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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처럼

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26

by Jina가다

오전 할 일을 마치고 나니 벌써 배고픈 열두 시. 열 시부터 박물관으로 여행을 떠나려 했었는데. 우선순위를 다른 곳에 두니, 여기 사는 주민처럼 그냥 일상을 살아낸다.

이곳에 온 지 26일차, 어떤 날은 종일 집안에만 머물렀다. 해가 뜨는 아침을 창으로 보고 다시 어두워지는 저녁을 맞이하기도. 집에서 사원이 가까운지 기도 소리가 몇 번이나 귀에 들렸다.

집 근처 새로운 카페라도 들러보고, 낯선 곳은 방문이라도 해보자.

한국에서도 경주로 이사 간 2년은 텃밭을 가꾸고 글을 쓰다가 금세 흘러갔다. 이곳에서 나일강과 유적지를 방문하고, 언어를 공부하다 보면 인생에 멋진 날이 쌓이고 새겨지겠지. 박물관에 남겨진 기록과 그림들처럼.

오늘은 많이 걸어야 해서 가벼운 백팩을 챙긴다. 돌돌 말아지는 모자, 작은 양산, 차가운 물 담은 보온병, 수첩과 볼펜, 접는 키보드를 담았다. 선글라스를 손에 들고 우버를 호출한다. 목적지는 자말렉 근처 이집트 국립 박물관. 이집트에 관한 글을 쓰면서 혹 잘못된 정보가 있는가 싶어 다시 확인하고 싶다. 좀 더 정확한 정보를 눈으로 확인하고 새로운 글을 쓰려 마음도 챙긴다. 두 손으로 가방을 올려 등에 매고, 가벼운 신발을 신었다. 선글라스는 콧등에 고정.

"알로!" (안녕하세요)

택시 기사에게 인사를 건네고 뒷좌석에 편히 앉았다. 평소와 다른 도로의 여정이지만 핸드폰으로 길을 주시하면서 도착 지점과 비용을 확인한다.

30분 넘게 도로를 달리면서 대한민국과 비슷한 모습. 반팔 유니폼을 입은 중고생들, 두 아이를 태워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아빠, 작은 봉고를 버스 삼아 이동하는 이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안전을 위해 지도하며 보호하는 하얀 제복의 경찰관.

"헤나, 라우사맛. 쇼크란"(여기 내려주세요. 감사합니다.)

내가 원하는 곳에 멈춰 내리고, 여유 있게 인사도 건넨다.

'니하오' 묻는 이들의 관심을 물리치기도 하고, 이집트 국립 박물관 입구에 둥글게 펼쳐진 연못 앞에서 인증 사진도 찍는다. 박물관 티켓 사는 일과 입장도 이제는 수월하다. 여행을 즐기는 것처럼 원하는 것을 차근차근 진행한다.

넓은 박물관을 규모있게 누리기 위해 먼저 2층 '투탕카멘 특별 전시장'으로 계단을 오른다. 나중 다시 방문할 때면 호객행위를 했던 가이드를 붙여 영어 공부 겸 현지인의 설명을 들으면서 다녀야지.

내가 보고 싶던 미라와 관을 찾아내고, 어린 소년 투탕카멘의 복원 사진도 유심히 봤다. 이집트인 왕족들의 유품과 장신구, 가구, 필기구까지도 살폈다. 1층에서는 왕들의 석상과 스핑크스, 200 파운드 지폐에 그려진 서기관의 유물까지도

찾아 발견했다.

"finish!" (끝났어요)

다섯 시 십 분 전부터 외치는 관리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밖으로 나왔다. 등과 허리가 뻐근해 온다.

기념품 가게로 몰려 밖으로 나오는 외국인과 내국인 사이에서 진짜 여행자처럼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집트의 기원전 역사에 감동하고 놀라면서, 눈으로 더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이 가슴에 동동 떠있다.

아직 해가 쨍쨍 거리는 오후 다섯 시.

멀리까지 나온 걸음이 아까워 근처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로 택시를 호출한다. 카이로에도 나일강 옆에 오페라하우스가 있다는 사실. 여행을 떠나왔기에 발견했다. 드레스코드를 갖추지 못한 아쉬움. 공연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정문에서 이어져 깔린 레드카펫 위를 걸어본다. 근처 노보텔 스타벅스 카페에서 쉬어도 보고.

여행자처럼 하루를 보낸다.

무엇이든 새롭고 즐거운 체험으로 여기는 눈과 마음을 장착한 여행자.

행복한 경험을 하나 더 누렸다는 뿌듯함으로 오늘을 기념하는 여행자.

잠시 쉬어 일정을 조정하고 내일을 기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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