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27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은, 세계 어디서나 같았다
“엄마, 페디 하실래요?”
“좋아.”
“그럼, 토요일 오후 여섯 시로 예약할게요.”
열 개 발가락을 드러내야 하는 더운 나라. 가져온 신발 대부분이 샌들이나 슬리퍼다. 한국에선 ‘언젠가 네일숍에 가봐야지’ 하면서도 미루기만 했다. 집안일하며 매니큐어조차 바르지 않았다. 한여름에만 엄지발가락에 빨간 매니큐어를 칠하거나 페디큐어 스티커를 오려 붙이곤 했다.
항상 바쁘던 딸아이도 이집트에 온 한 달 전, 처음으로 연한 핑크빛 페디큐어를 했다. 예뻤다. 홍해에서 다이빙을 다녀오더니, 발톱 위 페디가 벗겨졌단다.
35분쯤 우버를 타고 뉴카이로로 향했다. 네일숍 근처 미비다(MIVIDA) 구역에 먼저 들러, 인공 호수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 내가 살고 있는 마아디와 또 다른 분위기. 작은 광교 호수공원처럼 깨끗한 빌라들이 인공 호수를 둘러싸고 있다. 고급 주택이 줄지은 컴파운드, 정돈된 거리, 철저한 보안 시스템까지. 이집트의 다양한 면면이 눈에 들어온다. 단면만 보고 사람이나 국가를 단정 지어선 안 된다는 걸 다시 생각한다.
호수 위에서 아이들과 카약을 타는 부모들. 태양에 그을리는 것 아랑곳 않고 노를 젓는 엄마. 야외 테이블에서 음식을 나누며 대화가 많은 가족들 모습에 눈길이 갔다. 출산율이 높고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 나라.
카페에 들어온 여성들은 히잡으로 머리를 가렸지만, 눈 화장은 섬세하다. 길게 정리된 속눈썹, 정갈하게 다듬은 손톱.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천으로 가려졌어도, 그들에겐 기품이 흘렀다.
다시 5분쯤 이동해 뷰티숍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긴 머리를 묶고 까만 유니폼을 입은 네일 아티스트가 맞이했다. 디자이너 둘씩 마주 앉은 긴 테이블이 네 곳. 그 맞은편엔 손을 내민 여성들로 가득이다. 대기석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긴 소파에 앉아 돌이 갓 지난 아기를 안은 수단 출신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아기를 안고 한 손으론 유리병 제품 이유식을 떠먹인다. 다리를 흔들어 보채는 아기를 달래고, 일어서서 놀아주고. 가끔씩 네일 받는 엄마에게 아기를 보여주면서 능숙하게 챙겨낸다.
‘아기를 돌보는 보모구나.’
아기가 소리 내 웃을 때마다 직원과 손님들이 시선을 주고 모두 동시에 웃는다. 나도 어느새 아기의 동그란 얼굴만 자꾸 따라보게 된다.
밖에서 세 살쯤 된 여자아이를 돌보던 또 다른 보모가 아이를 데려오자, 커다란 루이뷔통 가방을 챙긴 두 아이 엄마는 손톱을 마무리하며 아이를 반긴다. 그녀는 네 사람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내 차례다. 스태프가 자리로 안내했다. 안마의자 발밑에 작은 세면대가 달린 페디큐어 자리. 긴 머리를 야무지게 묶어 올린 스태프가 내 발을 거품 통에 담그고 부드럽게 불렸다.
“라운드? 스퀘어?”
짧은 발톱이라 둥근 모양을 택했다.
색상 고르기가 쉽지 않다.
“파랑이랑 초록 계열 보여주세요.”
채도와 명도, 펄의 유무에 따라 색상은 다양하다. 딸아이의 도움을 받아, 펄이 은은히 섞인 푸른 물빛으로 결정했다.
옆자리 멋쟁이 이집트 여성의 발톱은 깔끔한 흰색. 손톱까지 정돈된 네모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주변 여성들의 손끝, 발끝을 유심히 살펴본다. 대부분 연한 파스텔톤이다. 나도 흰색으로 할 걸 그랬나.
내 발을 책임지고 앉은 디자이너는 재빠르게 큐티클을 정리하고, 발톱을 둥글게 갈아낸다. 투명 베이스를 두 번 덧칠하고, 굽는 작은 기계에 내 두 발을 순서대로 넣었다. 단단하게 굳힌 뒤, 색을 입힌다. 대충 하는 듯 보여도 마무리는 매끄럽고 세련됐다. 마지막엔 자석을 이용해 반짝이는 빛을 입혀주었다.
좀 더 어린 스태프가 교체해 각질 제거와 발 마사지로 마무리한다.
“따멤?”(마음에 들어?)
두 엄지를 치켜세우며 “따멤!” 대답했다.
집에 돌아온 뒤, 예뻐진 발에 로션을 바르고 몇 번이나 눈길을 준다. 발이 예뻐지니 걸음마저 곱게 내딛는다. 매일 먼지를 밟고 수고하는 두 발에, 처음으로 안부를 건넨다.
'오늘도 수고했어.'
그날 이후로는 길거리나 음식점에서 여성들의 손과 발에 눈이 간다. 길게 뻗은 손가락에 낀 특이한 시계 반지, 반짝이는 매니큐어, 찰랑거리는 팔찌와 발찌, 정성 들인 발톱까지. 조금 더 예뻐지고 싶은 마음은 나이도 국적도 초월하나 보다. 연한 민트색을 바른 딸아이의 손가락이 오늘따라 우아해 보인다.
다음번엔, 엄마가 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