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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넘어 영어 공부, 이제 나를 위해

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24

by Jina가다

며칠간 검색만 하고 말던 영어학원. 드디어 전화를 걸어 상담을 예약했다. 학원 운영을 잘했는지, 두 달 전에 새 장소로 이전했다고 한다. 아랍어와 영어를 함께 가르치는 학원이다.


택시 기사가 이전 학원 위치에 내려주는 바람에 땡볕 속을 10분쯤 걸었다. 다행히 가방에 넣어둔 작은 UV 양산이 있어 펼쳐 들었다. 흙길을 따라 아파트 빌딩 사이로 좌회전, 직진, 다시 좌회전 그리고 도로 하나를 건너 도착이다. 이제는 구글 맵으로 길을 찾아 걷는 것, 횡단보도 없는 도로를 건너는 것도 제법 익숙하다. 땀으로 젖은 내 모습을 점검할 새도 없이 학원 담당자와 마주쳤다. 상담실장으로 보이는 중년 이집트 여성이 차가운 정수기 물 한 잔을 내밀었다.


학원 내부는 깔끔하고 시원했다. 1층에는 사무실과 세 개의 교실이 있었고, 계단을 오르니 여섯 개 정도의 작은 공간들이 교실로 보였다. 복도 중간에는 학생들의 기념사진으로 가득한 패널이 세워져 있었다. 상담실장이 영어로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 한국인, 여기도 한국인, 여긴 한국인 가족이죠.”

대부분은 아랍어를 수강했다고 했다. 2년간 수업을 받고 졸업도 시킨다고. 아랍어 유학을 이집트로 온다는 사실. 나는 멍하니 그녀가 이끄는 대로 학원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을 맡기러 탐방하는 학부모 자세다.

'지금 학부모로 온 게 아니야. 네가 다닐 학원이라고!'


그녀와 둥근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아랍어를 배우실 건가요?”

“아뇨, 영어요. 영어 수준을 높이고 싶어요.”

그녀는 빈 종이를 꺼내 수업에 관해 번호를 써가면서 설명을 이어간다.

지금 영어 선생님들이 모두 휴가 중이라, 8월 중순부터 수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먼저 레벨 테스트를 하고, 일대일 수업으로 진행한단다. 보통 일주일에 1 또는 2회, 한두 시간씩 수업을 선택한다고 한다. 시간당 18달러의 수업료를 월 단위로 납부하면 된다고 마지막 설명을 종이에 남겼다. 강사는 영국인 또는 캐나다인 중에서 배정되며, 추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그녀가 덧붙였다.

아랍어 수업보다 비싼 영어 수업. 이집트에서 2주를 지내고 보니, 지금 가장 먼저 내가 시작해야 할 공부는 영어다. 그리고 다음이 아랍어. 어쨌든 도전이다.


한국에서 아이 셋을 키우는 동안, 어학원 비용을 꽤나 투자했다. 정작 나는 쉬운 영어 도서와 EBS 라디오 방송을 통해 스스로 해결했다.

5년 전이었을까? 블로그에서 영어원서 읽기 모집 글을 발견하고 어린이용 책부터 '함께 읽기'를 시작했다. '매직트리하우스' 시리즈, 그다음은 '뉴베리 수상작' 그리고 '해리 포터' 시리즈까지. 습관을 들이기 전까지는 모임 리더와 함께 쉐도잉 하고 녹음하고 인증하고. 그 이후로 습관이 형성되자 그냥 혼자서 조금씩 원서를 읽었다.


매일 15분씩 원서를 꾸준히 읽어오길 다행이다. 어떤 때는 쉬운 책으로 금방 끝내기도 했고, 어떤 책은 너무 어려워 중간에 덮은 적도 있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지금껏 이어왔다. 한국에서 들고 온 책 <JACOB HAVE I LOVED>를 15분씩 읽는 중이다. 규칙적으로 쌓아온 습관이 언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게 될 줄이야.


나를 위해 어학원 비용을 투자해야 할 이런 날이 오다니. 작지만 예쁜 보석 반지를 손가락에 끼운 듯한 감격. 오십이 넘어 이곳에 혼자 유학 온 셈 치고, 학생처럼 제대로 공부해 볼까 싶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카공’ 하기 좋은 카페에 들렀다. 대학생과 유학생들이 앉아 공부하는 풍경. 저 멀리,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학생도 둘이나 보인다. 이 낯선 땅에서 아랍어를 배우기 위해 일부러 유학 오는 대학생들. 나도 같은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한다.

언젠가 머리카락 쥐어뜯으며 공부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새 마음으로 학생 될 준비를 한다.

오십에도 공부할 용기가 있어,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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