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하다가 손목 다친 대학생 아들은 정형외과 문 여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왼쪽 어깨가 아프던 차에 나도 함께 외출을 준비한다. 아침 햇살 비치는 사거리를 건너며, 매연 속에서도 나란히 기분 좋다.
일찍 대기 중인 할아버지 한 분을 제외하고 우리가 두 번째다. 접수하며 아들을 먼저 진료해 달라고 우선순위를 양보했다. 첫 번째 환자 진료가 끝나자, 보호자이자 환자로 온 내 이름도 함께 호명한다. 아들과 함께 나란히 진료실에 입장했다. 오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의사는 친절하게 아들 손목과 멍든 엄지발가락을 진료하고 문진 한다. 내 차례가 되자, 잘 들어 올려지지 않는 내 왼쪽 어깨를 위로 올려보게 했다. 그리고 뒤로도 접어보게 했다.
엑스레이 촬영 후 다시 진료실에 함께 들어갔다. 의사는 우리 모자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순차적으로 설명했다. 오히려 내 증세가 심각하단다. 아들은 인대가 늘어나 물리치료와 항생제 투입으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했다. 의사와 마주한 내게는, 어깨에 주사를 주면서 불쌍히 여기는 표정이 역력하다. 무슨 고생스러운 일을 했는지, 스트레스받은 일이 많았는지를 묻는다. 옆에 앉았던 아들 표정이 당황스럽다. 염증과 석회가 보이니 충격 치료와 물리치료를 병행해서 몇 주간 지속적으로 병원을 방문할 것을 권했다.
1시간 넘도록 물리치료실에서 여러 가지 치료를 받는 동안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의 고생하는 인생을 아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욕심도 들었다. 한 편으로는 자꾸만 약해져 가는 부모 모습이 부담과 염려를 주는 것은 아닐까 미안함도 올라왔다. 양가 나이 드신 부모님들 복잡한 마음이 조금씩 이해되어 간다.
세 아이들 어릴 적에는 엄마가 무엇이든 다 해내는 원더우먼쯤으로 알고 있었다. 해주는 요리는 무엇이든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여행을 갈 때면 커다란 짐가방에 완벽하게 준비를 해서 불편함이 없게 했다. 방학숙제와 어려운 과제도 최선 다해 도와주었다. 세상 제일 멋진 엄마처럼 여겨지는 그때도 나름 좋았다.
"우리 엄마는 최고예요"
"우리 엄마가 만들어 주신 거예요"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서 원더우먼 꿈이 깨지게 된 일이 있었다.
체육인으로 학교에서 유명했던 아들들은 가을 운동회에도 두각을 드러냈다. 모든 엄마들이 운동회를 구경할 수 있었던 때였다. 반별로 친구 엄마들과 모여있는데, 4학년이던 막내 아이 담임선생님이 급하게 나를 찾았다. 미혼이던 단발머리 예쁜 선생님은 아들의 순발력이 어머님을 닮았을 거라며 어머니 달리기에 나를 추천했다. 두 손을 절레절레 휘저으며 거절했지만, 함께 달려와서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아들 모습에 더 이상 버틸 수만은 없었다. 어릴 적 운동회 때는 항상 1, 2 등 도장을 손등에 찍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선수단에 합류했다.
모여있던 엄마들은 모두들 하나같이 자신 없어하는 우는소리를 했다. 참말인가 싶어 잘할 수도 있겠다며 스스로 위로했다. 출발선에 오른발을 내밀고 섰는데,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우리 엄마 파이팅!" 목청껏 외치는 내 아이들의 기대 가득한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끝없이 멀게 느껴지는 하얀 회분 줄 그어진 트랙도 보였다. 허공을 향해 쏘아진 신호탄과 함께 주먹을 꼭 쥐고서 발을 힘껏 굴렀다. 오랜만에 전속력으로 달려서일까 내 마음대로 두 발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마음은 한 두발 앞인데 두 다리는 무겁기만 하다. 잘 못 달린다고 우는소리를 하던 다른 반 엄마들은 이미 육상선수처럼 내달음질 하고 있었다. 숨이 차도록 열심히 달렸건만 여섯 명의 엄마들 중에 맨 마지막으로 피니쉬 라인을 밟았다.
애쓰셨다며 격려하는 담임선생님께 죄송하다 답했다. 입은 뾰로통하고 눈을 내리깔고 있는 아들을 달래느라 이래저래 정신없었다. 시끄러운 함성과 탄식에 운동장을 돌아보니 아빠들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맨 앞 선수가 넘어져서 구른다. 먼지를 털고 일어나 다시 달리던 아빠는 제일 늦게 결승선에 도달했다. '모두들 자신 아이들을 위해 있는 힘껏 달려보는구나.'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민망함도 사라졌다.
이후로도 아이들이 실망할 일들은 많았다. 아이들을 태우고 운전을 하다가 신호위반으로 경찰에게 딱지를 떼이기도 했다. 뜨개질을 못해 딸아이의 요청에도 친구가 입은 스웨터처럼 멋진 옷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게다가 아이들 사춘기에는 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자주 충돌했다.
시간이 흐르면서는, 연약한 엄마라는 사실을 들킨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한다. 완벽한 부모 모습으로 여전히 버티고 있다면 내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나는 실수가 많은 엄마라서 사과도 자주 한다. 요즘은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서 오히려 아이들에게 부탁도 종종 하게 된다. '아이패드를 양도했더니 더 많은 기능은 모르고 그림 그리기만 할 줄 안다'는 아들 웃음에도 그냥 인정한다. 야구 볼을 던지는 모습을 멋지게 그려줬더니, 감탄사를 내지른다. 그것으로도 족하다.
원더우먼 삶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엄마가 부족한 점이 많으니 본인들의 약점도 드러낸다. 커갈수록 솔직하게 자신들 모습을 알려주어 고맙다. 고민을 말해주는 딸아이에게는 "네가 나보다 낫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철없던 나의 그때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프랑스 영화를 들고 와서 노트북 화면이 보이도록 식탁에서 영화를 보는 아들 모습도 좋다. 어떤 영화를 보는지 숨기지 않고 알 수 있게 해 줘서 말이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두 근 반 세 근 반 뛰면서 장르와 심의 수준도 묻고 싶지만 참는다. "엄마는 너무 보수적이에요" 입을 모아 한 편이 된 아이들의 볼멘소리에도 "인정! 나 보수적이야~" 하며 계면쩍게 웃고 만다.
더 멋진 엄마인척 목을 세우는 것보다, 요즈음은 절반 정도는 나를 보여주는 것도 오히려 좋다. 운동회 때 깨져버린 원더우먼의 가면이 다행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