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장례식에 참여하면서 조의금 액수와 참여 여부에 조언을 구한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여전히 가르쳐야 할 것들이 많음을 다시 확인한다
서울에 있던 막내아들은 조의금 봉투를 만들어 친구와 함께 강원도로 향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 부친상이다. 쌍둥이 아들과 참 좋은 인연으로 만난 선생님은, 아들이 청년 된 지금까지도 사제지간 연락을 주고받는다. 첫 부임지로 발령받은 총각 선생님은 여드름이 여전한 미혼이었다. 반장 된 아이를 돕느라 선생님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초임이라 서툰 부분에는 도울 기회들이 있었다.
피구 감독으로 한 학년에 팀을 만들어 학교별 예선 후, 시 대항까지 진출했다. 두 아들을 선수로 돕느라, 아이스박스를 들고 간식을 조달했다. 훌륭한 팀을 만들어 신나게 훈련시켰고, 수상 추억까지 안겨주었던 선생님이다.
여름방학에는 반이 다른 쌍둥이 아들을 포함해 다섯 명 남자아이들을 강원도 본가에 데려가 주었다. 마주 앉아 얘기하던 큰아들이, 강원도에 갔을 때 스승의 부친을 뵀었다고 말해 기억났다. 선생님의 부친은 2박 3일 동안 강원도의 계곡을 누리게 해 주고 푸짐한 음식으로 배불려 주셨단다.
10여 명 남자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스승의 날이면 그 선생님을 찾아갔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가끔 연락하고 모인다. 선생님 결혼식은 당시 첫 제자들이 모두 참석해서 축하하는 큰 행사가 되었다.
장례일이 평일인지라, 이번 장례식에는 제자 중 서울에 있던 두 아이가 강원도까지 밤중 버스를 탔다. 부산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던 큰아들에게는 정성스러운 문자만 보내도록 조언했다. 서울에서 친구와 버스를 탄 작은 아들에게 두 명분 조의금을 송금했다. 아들들의 이름으로 전달하는 봉투이지만, 사실 내 마음이기도 했다. 본인들 용돈으로 하겠다는 것을 그냥 엄마 마음으로 작은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다.
장례식에 가지 못한 큰아들은 선생님께 문자 내용을 조언해 달라 한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선생님께 조심스러운 글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했던 모양이다.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는 내용과 건강 잘 챙기시도록 예의를 갖춘 말로 조언했다.
강원도로 향하는 아들에게는 복장만 간단히 확인했다. 신발이 마땅치 않다는 아들에게 어두운 색 단정한 복장에 검정 양말을 챙겨 신도록 얘기했다. 요즘은 복장에 대해 자유로운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부분은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 생각했다.
밤중 강원도까지 갔던 아들은 다음날 아침 버스로 서울에 복귀했다. 2교시 수업에 잘 들어갔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피곤한 일정 가운데 수고할 줄 알고 스승을 찾아뵐 줄 아는 도리가 기특했다. 가치 있는 일을 도모할 줄 아는 친구들이 있어 감사하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자녀들이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1년 전, 놀란 목소리로 친구 어머니의 장례식을 알려오던 전화가 기억난다. 친하던 친구 어머니가 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직장 맘이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두 아들을 참 야무지게 키우던 엄마였다. 장례식에 가야 한다는 아들의 말을 전해 듣고 한참 동안 마음이 아팠다. 나중 서울에 갔다가 만난 엄마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 모두에게 가슴 아프고 충격된 일이었다 한다.
당시 대학 신입생이었던 아들들에게 복장과 예절을 간단히 설명했다. 장례식장에 가면 고인의 영정 앞에 하얀 국화를 올리고 한두 발 뒤로 물러서 잠시 묵도 후, 상주와 마주 보고 인사 나누는 과정들을 얘기해 주었다. 아이들이 장례식에 참석할 일 별로 없기도 했고, 외할아버지 장례식에서는 울기만 했던 아이들이다. 엄마인 나도 인터넷을 다시 찾아보며 빠뜨린 부분이 있을까 싶어 사례들을 여러 번 찾아보고 설명해 주었다.
발인식과 장지까지 함께 했던 아들들은 집으로 돌아와 많은 얘기들을 나눴다. 어릴 적부터 함께 공을 차고 공부도 하던 아이들이 어려운 일에도 함께 한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먹먹했다.
당시 고3이던 친구 동생을 함께 염려했고, 눈물도 없이 버텨내는 친구 녀석을 가슴 아파했다. 장례식 기간 동안 아들들은 자신의 엄마와 아빠인 우리를 생각했던 것 같다. 더 소중히 여기는 따뜻한 눈길과 어투가 전달되어 왔다. 아이들이 한 뼘 더 성장하고 있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 전도서 7:2
대학생이 된 아이들은 가끔 형님들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면서 새로운 가정의 첫출발을 본다. 조부모님의 칠순과 팔순을 축하하는 자리에 참석하여 장수를 빈다. 때로는 병문안을 가서 회복을 격려하기도 한다. 친구들의 생일파티, 군입대와 제대 등 축하와 위로를 때에 따라 건네고 얻는다. 자녀들이 새롭게 겪으며 알아갈 인생들은 앞으로도 다양하다.
어른인 우리에게도 장례식은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아이들에게 장례식만큼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할 기회들이 또 있을까 싶다.
세상의 다양한 희로애락을 맛보며 아이들은 또 성장하고 있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