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토크를 알았더라도 내 삶에 왕따 은따의 딱지는 안 붙었겠지?
스몰토크가 뭐예요?
지금 보고 있는 책 내용 중, 저자는 스몰토크를 몰라서 주변의 직장동료들의 은근한 따돌림을 받았다는 내용을 읽으며, 나의 직장, 학교, 학부모, 친인척 까지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다. 멍청하다, 눈치가 없다, 모자란다, 이런 말을 남도 아닌 엄마, 올케가 자주 하였다.
그 당시 이 말의 정확한 맥락을 짚었다면 가족들의 조금이나마 섭섭한 감정을 줄일 수 있었을테다.
"어머니 고모는 왜 그래요, 그냥 안부차 전화를 하면 무슨 일이냐, 이렇게 말을 해서 그냥 안부 차 전화를 했는데, 그 말에 전화 하기가 싫어요." 엄마도 맞장구를 치며 "그래 고모가 원래 그래, 좀 정이 없지, 나도 전화 안 해" 그 말이 다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니, 그 당시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전화 하기를 주저 주저하는 건 30살 즈음이나 60살 즈음이나 매 한가지다. 달라지지 않는다. 이게 천성이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본디 가르쳐 준 사람도 없으며, 남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다. 결코 도덕성이 넘쳐 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내 성격상 그렇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학창시절이야 아직 어려서 뭘 모른다고 할 수 있겠지만, 대학 졸업 후 지 밥벌이 정도는 할 수 있는 나이에도 이런 부분에 둔감했으니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엄마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2남1년 중 막내딸로 엄마에게는 친구 같은 딸이여야 하는데 난 그냥 무심한 딸로 엄마에게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그건 내가 해 줄 수 있어. 엄마랑 영화 한편 본 적도 없다. 작은 올케, 주변 지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가족이야 섭섭해도 이해하는 척이라도 하며 넘어 간다. 직장동료들과의 관계는 그게 아니다. 그래서 직장생활이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그 것 조차 신경을 안 쓰고 내일 마치면 쏜살 같이 책상 정리 한 후 퇴근 준비를 했으니 나를 좋아할 사람은 없었을 것 겉다.
지금도 변명이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정말 몰랐다. 다른 부서의 일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도왔다가 오히려 일을 망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앞섰다. 직장 생활 3년이 넘어서야 겨우 눈치를 챈게 아니고 후배가 말해 주었다. " 언니는 깍쟁이래, 언니를 가까이에서 일을 해 보니 전혀 깍쟁이가 아니네, 오히려 겁도 많고 정말 순수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야겠다. 언니는 보기보다 겁쟁이라고." 그래 고마워, 나를 그렇게 보는구나. 그전까지는 잘 몰랐다.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단지 조금 외롭다는 생각은 해 보았다. 은행에도 영남본부가 있다. 본부에는 다양한 부서가 있고 도서관도 있다. 워낙 혼자 노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 점심 밥 얼른 먹고 도서관에 파 묻혀 책을 보는게 좋았다. 직장이 혼자만 잘 한다고 성과가 나고 일의 진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불행은 멀리있지 않고 바로 가까이 있다. 난 영남본부에서 A급 지점으로 발령이 났다. 100명도 넘는
1급 점포 그것도 은행 살림을 사는 서무계 발령이다. 여기는 정말 100명의 은행원이 하나가 되어 주어야 한다. 평소 스몰토크를 하는데 너무 낯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나와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인사를 해도 그냥 지나가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을 슬 슬 피해 다니기도 하고 참 어려웠다. 100명이 넘는 대식구의 살림을 하는 안 주인의 성격이 내성적이라 소통에도 문제가 있었다 .
은행은 1년에 한 두번 감사를 받는다. 가장 큰 감사는 감독원 감사이다. 아침 출근을 했으나 은행 뒷문이 열려 있고 그 넓은 은행은 대낮처럼 환했다. 그리고 서울 사람들의 목소리가 웅성 웅성 거렸다.
감독원 감사가 떴다. 내 다리는 후들 후들 거렸다. 큰 점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대 감사였다.
평소 다른 부서 사람들과 업무상 인사를 하는 정도로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으므로 내가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래도 눈치는 있어 난 언니들에게 도와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스몰토크는 이렇게 하는 거 였다. " 언니들 미안 나 좀 도와주세요. 감사 마치면 우리 근사한데 가자 내가 한톡 쏠게, 언니들 말 남김에 대기업 남자들하고 미팅도 주선할게." 언니들 그 말에 바로 오케이 .
30년전의 30살 즈음이나 지금 30살 즈음도 변한 건 크게 없다. 변한 건 스몰토크라는 용어만 달라졌을 뿐이다.
그 당시는 이렇게 말했다. " 넌 나에게 신경 좀 쓰줘, 전화라도 자주 하고 밥이라도 먹자." 이 말이면 된다.
난 대 감사를 잘 받고 언니들에게 한 톡을 쏘고 대기업 남자들과는 미팅 주선은 못했다. 그 당시 대기업 남자들은 워낙 가격대가 있었고 아니면 대학 CC커플이 많았다. 은행에도 거의 CC커플이었다. 할 수 없이 골드미스 언니들 몇명은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과 만남을 주선했다. 한 쌍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지금 30살 즈음은 30년 전 30살 즈음과 다르다고 한다. 나도 주변에서 함께 겪어보니 유별난게 아니라 우리도 유별났다. 이직율도 높았다. 제1금융을 보다 제 금융 투자 쪽은 월급이 세다고 스카웃되어 가는 직원들도 있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별 반 달라진 건 없다. 지금은 경쟁 콘텐츠들이 넘쳐난다. 가짜 뉴스도 판치도 유튜버 너튜버 블로거 들 인스타그램, 방송매체 이제는 손 꼽을 수 없다.
지금 30살 즈음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희들 절대 이상안하고 까칠 하지도 않아 그건 개성이야, 그리고 자기 주장도 없으면 안된다. 잘 하고 있어.
왕따 은따도 아무도 하니 강단이 있어야 한다. 뚝심이 있어야 하고 말고. 생각할 시간은 나 혼자서 해야 하는거야. 아무도 도와 줄 수 있는게 아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