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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가다 Apr 21. 2023

기적은 애써야 일어난다

이 시기에 세입자를 만나게 된 것도 기적

“다른 팀은 오지 않게 취소 전화 넣어주세요. 부동산에 가서 바로 계약서 쓸 거예요.”


얼굴은 아무렇지 않은 듯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마음은 이미 소리치며 두 발로 콩콩 뛰고 있었다. 현관문으로 세 여자가 나간 후, 우리 부부는 실감 나지 않는 듯 그저 감사를 외쳤다.


이른 아침부터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하고 쓸고 닦은 남편에게 수고했다는 고마움을 전했다. 방문객들의 예약소식에 긴장이 되었는지 새벽부터 일어난 그였다. 혹시 계약이 안 되어도 괜찮으니 맘 편히 할 일을 하면서 쉬라 말해도, 눈에 거슬리는 모든 것들을 치우면서 애쓰는 그였다.




남편의 국내 복귀를 결정하고, 발령이 난 연초부터 3개월이 넘는 동안 집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우리가 수없이 고민하며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최악의 경우에는 1년간 집을 비운 채, 두 개 집을 운영하며 관리비와 100만 원이 넘는 월세를 감당할 각오를 했다.


두 달 전 집주인에게 우리의 결정을 알린 후, 네 개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다. 33평 전세 2억 1천. 3년 전 2억에 입주해 1년 전 2억 1천으로 재계약했다. 주인이 거래하던 곳까지 합하면 네이버부동산에 다섯 개의 거래소가 기록되었다. '남향으로 즉시 주 가능. 도배.' 주인 할아버지는 시기상 거래가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는지, 답답해하는 나의 통화에도 여유가 묻어났다. 이사 후, 도배를 요청하는 부분도 웃으며 대답했다. 몇 차례 부동산에 전화를 넣어 확인을 해도 지금처럼 거래가 없는 일은 처음이란다. 주변에 입주 물량들이 쏟아지고 있어, 오래된 아파트는 문의전화도 없다는 것이다. 이율이 오르고 대출 상품들이 다양해지면서 신혼부부들은 새 아파트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사철이 되어도 도통 찾아오는 손님이 없다며 부동산 사장님들은 미안함으로 공손한 대답 한다. 


1년간  부산집은 세컨드하우스로 사용하면서 살리라고, 모든 희망을 포기하며 남편의 발령지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부산 집을 찾았다. 뉘엿뉘엿 해가 지는 경주 카페에 앉아있는데, 젊은 여사장님이 운영하는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집을 볼 수 있을까요? 신혼부부가 집을 구하고 있어서요.”


“에고, 제가 지금 경주인데... 내일 안 될까요? 내일은 종일 가능해요. 일요일도요.”


“여러 집을 구경하는 중에 사모님 집도 끼워서 돌아볼까 했어요.”


어떻게 온 기회인데 놓쳤나 싶기도 하고, 들러 가는 길에 보는 집이라면 그 찰나를 위해 부산까지 운전을 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언제든 기회는 또 오리라고.


관리비를 두 군데 내면서 다음 달부터는 임시거처 아파트의 월세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멀뚱멀뚱 누워서 새까만 천정을 바라보자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쳤다. 내일은 적극적으로 부동산에도 전화를 넣고, 주인할아버지에게도 계약금을 깎아보자고 말이다.




주말에 부산 집에 도착해서 부지런히 집을 정리했다. 오래된 집이지만 누구든지 방문해도 깨끗하고 예쁜 집으로 보이도록 손을 움직였다. 손님의 입장에서 집에 들어왔을 때 가장 잘 보이는 현관과 거실 그리고 부엌에 나온 물건들을 모두 집어넣어 깨끗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난 후, 신혼부부를 데려 오려했던 사장님에게 전화를 넣었다.


“사장님, 그 신혼부부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원하는 집을 만났나요? 제가 지금 부산이에요.”


“아, 그러시군요. 그럼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실 수 있어요? 거실과 부엌 화장실도요.”


“그럼요. 사진 찍어서 보낼게요.”


공간이 넓게 보이도록 깨끗하게 정돈된 사진을 찍고, 화면을 밝게 조정해서 사진들을 전송했다. 손님들을 초청하면 집이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던 터다. 하얀 커튼과 라탄 소품들 그리고 원목 가구들이 집을 돋보이게 해주는 사진이 되었다.


젊은 사장님은 신혼부부에게 사진을 보냈고, 온라인에 거실 사진 한 장을 게재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가능하다 대답하며 주인 할아버지에게도 전화를 넣어보았다.


