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와의 하루

더 많이 사랑하는 나는 언제나 약자이다

by 이국영

“헤어졌어.”

덤덤하게 말을 내뱉는 아이의 얼굴에 어둠이 짙게 깔린다.


“왜?”라고 조심스레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아이의 손을 말없이 토닥였으나 궁금증을 참지 못해 다시 물었다. “왜? 무슨 일인데?” 그러나 이번에도 침묵뿐이었다. 마치 바다 깊숙이 빠져든 듯 답답함만 밀려왔다. 어떤 위로의 말도 잔소리로 들릴 것 같아 결국 입술을 꾹 다물었다.


마트를 둘러보며 이것저것 물건을 담았다.

“다른 거 필요한 거 없어?” “몰라.” 짧고 무심한 대답, 온몸으로 짜증을 내는 아이. 결국 내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무거운 짐을 들어주겠다는 아이에게 “됐다. 내가 들게.” 하고 쌀쌀맞게 뿌리쳤다. 순간 아이는 놀란 듯했으나 곧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엄마 저녁 뭐 먹을래?”

아이가 물음에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불편한 마음으로 마주 앉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혼자 저녁을 차려 먹고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눈이 마주치자 스터디카페에 간다 했다.

결국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왜 엄마한테 짜증을 내는 거야?” “내가? 내가 언제? 엄마가 나한테 짜증을 내잖아.” 아이도 되받아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시 찾아온 사춘기. 요즘 부쩍 예민해진 아이를 이해하려 애썼지만 오늘만큼은 쉽지 않았다. 말없이 집을 나선 아이를 곁눈질로 바라보다, 텅 빈 집에 홀로 남겨졌다. 애꿋은 책장을 뒤척이다 결국 눈물이 터졌다.


‘조금 더 다정한 엄마가 되어줄걸..’

후회가 밀려왔다. 결국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었다.


“엄마가 오늘은 몸도 마음도 지쳐서 너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했어. 미안해. 친구들과 공부하고 너무 늦지 않게 들어오렴.” 문자를 남겼다.


오늘도, 나의 패배다.

ChatGPT Image 2025년 9월 23일 오후 10_16_08.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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