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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가다 Sep 09. 2024

해운대와 송정을 닮은 본다이비치

둘이서 호주 여행

호주는 해수욕장도 예쁘구나. 380번 버스 창밖에는 푸른 바다가 하얀 건물 사이사이로 파란 띠로 이어진다. 창에 얼굴을 가까이 붙인 채 해안선 따라 넘실거리는 물결과 수평선에 시선을 고정.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해변을 다 걸어볼 셈으로 본다이 비치 입구 쪽 정거장에 일부러 내렸다. 수영복, 조리, 튜브가 정거장 바로 건너편 가게에 빨래처럼 걸려있다. 제주 월정리 바닷가처럼 아담한 카페들이 도로변에 늘어섰다. 도로 넘어 바로 시작되는 잔디 언덕이 넓다. 맑은 하늘 위에 새하얀 구름이 절반을 뒤덮고 있. 바다는 군청색에 약간의 초록빛이 함께 흐른다. 진한 바다색 때문인지 한 줄로 구르며 밀려오는 파도는 구름보다 하얗다. 발걸음에 속도를 더한다.




넓은 잔디 언덕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눕거나 앉아 쉬는 이들이 보인다. 혼자 돗자리를 펼치고 바다 멍을 누리는 이, 탱크톱에 쇼트 팬츠를 입고 따뜻한 햇빛을 기꺼이 다 가져가는 이, 간식을 펼쳐놓고 바다 피크닉을 즐기는 연인. 편안하게 여행을 누리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작은 흥이 꼬물꼬물 일어난다. 초승달 모양으로 펼쳐진 해안선에서 오른쪽 산책로를 향다. 신나는 음악이 어디선가 쿵작거리는데 걸을수록 소리가 가까워진다. 캡을 뒤로 쓴 덩치 좋은 청년이 택배 박스만 한 스피커를 다리 밑에 끼고 앉아 친구와 몸을 흔들거린다. 두 사람의 굵직하고 자연스러운 웨이브가 다시 보고 싶어 가던 길을 걷다가 속도를 줄이고 슬쩍 몸을 돌다. 주변의 시선과 상관없이 음악과 바다를 누리는 젊음과 낭만에 가만히 미소가 난다. 자연과 음악 속에 맡긴 자유로운 몸짓이 시원한 파도소리와 어울린다. 멋진 옷차림은 아니지만 비굴하지 않고 기죽지 않은 당당한 모습에서 그들만의 품격.



해변 언덕 끝에 다다르니 사진으로만 보았던 바닷가 수영장 아이스버그가 펼쳐다. 누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 부산 해운대와 송정에도 설치한다면 딱 어울릴 텐데. 해안선에 푸른 바닷물을 담은 수영장이 통째로 옮겨진 듯하다. 어린이들 위한 키즈풀 옆으로 여덟 인이 반듯하다. 3미터 깊이라는데 직사각형 수영장 수면이 넘실거린다. 출발선에는 가장 가벼운 수영복을 입은 이들이 순서대로 퐁당퐁당 입수 다. 바다 가장 가까운 1번 레인에는 헤엄을 멈추고 머리만 물밖으로 내민 채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는 이들. 파도가 높은 날에는 바닷물이 들이쳐 멋진 풍경을 만들기도 하겠다.

수영장 보다 높은 언덕에서 많은 이들이 부러운 눈으로 주목하고 있다. 거대한 수족관 탱크 이 끝에서 저 끝을 우아하게 오가는 물고기처럼 두 손과 발을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 헤엄치는 이들이 있기에 네모난 수영장이 더 역동적이다. 이 또한 푸르고 아름다운 볼거리다. 10달러면 누릴 수 있는 이곳 용기 있는 자의 것이다.



아래쪽 타마라나 해변과 연결된 본다이 해변 지도를 살펴본다. 뒤집어진 3자 모양 해안선에 중간 지점이 아이스버그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본다이비치로 향한다.

