 금불초金沸草, 금전화金錢花, 금전국金錢菊은 모두 학명이 Inula britannica L. var. chinensis (Rupr.) Reg.로 우리가 금불초로 부르는 식물이고, 우리나라에도 자생하는 식물로 예로부터 한약재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므로, 이규보와 안평대군이 노래했던 금전화는 선복화, 즉 금불초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 고전에서, 금전화를 노래한 한시 중에 꽃의 특성을 묘사한 구절을 몇 가지 살펴보면서 금전화가 무슨 꽃인지 더 알아보자.
早夏移根用意栽 초여름 옮겨 심고 마음 써서 가꾸었는데
尙含檀口待誰開 아직 다물고 있는 입술은 누굴 기다려 피려는가
또,
金剪圓錢發此花 황금으로 둥근 돈 만들어 이 꽃을 피웠으니
天工用意一何多 하늘의 조화 어이 이리 훌륭한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나오는 금전화를 노래한 시 2수 중 일부이다. 이 시를 보면, 금전화는 엽전 모양의 노란 꽃이 피는 화초이다. 시인은 초여름에 꽃망울이 맺힌 금전화를 보고,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있다.
看餘采采握還盈 꽃구경하다 많이 캐어 한 줌 가득 가져오니
爲愛金英綴玉莖 옥 같은 줄기에 매달린 황금 꽃부리 사랑스러워라
또
富屋貧家隨處足 부잣집에도 가난한 집에도 넉넉히 있으니
世間無物與爭衡 세상에 골고루 갖고자 서로 다투는 물건 없어라.
이 시구는 태허정太虛亭 최항崔恒(1409~1474)과 허백정虛白亭 홍귀달洪貴達(1438~1504)이 각각 비해당 48영에 화답하여 읊은 금전화金錢花의 일부이다. 금전화는 가난한 집에도 있는 흔한 꽃이고, 많이 캐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금전화는 귀한 원예종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또한 서거정徐居正은 비해당 48영에 화답한 시 외에 별도로 ‘금전화행 (金錢花行)’을 지어서 금전화를 자세히 묘사했다.
有花名金錢 금전화라 불리는 꽃이 있으니
形質還依然 모양과 바탕이 금전과 비슷하네
陰陽爲炭天地爐 천지의 화로에 음양으로 숯을 삼아
鑄出箇箇圓復圓 낱낱이 둥글게 둥굴게 주조해 내었네
由來金錢富家有 예로부터 금전은 부잣집에 있는데
胡爲生此窮巷口 어찌하여 이렇게 외딴 시골 어귀에 자라는가?
이 시에서는 금전화의 모양을 설명하고 나서 “어찌하여 이렇게 외딴 시골 어귀에 자라는가?”라고 하여, 시골의 길 가에 자라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몇몇 시의 묘사를 바탕으로 추론하면, 금전화는 초여름부터 엽전 모양의 노란 색 꽃이 피고, 외딴 골목 어귀에 흔히 자라고 있어서 가난한 집도 넉넉히 가질 수 있는 꽃이다. 그러므로 금전화는 당시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이고, 지금 우리가 선복화로도 부르는 금불초로 추정할 수 있다.
‘선복화旋復花’는 <향약집성방>에 향명 ‘夏菊(하국)’으로 소개되어 있고 이명으로 금불초金沸草 등을 기록했는데, 특히 “도경圖經에 이르기를, ‘지금 있는 곳에 있다. 2월 이후에 싹이 트고 물 가 근처에 많다. 크기는 붉은 쪽 비슷하고 가시는 없다. 키가 1~2척부터 난 잎은 버들잎 같고 줄기는 가늘다. 6월에 국화 같은 꽃이 피고 작은 동전銅錢 크기의 짙은 황색이다. 상당上黨(중국 산서성 남동부 지명, 長治)의 시골 사람들은 금전화金錢花라고 한다. 7, 8월에 꽃을 딴다”****라고 하여 금전화라는 이름도 기록했다.
