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도 소나기처럼 지나가더라.

이 또한 지나가더라 (sudden shower; 소나기)

by Jina가다

사회복무 중인 파출소에서 퇴근 후, 큰아들은 옆에 앉아 오늘 재미있었던 일화를 들려준다.


“ 제가 아침에 밥을 조금 먹었잖아요. 경찰 아저씨들이 아침 간식으로 샌드위치를 주셔서 배불리 먹었어요. 오늘은 소장님이 일찍 퇴근하셔서 반장님과 김밥, 떡볶이를 먹었고요. 반장님이 아침부터 쓱 지나치면서 ‘오늘 호재다!’며 쾌재를 불러 웃겼어요.”

퇴근 후 오늘 하루를 묻는 질문에 주절주절 힘들었던 일 즐거운 일들을 얘기해 주는 아들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스물두 살이 된 아들과 이런 마주함을 얼마나 꿈꾸었는지 모른다.

이틀 전 아들의 생일에 얻은 감동 그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다. 잠시 케이크를 사러 간 동안 퇴근한 아들은, 식탁에 가지런히 미역국 밥상을 차려놓았다. 오는 길 부산 유명식당에서 사 온 가자미 미역국이라며 내 것이라고 권했다. 급한 걸음으로 케이크를 들고 집에 들어온 나는, 아들의 쑥스러워하는 감동멘트에 깜짝 놀랐다.

“미역국은 아기 낳은 엄마들의 음식이라면서요.”

케이크에 초를 올리고 혼자서 생일 축하 노래를 끝까지 불러주었다. 정신 하나도 없었다. 몇 번이고 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아들, 네가 내 아들이라서 너무나 좋아. 정말 고마워.”

아들의 생일에 오히려 미역국을 선물 받고서 감격한 ‘엄마’라니. 너무나 감사한 시간이었다.



늦은 밤 지쳐서 곤히 잠든 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엄마라서 좋았던 일, 그리고 힘겨웠던 일들이 생각났다. 쌍둥이를 출산 후, 무더워지는 여름날 몸조리하면서 오히려 고생이 많았다. 장마와 겹쳐 땀띠로 가득한 아이들을 돌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젖이 충분하지 않아 분유와 함께 혼합수유했다. 면역을 위해 어떻게든 모유 수유를 애썼다. 아이들과 고생했던 그 여름은 잊히지 않는다.

잘 먹고 잘 자던 순한 아이들은 웃음이 많고 건강한 아이들로 잘 자랐다. 승부욕이 강하고 자기주장도 분명했지만 부모의 가르침과 조언에는 잘 순종하는 아이들이었다. 내 아이들만은 사춘기 없이 바르고 모범적으로 자랄 것이라 확신하며 살았다. 항상 끝까지 맑은 날만 지속될 것처럼 말이다. 남들에게 태풍 같고 장마 같은 사춘기는 부모가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내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확신했었다.

모범생으로만 자라난 장남 장녀 우리 부부를 잘 참아주던 아이들이었다. 중학생이 되어서 “안돼!”라고 단호히 말하는 부모에게 한 두 번씩 반항을 할 때 있었다. 부모인 우리가 위험을 감지했어야 했다. 다른 견해와 무례한 태도를 고치려 매를 들었던 남편에게 결국 큰아들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남편의 간절한 사과에도 한 번 닫아버린 아들의 마음은 도통 열리지 않았다.

부자간의 불편한 관계로 집안은 예전처럼 평안할 수 없었다. 관계 회복을 위해 방학중 제주도 가족여행을 도모했지만 큰아들은 집에 홀로 남는 편을 택했다. 3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큰 아들은 아빠를 피하기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남편은 묵묵히 따뜻한 말을 건네며 참고 기다렸다. 우리 부부에게 3년은 자녀교육에 대해 교만했음을 반성하는 시간들이었다. 자녀들 앞에 자세를 낮추고, 강한 주장이 아닌 타협과 대화를 연습하는 시간이었다. 기다림을 훈련받는 기간이었다.



남편은 아들이 가장 어려울 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 주었다. 진학과 진로를 결정할 때 조언해 주고 자료들을 세세히 조사해 주었다. 아들 마음을 얻기 위해 비굴할 정도로 사랑을 표현하고 믿어 주었다. 부모에게 조금씩 문을 열어주고 거리를 좁히던 아들은 어느새 우리 옆에 함께 앉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족여행을 함께 떠나고 가족사진을 찍으며 함께 웃었다. 부모에게 사랑 표현해 주는 아이들이 감사하다. 이런 날이 정녕 우리에게 다시 시작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둘째 아들에도 엄마 눈물을 쏙 빼게 한 날들이 소나기처럼 있었지만 말이다.

아이들 사춘기는 끝없이 쏟아지는 장마인 줄 알았다. 수없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중얼거렸었다. 막상 빗속을 헤쳐 나와 보니,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였다. 때로는 번개와 천둥 그리고 강풍을 동반하기도 했지만, 다 회복되었다. 갑자기 들이 퍼부어서 확 젖게도 했지만, 다 마르고 구름도 걷혔다. 자녀들과 함께 하면서 언젠가 다시 소나기가 오겠지만, 또다시 잘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생일 아침 낳아주어서 고맙다고 전화해 주는 막내아들도 감동이다. 출근 전 엘리베이터 앞에서 엄마의 두 어깨에 안겨주는 다른 아들도 감사하다. 가끔 소나기에 젖어보니 처마 밑에 잠시 기다리기도 한다. 사춘기도 소나기처럼 그렇게 또 지나간다. 인생의 여러 고난들도 그렇게 지나가겠지. 처마 밑에 잠시 서서 그치기를 기다리는 여유를 잊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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