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귀여운 공주 & 거짓말, 비밀
노랑-
변덕스러움, 비밀스러움, 자주 오해 받는 것, 행복한 것, 아주 과 감 한것, 위협적인 것, 성스러운,
광적인 것, 그것이 바로 노랑의 느낌이다.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는 노랑을 " 온화하고 명랑하며 감각적 인 것으로서 여성적 원리"로 보았다.
그리고 노랑을 보라의 보색으로서 화해적으로 보았고, 연인으로서가 아니라 위로자로서의 여성이라고 덧붙였다. 반면에 에밀놀데(Emil Nolde)는 밝은 노랑에서 "두려워서 살려 달라는 동물들의 비명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색채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현상으로 보여진다. 경제가 여러울수록 사람들은 뭔가 관심을 가지고 깊이 있게 몰두를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오방색의 정색인 노랑은 땅과 영토를 상징하므로 황제의 권위를 상징한다고. 노랑은 중심을 가리키고 신덕(信德)을 드러내며 안정과 번영의 표징으로 천자만이 곤룡포를 입을 수 있었다. 서민들은 단일색의 황색 옷을 입지 못했으며 이전까지만 해도 자황색까지 입을 수 있었던 우리의 조선조 왕들의 복장에 있어서 비로소 고종황제에 이르러서야 황색 단독의 곤룡포를 입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색채공부를 하고 한국에 돌아와 얼마 동안 지금의 방과 후(특활) 강사처럼 색채교실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의 특성화 고,(실업계 ) 아이들의 특성을 알아야 아이들에 대한 이해를 해야 서로 간의 신뢰를 형성할 수 있을 것 같아 먼저 아이들에게 선호색을 한번 적어 보도록 했었다. 빨강색, 주황색, 노랑색, 파랑, 핑크색, 초록색 등 다양한 색들의 선호색을 적어 주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애교가 많고 귀여운 여학생들은 노랑색을 좋아한다고 한다. 노랑색의 보색은 파랑이다.
노랑의 아이는 모든 경계를 무너뜨렸다. 주홍과는 달리 노랑은 경계선을 무너뜨릴 필요가 없었다. 노랑은 경계선을 간단히 무시해 버린다. 노랑은 마치 자기 확신이 없는 듯 산만하고 혼란스러운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 아이의 행동도 장난이 아니었다. 주 1회에 정규수업을 마치고 난 후 특활 수업으로 2시간 가량 색채교실 수업을 진행하러 교실에 들어가면 노랑아이가 나타나며 이것 저것 질문을 해 대기 시작한다. " 선생님 오늘은 어떤 수업을 할 거예요, 재미 있을까요. 오늘도 색칠해야, 자기가 오늘 하루종일 무엇을 했는지 아세요, 지금 내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등. 이것으로 끝이 나면 될 것 을 그 다음으로는 나에게 화살이 날아온다 " 선생님 여기 오기 전에는 무엇을 하다가 왔어요, 올 때 어떻게 왔어요" 등. 나는 늘 덤덤하게 말한다 " 선생님 오늘도 지하철 타고 왔어요. 뚜벅이잖아, 운전을 못하잖아 방향 감각이 없는 길치라서. " 그리고 노랑아이는 자기 자리로 돌아 간다. 이 아이는 늘 이렇게 나의 정신을 쏙 뽑아 놓는다. 그런데도 노랑아이가 밉지는 않다.
노랑은 자기만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를 수 도 있다. 스펙트럼 띠에서 노랑은 빨강보다 훨씬 더 작은 공간 을 차지해도 금방 모든 사람들 눈에 띄기 마련이다. 반고흐와 같은 시대의 많은 화가들이 믿을 만하지 못한
크롬노랑을 선택한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만성적인 경제적 불운과 연관되었다고 한다. 값비싼 노랑염료
금빛 샤프란을 사용 할 수 있었다면 고흐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고흐는 노랑 속의 절망과 병든 영혼 그리고 그와 동시에 깨달음에 근접되는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비쳐 버리거나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장소인 그의 그림 속의 밤 카페에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천한 술집의 어두운 힘듦을 묘사하려고 시도했다. 거기에서 모든 것은 아궁이처럼 흐릿하고 황내가 나는 분위기 속에 섞여 있다.
괴테가 말했듯이 눈부신 무색이라고 말한 것처럼, 금빛 노랑은 손에 잡히지 않으면서도 빛나는 그리고
투명하지 않으며 마치 순수한 비상처럼 가벼운 빛의 힘에 의해 고도로 순환되어 물질과 같다(색의 수수께끼109p)
매디카운티의 다리의 두 주인공 처럼 중년에 비로소 만난 일생의 단 한 번 뿐인 짧지만 강렬했던 사랑이야기가 있다.
"몇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거요. 당신을 사랑하오. 깊이 완벽하게 언제나 그럴 것이오 . . ."
킨케이드는 왜 볼품없는 시골 여인에게 시랑의 감정을 느꼈으며 프란체스카 또한 왜 떠돌이 사진작가에게
마음을 빼았겼을까 생각을 해본다.
가족들이 항상 식사를 하는 식탁 테이블이 노랑색이며 주변 꽃무늬 등 과거에 대한 회상을 했을것 같다.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시골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는 자신을 늘 생각하게 만드는 집안 분위기도 중년 여성의 마음을 킨 케이드에게 빼앗긴 것은 아닐까 한다.
(영화 시네마 참고)
두 사람의 짧지만 강렬하고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는 이 공간에서 시작되었다. 주변에 보면 핑크색의 잔잔한 꽃무늬의 벽지와 낡은 듯 한 노랑색의 식탁 테이블까지 두 사람의 비밀 사랑을 축복해 준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하게 한다. 노랑이 주는 신비롭고 변덕스럽고 밝고 환하고 눈에 확 들어 오며 두 사람의 감정을 주체 할 수
없게 만들었든 건 아닐까 한다. 유독 두 사람의 노랑색 식탁 노랑색 의자 등 . . . . . .
내가 노랑아이를 귀여워 할 수 밖에 없었든 이유처럼 말이다.
지금 그 노랑 아이도 결혼도 하고 엄마가 되어 아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을 것 같다.
절대 미워 할 수 없으니까? 잠시 싫증은 나겠지만 곧 노랑아이를 찾게 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