<물명고>에도 <군방보>와 마찬가지로 금전화金錢花가 두 종이 수록되어 있다. 하나는 하국夏菊의 이명으로, 또 한 곳은 子午花의 이명이다. 우선 하국夏菊에 대해서는 “키는 1, 2척이다. 잎은 메꽃(旋花) 잎 같고, 6, 7월에 짙은 노란 꽃이 피며, 모양은 작은 동전銅錢 같다. 개천이나 골짜기 가에 자란다. 션복화. 선복화旋覆花, 금불초金佛草, 금전화金錢花, 적적금滴滴金, 도경盜庚, 대침戴椹 동仝”*****이라고 했다. 한편, 자오화子午花의 이명으로 금전화에 대해서는 “금전화金錢花. 거의 덩굴처럼 자라며, 7월에 짙은 홍색 꽃이 피고 검은 씨앗이 맺힌다. 약간 닥풀(黃蜀葵) 꽃 비슷하며 작고, 오시午時에 피고 자시子時에 진다. 야락금전夜落金錢, 천촉규川蜀葵, 자오화子午花 동仝”******이라고 하여, 오시화午時花(Pentapetes phoenicea L.)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 후, “우리나라 민간에서 금전화金錢花로 일컫는 것은 잎이 도깨비바늘(鬼針) 및 쑥갓(蒿菊) 같고, 꽃은 겹꽃석류 같으며 주황색이다. 비록 금전화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사실은 아니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잎은 도깨비바늘(Bidens bipinnata L.)이나 쑥갓 비슷하고 꽃은 주황색 겹꽃석류 비슷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원예용으로 기르고 메리골드라고 총칭하기도 하는 만수국(Tagetes patula L.) 혹은 천수국(Tagetes erecta L.)을 말하는 듯한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일본에서 발간된 <원색원예식물도감, Vol. I>을 참고해보면, 만수국은 일본에 1684년경 도입되었다고 하므로*******, 1800년대 초반에는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요즈음에도 만수국을 금잔화 혹은 금전화로 잘못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물명고>의 설명을 보면, 아마도 조선 후기에 멕시코 원산의 만수국과 함께 유럽 원산의 금잔화가 도입되었고, 금전화라는 명칭과 혼동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자생한 꽃으로 한약재로 쓰이고 고려시대부터 금전화라고 불리었으며, 영예롭게 안평대군의 비해당 48영에 이름을 올리면서 조선시대 많은 시인들이 읊은 금전화는 ‘금불초’로 봐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천재 시인으로 불리었던 하곡荷谷 허봉許篈(1551~1588)이 아홉살 때 지었다고 알려진 ‘금전화金錢花’를, 노란 금불초 꽃을 떠올리며 감상해본다.
化工爐上用功多 조물주가 풀무에 공을 많이 들여서
鑄出金錢一樣花 금전 모양 꽃을 만들어 내었네
半兩五銖徒自貴 반 냥 닷 푼도 귀하게만 여기고
不知還解濟貧家 풀어 흩어 가난한 집 구제할 줄 모르네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통권210호, 2024년 5/6월, pp. 86~95.>
* 金錢花 一名子午花 格物叢話云 花以金錢名 言其形之似也 惟欠稜廓耳 花史云 午開子落 故名子午花 一名夜落金錢花 ... 花秋開 黃色 朶如錢 綠葉柔枝 㛹娟可愛 園林草木疏云 梁大同中進自外國 今在處有之 栽磁盆中 副以小竹架 亦書室中雅翫也 又有銀錢一種 七月開 以子種 - 廣群芳譜
** 滴滴金 一名 夏菊 一名 艾菊一名 旋覆花. … (花史)一名金錢菊 本草亦名 金錢花. 莖青而香 葉青而長 尖而無椏 高僅二三尺 花色金黃 千瓣最細 凡二三層 明黃色心 乃深黃中 有一點微綠者巧 小如錢 亦有大如折二錢者 所產之地不同也 自六月開至八月 - 廣群芳譜
*** 旋覆花, 金沸草 金錢花 滴滴金 盜庚 夏菊 戴椹 … 葉似水蘇 花黃如菊 六月至九月採花 - 本草綱目
**** 旋復花. 夏菊 … 圖經曰 今所在有之 二月已後生苗 多近水旁 大似紅藍而無刺 長一二尺已來 葉如柳 莖細 六月開花如菊花 小銅錢大 深黃色 上黨田野人呼爲金錢花 七八月採花 – 향약집성방 (상당上黨은 중국 산서성 남동부 지명, 長治를 말함.)
***** 夏菊, 長一二尺 葉如旋花之葉 六七月深黃花 狀如小銅錢 生溝壑邊 션복화. 旋覆花, 金佛草, 金錢花, 滴滴金, 盜庚, 戴椹 仝 – 물명고
****** 金錢花. 殆類蔓生 七月深紅花 結黑子 頗類黃蜀葵花而小 午開子落. 夜落金錢, 川蜀葵, 子午花 仝. 東俗 有稱 金錢花者 葉如鬼針 及 蒿菊 花如千葉石榴 而黃朱色 雖得金錢之名 而實非也 - 물명고
******* “French Marigold (Tagetes patula L.) … なお日本には貞享元年(1684)に入ってきた.” - 塚本洋太郞, 原色園藝植物圖鑑, 改訂版, Vol. I, p.123
+표지사진 - 금불초, 2018.8.11 화야산
++<동의보감>은 ‘선복화旋復花’를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의 하나로 ‘하국’으로 소개하고 있고 이명으로 금불초金沸草를 기록했다. 1870년경의 <명물기략>은 금전화金錢花를 “금젼화, 잎은 석잠풀(水蘇) 비슷하고, 노란 꽃이 국화 같다. 금불초金沸草, 적적금滴滴金, 도경盜庚, 하국夏菊, 대침戴椹, 선복화旋覆花”로 설명하고 있는데, 석잠풀의 잎은 좁고 긴 타원형으로 금불초 잎과 비슷하다. 또한 <명물기략>에는 금잔화金盞花를 수록하면서, “민간에서 金錢花로 잘못 부른다”라고 적고 있다. 금잔화를 금전화로 잘못 부르는 사례는 앞에서 소개한 <백화보>에도 보이는데, 그 유래가 오래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