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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수거는 한국처럼

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22

by Jina가다

한국에서 살림하는 동안 신경 썼던 일 중 하나는 분리수거와 음식물 처리였다. 지역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었지만 어디서든 그 기준은 제법 까다로웠다. 지방에서는 음식물과 재활용품만 잘 분리하면 큰 문제가 없다. 광역시나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음식물 쓰레기는 무게에 따라 요금이 부과되거나, 지정된 종량제 봉투에 담아야만 배출할 수 있다.


서울에 사는 아들의 자취방을 찾았을 때, 쓰레기 버리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주택가 자취방이라 쓰레기 배출은 일주일에 세 번, 정해진 오후 시간에만 가능했다. 음식물이나 불가연성 쓰레기를 일반 종량제 봉투에 섞어 내놓으면 수거조차 되지 않는다. 그럴 땐 집 앞에 쓰레기를 그대로 모셔두는 상황이 벌어진다. 자취생들에게는 쓰레기 처리가 또 하나의 스트레스이겠다.

아들의 비좁은 현관엔 세 칸짜리 재활용함이 가구처럼 자리한다. 종이, 플라스틱, 비닐을 따로 담는 전용함.


2년 전, 호주에서 유학 중이던 아들을 방문했을 때다. 거대한 쓰레기통에 음식물과 생활 쓰레기를 구분 없이 넣는 모습에 놀랐다. 그곳에선 ‘당연한 방식’이라며, 아들은 거리낌 없이 큼직한 쓰레기통에 온갖 쓰레기를 쓸어 담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자취를 시작하게 된 아들에게 가장 힘든 게 '쓰레기 버리는 일'이란다. 미국에 살면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함께 했던 젊은 아빠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한국에 가면 분리수거가 제일 어려워요.”

이집트에 와서 보니 이곳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각 층마다 엘리베이터 옆 비상문 안에 대형 쓰레기통이 있다. 어떤 쓰레기든 거기에 담기만 하면 청소 노동자들이 매일 처리해 준다.


“우리 사무실 한국인들은 쓰레기마을 사람들을 위해 분리수거를 해요.”

퇴근한 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카이로 인근 모카땀 지역에는 ‘자발린’이라 불리는 쓰레기마을이 있다. 무슬림 국가인 이집트에서 기독교인을 한 지역으로 몰아낸 결과 생겨난 곳이다. 그 마을의 90% 이상이 콥트 기독교 신자라고 한다. 이들 속에 남부 빈민과 가자지구 재개발에 밀려난 사람들이 합류하게 되었다.

카이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의 3분의 1은 이 마을로 향한다. 주민들은 쓰레기와 공존하며 살아간다. 악취 속에서도 맨손으로 직접 쓰레기를 분류한다. 정부는 이들의 손을 빌려 최대 80%까지 재활용한다고 한다.


3년 전, 이곳을 찾은 적이 있었다. 우리가 탄 택시 기사조차 처음 가본다는 동네였다. 쓰레기마을로 통과해야 관광이 가능한 동굴교회.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차창을 꼭 닫고서도 숨을 참아야 했다.

골목마다 쓰레기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위에 앉아 물건을 분류하는 이, 맨손으로 폐기물을 뒤지는 이, 몸집보다 훨씬 큰 쓰레기 뭉치를 어깨와 머리에 이고 가는 이들이 있었다. 그 사이를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뛰노는 아이들. 숨이 막혔다.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속은 울렁거렸다.


그 기억 때문일까. 딸의 말을 따라 이사 온 집에서도 음식물과 재활용품을 따로 분리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익숙해진 일이라 어렵지는 않다. 음식물은 물기를 빼서 따로 모으고, 재활용품은 한 번 헹군 뒤 부피를 줄인다. 혹시라도 자발린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날카로운 것은 따로 담는다. 누가 확인하진 않지만, 그렇게 하니 내 마음이 개운하다.

수질이 나빠서 수돗물 대신 1.5리터 생수병을 쌓아두고 사용하다 보니, 플라스틱병을 가장 많이 배출하게 된다.


“이 많은 이집트 쓰레기,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니?”

“사막에 묻는대요.”

"정말?”

쓰레기는 국가나 지방에서 지정한 사막에 매립하거나, 태운다고 한다. 쓰레기 처리 방식을 바꾸면 좋을 텐데.


10여 년 전, 한국 시골인 시댁에서도 쓰레기를 태워서 없앴다. 지금은 그런 일도 단속 대상이 되어 공무원들이 주의를 주고 교육한다.

도시든 시골이든, 대한민국은 이제 분리수거가 일상화되었다. 그 기준과 참여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국제 환경기구와 여러 선진국은 한국을 모델로 삼고 있다니 말이다.


예전에 새마을운동을 배우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한국을 찾았듯, ‘분리수거 시스템’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구를 사랑하는 이방인으로서 이집트살이 분리수거는 성실히 이어가겠다. 우리나라에서 배우고 훈련한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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