“신혼부부가 이 집을 보려고 해요. 저희가 두 집을 운영하기 힘들어 새로운 세입자가 빨리 생기면 좋겠어요. 지난번 보셨지만 집을 예쁘게 해 놓았잖아요. 곧 경주로 짐을 빼기는 할 텐데, 빈집이면 집이 더 안 나갈 거예요. 저희가 있는 동안 집이 나가면 좋겠어요. 내년에 어차피 세입자를 구하셔야 하는데, 요즘 전세가는 계속 떨어지잖아요.”


“아니, 하반기에는 또 오를 수도 있다고 해요. 사람일은 알 수 없잖소.”


“에이, 요즘 입주물량이 쏟아져서 헌 집은 찾지도 않는데요. 혹 계약하실 분 생기면 2억까지 가능할까요? ”


“꼭 하려는 사람들한테만 그리 하이소.

수화기 너머로 할머니의 잔소리가 들려온다.


집의 고장 난 곳들을 고치면서도 잔소리가 많은 할아버지의 입에서 오케이라는 대답을 얻는 것만으로 성공이었다. 어떻게든 이 기회를 사용하리라. 젊은 부동산 사장님께 전화를 넣었다.


“사장님, 아까 그 신혼부부는 얼마까지 생각하나요? 들어올 분이라면 2억까지 가능하다고 주인이 말했어요.”


“신혼부부에게 연락 넣어보니 결국 새 아파트를 선택하네요. 그분들은 2억 5천까지 가능한가 봐요.”


“그렇군요. 연락 오는 분 있으면 꼭 전화 주세요. 수고해 주셔서 감사해요.”




일주일이 흘러 경주에 있는데 두 곳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네이버에 오른 거실 사진이 일을 한 것이다.


“오늘 집 보는 게 가능한가요?”


“제가 경주인데, 내일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과 늦은 오후 가능합니다.”


“그래요. 그럼 내일 두 팀을 데려갈게요. 11시 반 한 팀 하고, 6시 반 한 팀요.”


다른 부동산에서도 전화가 와서 목요일 오전 10시 반에 방문하기로 했다.


목요일이 쉬는 날이었던 남편은, 함께 부산에 도착해 이른 아침부터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장식용으로 화분 옆에 두었던 목이 긴 장화 속에서 나무 이파리까지 꺼내며, 남편은 테라스를 정리했다. 삐뚤게 매달려 있는 화재경보기를 드라이버로 고정시키고 먼지를 닦아냈다. 그렇게까지 고생은 하지 말라며 웃었지만, 남편은 나보다 더 긴장이 되는 모양이다. 시간에 딱 맞게 오는 것도 아니니 맘 편히 할 일을 하고 쉬도록 남편에게 말은 했지만, 나의 두 손과 눈동자도 함께 분주했다. 이불 홑청은 하얀색으로 바꾸어 집안을 환하게 만들고, 전등도 여기저기 켜두었다.


오전 10시 반이 넘어가고 잠시 후 벨이 울렸다. 중년의 아주머니 두 분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신발을 벗었다.


“아이고 예뻐라, 김치냉장고를 이렇게도 두는군요. 장식장을 이곳에 놓았네. 아이들이 있나요? 책장이랑 분위기가 좋네요.”


두 분의 표정은 모델하우스에서 아이디어 공간을 발견하는 손님들처럼 이곳저곳을 신기하게 둘러본다.


“맘 편히 보세요.”


설거지를 하면서도 이 분들이 어디를 향하는지 슬쩍 살펴보았다. 세탁실을 열어보고 랙에 정리된 물품이 가득한데도 넓다고 말한다. 베란다 바깥 창에 둘러놓은 레이스 커튼을 열어보며 대형마트를 확인한다. 두 군데 방에 들어간 붙박이 장롱이 맘에 드는 모양이다. 3년 전 이 집을 소개했던 부동산 주인은, 체리색 틀로 짜인 집을 화이트 분위기로 만들어 놓고 가구들을 이래저래 집어넣은 모양에 신기해했다. 나이  두 사람이 살 집이라 가구를 다 정리하고 이사할 계획이라며 맘에 든다는 표현을 자꾸만 내뱉는다. 오늘 두 팀이 더 오기로 약속이 되어있다는 것과 계약금이 조정가능하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그리고 그들을 배웅했다.


잠시 후, 주차장에 나갔던 남편이 처음 손님들과 함께 다시 입장했다. 한 명이 더해져서, 세 명이 된 중년 여성들은 집을 다시 신중하게 둘러보았다. 그리고 난 후, 다른 분들이 오지 않게 해 달라 말하고서 당장 계약을 하러 가겠다고 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가계약금으로 계약을 했다는 부동산 사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나머지 네 군데 부동산에 전화를 넣어 모든 예약을 취소하고 게시물을 내리도록 했다. 그리고 2 주 이사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기적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만들고 애써야 일어나는 것임을 다시 기억한다.

삶의 어디에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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