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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 즈음에

30살 나이를 응원하며

-그때의 작은 아는 지금의 작은 아는


지금은 그나마 불러주면 감지 덕지 열심히 USB 하나 들고 강의를 한다 . 그래서 대학생들 방학 특강, 자격증 과정 정도의 강의만 한다.  몇 년간이나 몸 담았던 그 당시 아이들이 생각난다.  봄 볕이 따스한 낮 교정을 잠시 걸어 보고 싶어 혼자서 걷고 있으면 몇 명의 낯 익은 아이들을 만난다. 그럼 나 보다 덩치도 큰 녀석이 교수님 하며 가까이 다가온다 "나도 모르게 너 아직도 학교에 있어 졸업은" 그럼 녀석 대답이 걸작이다. 아니 슬프다. "학교에 적을 두고 있어야 뭐라도 얻을 수 있어요." 그리고 대학에서 공짜로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워서 나갈거예요. " "그래 알았어, 여학생과 달리 남학생은 군 입대, 대학 4년 휴학2년, 어학연수, 인턴십, 세상 공부 등 8년 정도 걸린단다." 그럼 29살 정도가 되는구나.


새내기로 출발한 너의 30살 즈음은?

노래 가사를 보면 우리 엄마라는 가사가 제법 들어가 있다. 반대로 30살 즈음의 아이들 생각이 난다.

난 기독교인이므로 조용히 기도만 하고 있다. 부모 마음이란 자식에게 만큼은 모든 것 다 해 주고 싶고 다 먹이고 싶은 게 부모마음이다.   우리 신혼의 나이가 30살 즈음이었다.   신혼시절 1년 정도를 시댁에서 생활을 했었다. 

시집살이를 한 이유는 시댁의 규율을 좀 배우라는 것이다. 하지만 직장 다니는 며느리는 시집살이를 할 수가 없다. 오히려 시어른들이 며느리 살이를 하는 것이다.  직장이 빨리 마쳐 집에 들어서니 남편과 시어머니의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아야, 이거 한 번 먹어봐라, 몸에 좋은 기다. " "엄마요. 그렇게  몸에 좋으면 엄마나 묵었소. 난 그런거 안 묵소." 그리고 횡 나가 버린다.  시어머니는 나가는 작은아 뒷 통수에 대고 몸에 좋은데 와 안 묵는다 카노. 오히려 내가 화가 났다. 난 옷도 갈아 입지도 않고 재래식 부엌에 따라 나가"어머니 내가 좋아해요. 내가 다 먹을게요. "  시어머니는 " 옷 갈아 입고 나온나, 배 고프제, 내가 얼른 상차리마" 요즘 말로 싸가지 없는 저 30살. 한 참 후에 들어온 철없는 그 남자에게 물어보았다.  "좋은 말도 많고 그냥 몸에 좋은 거 먹어라고 하는데 왜 그래요."  "응 난 싫어하는 건 안 먹어." 그래 너 잘랐다. 


시어머니의 작은 아가 아니라 내 작은 아 한테  "이거 몸에 좋은 건데 한번 먹어 볼래!" 작은 아는 "어머니 저는 못 먹는 음식은 안 먹는 것 아시잖아요. 어머니는 좋아하시잖아요 어머니 많이 드세요." 말만 조금 부드럽지 그 때의 30살 즈음이나 현재의 30살 즈음은 똑같다.   


과거의 작은 아는 나와 함께 있어 내 손 바닥에 있으니 큰 걱정은 안된다. 그러나 현재의 작은 아는 젼화가 와야 안심을 할 수 있다.  시어머니의 큰 아와 내 큰 아는 조금 안심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전화가 안 와도 서운 하지도 않다. 시어머니는 시집살이를 무사히 마치고 개선장군처럼 어기양양하게 분가한 우리에게 토요일은 집에 와 있어라 라고 하셨다. 어김없이 주말의 우리집은 시댁이었다.  30살의 나이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살아 있다면 30살이 되고60살이 되고 좀 더 건강하다면 90살이 되고 120살까지 살 지 않을까?

30이라는 나이는 싫든 좋든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게 할 나이임에는 분명하다.  오늘도 30살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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