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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생기 있는 아침이라니

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25

by Jina가다

이집트 아침 산책

이집트에는 이른 아침 문을 여는 카페가 많다. 딱 내 취향이다.

아침 일찍 삶아둔 병아리콩을 식혀 네모난 플라스틱 통에 담고, 거실 에어컨을 켰다. 딸아이가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나면 좋겠다. 이곳은 휴일이 금요일과 토요일. 이른 아침에 같이 나가자 하더니 늦게 퇴근한 아이는 이불 속에 파묻혀 있다. 딸이 추천한 처음 가보는 카페로. 구글맵을 열어보니 도보로 6분 거리.

금요일 아침 7시 반. 에코백을 왼쪽 어깨에 걸고, 연둣빛 작은 핸드백을 크로스로 오른 어깨에 맸다. 이집트에서 나의 외출 모습은 대체로 이렇다. 연둣빛 부드러운 작은 가죽 가방 안에는 선글라스, 대문과 엘리베이터용 열쇠 그리고 500 파운드 정도의 지폐.

오늘은 유난히 시원한 바람이다. 머리카락을 날리는 차가운 바람은 또 처음이네. 도로 하나를 건너며 배꼽 아래에서부터 웃음이 보글보글 끓는다. 발걸음은 리듬을 타듯 종종거리고.

한국 치킨 가게 '꼬끼오' 앞에서 우회전, 코튼 숍에서 좌회전, 이제부터는 처음 걷는 길.

오, 비건 식당이 있고, 유럽풍 레스토랑, 스페인식 스파도 있다. 지금까지 봤던 낡고 그저 그런 모습만이 우리 동네 전부는 아니다. 대형 빌라와 예쁜 아파트가 하나둘 줄지어 보인다.

차도를 걷다가 인도 위로 올라 정원 옆을 걸었다. 한 여성이 길가에 사료를 한 줌씩 놓더니 집으로 들어간다. 어디선가 고양이 여섯 마리가 사뿐히 달려오더니 먹이 앞에 일렬로 자리를 잡았다. 각기 다른 무늬의 고양이들. 온통 흰색, 황톳빛 줄무늬, 까만 점박이, 올 블랙인 녀석까지.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미는데 움찔거리지도 않는다. 사람이 낯설지 않은 모양이다. 길가에 조용히 서 있는 ‘대기조’까지 보인다. 얼른 지나가야겠다.

이른 아침에야 비로소 보게 되는 것들이 또 있다. 긴 호스로 물을 뿌리는 사람들. 차에 물을 뿌려 세차하고, 아파트 계단을 씻고, 발코니에 물을 끼얹는 이들. 씻어낸 물은 아파트 화단으로 흐르고, 공기 중 먼지는 잠잠해진다. 매캐하던 속이 다 시원하다.

초등학생 시절, 4층 아파트에서 살던 때가 떠올랐다. 지금껏 잊고 있던 장면인데.

일요일이면 엄마가 들통에 물을 받아 아파트 현관 앞과 계단에 뿌리던 모습. “물 뿌려요!” 외치면 5층부터 1층까지 이어지던 주민들의 청소 릴레이. 모두가 문을 열고 나와 함께 쓸고 닦던 시끌벅적했던 그 아침들. 이렇게 차갑고 유쾌했지.

구글맵 속 푸른 점이 목적지에 가까워졌음을 알린다. 그런데 둘러봐도 간판이 없다. 잠시 멈춰 서는데, 노란 티셔츠의 수단인 종업원이 긴 빗자루로 건물 앞을 쓸고 있다. 자동차에서 내린 중년 부부는 지하로 향한다.

‘아, 저기구나.’

모자이크로 바닥을 장식한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갔다. 초록 식물과 노란 전구가 입구를 감싸고, 유리창 너머로 손님들이 보인다. 문을 열자, 우와! 넓다.

기다란 유리 진열장 위엔 다양한 크루아상, 여러 종류의 바게트. 갓 구워져 나오는 케이크와 과자들. 빵을 굽고 진열하느라 바쁜 직원들. 조리실도 따로다. 파란 가드라인 안으로 얼른 줄을 섰다.

“크루아상 하나,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크루아상 두 개는 포장요.”

영어가 능숙한 직원들. 나중 알고 보니 나는 식사가 아닌 포장 줄에 서있었다. 그럼 어때 뭐.

'No smoking' 식탁 위 귀여운 쇠붙이 안내문이 반갑다. 실내여도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이집트 카페와 식당이 많다. 금연 구역 식당으로 운영한다니 신뢰 1단계 더한다. 조리실을 둘러보는데 요리사 머리에는 한국 주방에서 보던 하얀 비닐덮개.

흰 회벽이 울퉁불퉁하게 살아 있는 벽 옆에 자리했다. 미소 띤 여직원이 다가와 메뉴판을 건넨다. 오믈렛, 요거트, 팬케이크, 샌드위치로 브런치 메뉴가 다양하다. 다음엔 가족과 함께 다시 와야지.

귀퉁이가 살짝 깨진 파란 접시에 담긴 크루아상.

바삭한 결, 안쪽의 버터 향,

‘우와, 한국 맛집 못지않네.’

아랍식 커피와 함께 프랑스식 크루아상을 누리는 아침이라니.

넓은 공간은 금세 채워진다. 오붓한 다섯 가족, 아이들과 함께한 젊은 부부, 수다 삼매경인 남성들, 그리고 계속.

아랍어와 영어가 뒤섞여 끊이지 않는 대화. 때로 시끄럽다 느꼈던 이들의 수다가 이 아침엔 부럽다.

진지한 토론과 스몰토크, 그 자체가 따뜻한 정이다. 말수가 적은 우리 문화, 말을 아끼는 습관이 이곳에선 불편하고 민망하다

이들의 유쾌한 어투, 높낮이 있는 목소리, 큰 웃음.

“와하하!”

옆 테이블에서 웃음이 쏟아진다.

고개를 흔들고, 테이블을 가볍게 치며 웃는 모습에 괜히 나에게까지 즐거움이 번진다.

금요일, 이집트의 휴일 아침.

진짜 휴식이다.

이토록 생기 있는 아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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