높은 언덕 끝에서 해안을 보고 있자니 육 년간 살면서 자주 누렸던 부산 바다 기억다. 해운대 동백섬부터 해안선을 타고 달맞이 언덕까지 그려지는 모양이 비슷하다. 서핑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송정 해수욕장도 그려진다. 이제 보니 송정해수욕장 해변에서 발견했던 카페 이름 ‘아이스버그’! 지금은 없어진 곳이지만 처음으로 ‘아이스버그’를 검색해 보았던 때다. 바로 그곳에 지금 내가 서 있다니. 어쩌면 부산 카페 주인장 아이스버그에 들렀다가 송정해수욕장을 떠올렸을 모르겠다. 작은 바다, 작은 나라여도 내 나라를 어디서든 기억하고 연결한다.

사진을 찍어주는 남편 앞에서 턱 한껏 들어 올리고 한 손은 펼쳐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 수영장을 향한다. 언덕에서부터 불어 치는 세찬 바람에 하얀 스카프 주유소 키다리 풍선처럼 펄럭인다. 이마를 덮은 앞머리와 함께 긴 머리카락앞뒤 제 마음대로. 


본다이비치




미세한 입자로 고운 모래사장을 걸으며 운동화를 벗었다. 남편은 바닷물 온도가 차멈추라 한다. 두 손가락에 신발을 끼우고 청바지를 최대한 걷어 올렸다. 그는 멀찌감치 마른 모래밭을 천천히 걷는다.

바다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서 맨발로 걷는 이들의 뒤를 따랐다. 파도가 왔다 갔다 적시는 물가에 가까이 서면 보는 풍경이 또 달라진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는 바로 오른쪽 귓가에 오디오가 된다. 푸른 바다와 파도 그리고 하늘만 눈 안에 들어온다.


바로 앞에 맨발로 천천히 걷는 중년 여인은 고급스러운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곱슬거리는 긴 금발을 우아하게 날린다. 선글라스로 가려 표정은 알 수 없지만 걸음걸이 느리고 편안하다. 잠시 후, 두 젊은 여성이 비키니를 입고 바다를 향해 용감하게 어간다. '오!' 바람이 차가워 흰 남방 위에 걸친  카디건을 여미고 있던 터다. 그러고 보니, 12월에도 수영복을 입고 해운대 바다로 뛰어드는 이들이 있었.

바다를 누리는 사람들의 모양새는 각각이다. 같은 바다를 모두 다른 정도로 즐긴다. 누군가는 언덕에 앉아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누군가는 바다로 뛰어든다. 인생에서 쉬고 걷고 뛰고 도전하면서, 살아가는 모양도 가지각색이겠다.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며 다른 이의 기준과 행복이 아닌 나만의 즐거움을 가져간다.


해변 밖에 설치된 수돗가로 향하는데 비치볼 경기 중인 이들의 힘 있는 움직임이 보인다. 멀리 서서 그들의 행복도 잠시 구경한다.






아들이 맛집이라고 알려준 비비큐 식당으로 향한다. 이름과 같이 허리케인 이미지를 둥근 간판에 그려놓아서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데 동양인 여성이 음식을 들고 온다. 네모난 접시를 가득 채운 기다란 열한 개의 갈빗대. 통째 구운 커다란 뼈 덩어리에 끈적한 갈색 소스가 반짝거린다. 군데군데 까맣게 그을려진 자국은 고소한 탄 맛을 미리 상상하게 한다.


“한국인이세요? 맛있게 드세요”

갑자기 그녀가 말을 건넨다.

남편이 꺼내놓은 비타민 캡슐에 한글을 보고 알았단다.



음식을 주고 다시 매장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까만 유니폼이 보인다. 머리카락을 예쁘게 틀어 올린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기특한 눈빛이 된다. 열심히 살아가는 한국 청년들은 어디서 만나도 반갑다.

해외로 나가면 내 나라 사람과 비슷한 까만 머리카락만 보아도 눈길이 먼저 간다. 혹시 한국말이 들리면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내가 너무 촌스럽나? 하하. 밖으로 나가면 어디든 연결되는 내 나라 그리고 내 나라 사람들이 귀해 보인다.


잿빛 구름이 부지런히 하늘을 덮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태양을 피하던 검은 레이스 양산을 펼치고 좁은 공간에 둘이 딱 붙어 버스 정거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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