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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가다 Sep 02. 2024

블루 한 블루마운틴

셋이서 호주 여행

“I'm all over it!"

아들은 눈을 크게 뜨면서 ‘끝났어. 내가 알아서 해.’라며 무례한 호주인에게 답한다.

감기가 나았는데도 기침이 나왔나 보다. 아들이 팔을 들어 입을 가리며 기침을 몇 차례 했는데, 두 칸 앞에 혼자 앉은 남성이 기침할 때마다 고개를 돌려 쏘아본다. 남자는 좌석을 옮겨 더 멀리 떨어져 앉았다. 다시 한번 기침을 하자, 옮긴 좌석에서도 몸을 틀어 다시 쏘아본다. 그러자 아들은 짧고 굵게 영어로 일침을 두었다.     


아침 아홉 시, 블루마운틴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한 시간 동안 긴장했다. 아들의 입에서 다시 기침이 나올까 걱정되고, 삐딱한 태도의 젊은 금발 남성이 위험한 행동을 할까 불안했다. 또 한 번 뒤돌아보며 아들을 위협한다면 어떻게 말해줄까 머릿속으로 단어를 총동원하고 있었다. 다행히 아들의 단호한 말 뒤에 모든 것이 조용하다.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면 어려울 일이다. 만약 따질 일이 있다면 그 나라 말로 부드럽고도 정확히 말해주어야 함을 배운다. 언어는 가장 큰 도구이며 무기.      





리버스톤 역에서 시작해 블랙타운 역에 멈추어서 블루마운틴으로 가는 지하철을 갈아탔다. 카툼바 역에서 줄 서서 버스를 타고 10분을 가니 블루마운틴 전망대다. 버스에서 유난히 내 눈에 띄는 한국인 가족. 젊은 엄마는 예닐곱 살 아들 쌍둥이와 함께 셋이서 블루마운틴을 가는 중이다. 엄마와 주고받는 한국어가 반가웠고, 같은 쌍둥맘이라 대견해 보였다. 지금은 이십 대 성인 아들과 여행 중이지만 쌍둥이 아이를 데리고 저런 모습으로 많이 여행 다녔다. 서울과 경기도 구석구석 지하철을 타고 체험 다니던 일이 떠올랐다. 추억을 쌓기에 여행이라는 도구만큼 좋은 것 없다. 저 아이들에게도 엄마의 수고와 사랑이 선명하게 남기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던 에코포인트를 발견하니 첫 번 관문을 통과했다는 쾌감이다. 에코포인트라 쓰인 평평한 바위는 여러 트래킹 코스의 출발지점이다.

블루마운틴은 유칼립투스 나무가 울창한 거대한 협곡으로 ‘호주의 그랜드캐니언’ ‘호주의 알프스’라고도 불린다. 산 전체가 푸른빛이라 블루마운틴이라 이름 지어졌다. 유칼립투스 나뭇잎에서 휘발되는 알코올 성분이 태양빛과 반응해 대기 중 푸른빛을 낸다고 한다. 푸른 계곡과 험준한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와 아름다운 자연이 유명한 곳이다.

이곳은 멸종 위기에 처한 다양한 동식물을 보존하고 있어 2000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거대한 병풍 같은 산세를 마주하고 전망대에 섰다. 고개를 돌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천천히 살핀다. 푸른 안개가 바위산을 감싼 듯 띠를 두르고 있다. 버스를 타고 편히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이 편리함. 블루마운틴을 배경으로 우리 부부와 아들이 함께 사진을 찍다. 넓은 협곡과 거대한 산을 한 앵글에 다 담기 어렵다. 멀리 세 개 봉우리가 보인다. 오래된 전설이 서린 세 자매봉이다.


유명한 세 자매봉(Three Sisters) 암석은 사이좋게 일렬로 서있다.  전설은 이렇다. 옛날 마법사의 아름다운 세 딸에게 반한 마왕이 이들을 납치하려 했는데, 아버지인 마법사가 딸들을 돌로 만든 뒤 마왕과 맞서 싸웠다고 한다. 그런데 싸움 중 마법사가 죽게 되어 딸들을 마법에서 풀지 못해 아직까지 돌로 남아있다는 이야기다.      



세 자매봉을 향해 안내문을 보며 트래킹을 시작한다.  흙길과 계단도 깨끗이 정비되어 있어 편한 복장과 신발이다. 작은 아이들도 계단과 언덕을 오르내린다. 코스의 난이도와 길이에 따라 블루마운틴 국립공원을 선택해 누릴 수 있겠다. 세 자매봉으로 향하는 산책로를 걷다 보면 호주에서 만날 수 있는 주물 제작된 작은 야생동물 모형을 발견한다. 실제 모양과 똑같은 거북이, 오리너구리, 뱀 모형을 발견했다. 아마 가끔씩 출현하는 동물인가 보다. 한 줄로 서서 좁은 계단을 내려가 층층이 깎인듯한 기암절벽 세 자매봉을 가까이 대한다. 뒤로 보이는 거대한 협곡은 영화 속 시조새가 날아오르고 공룡이 움직여 다닐 것처럼 웅장하다. 깊고 넓은 블루마운틴은 사진을 여러 번 찍어도 비슷한 배경이다.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택시를 불러 테이블 마운틴으로 향했다. 나이 든 호주 기사님은 길을 헷갈려 외딴곳에 이르자 요금 미터기를 얼른 꺼서 멈추었다. 큰 길가로 나오자 미터기를 다시 작동시켰다.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아는 어르신. 20분 정도 운전해 그가 데려다준 블루마운틴의 다른 곳은 'Lincon's Lock'이라 이름표가 붙었다. 깎아진 절벽 위에서 보는 블루마운틴의 또 다른 모습. 평평하고 넓게 펼쳐진 바위 위에 앉아 잠시 입을 다물었다. 대 자연 앞에 작은 점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의 작음을 알 때 그저 잠잠해지고 겸손해진다. 뒤돌아 나오며 거대한 존재를 자꾸 뒤돌아 본다.





택시를 기다리며 아들은 가방에서 육포를 꺼낸다.

"이거 호주 육포인데 맛있어요."

검붉은데 단맛 나는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절벽에서 우리를 구해줄 택시를 기다린다.

"MUN?"

또 다른 기사님이 우리를 부른다.


웬트워스폴스 역 근처 예쁜 식당 FED에 앉아 샐러드가 추가된 수제 버거와 미트볼을 주문해 늦은 점심을 채운다. 시작은 우울한 블루였지만 파란 산세를 맘껏 누리고 레스토랑 유쾌한 사장님의 배려도 받는다.

맛있는 음식과 부드러운 친절을 만나면 슬픔은 금세 덮어지지. 블루~한 블루마운틴은 잊고 즐거운 여행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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