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호흡, 한 동작

아쉬탕가 요가의 돌봄

by 스티카 Stica

사실 오늘은 일어나는 것부터가 괴로웠다. 어제 영상 자막을 다는데, 끝날 것 같으면서 끝나지 않아 거의 열두시가 다 되어 잤기 때문이다. 다섯시간도 못 자고 네시 반에 일어나려니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나 싶었다. 어젯밤 영상 속 내 얼굴을 보면 볼 수록 못나보여, 이걸 정말 남들 보라고 올리는게 맞나 하면서도 꾸역꾸역 자막 작업을 마쳤을 때 이미 심적으로 몹시 지쳐있는 상태였다.


오늘만 땡땡이 칠까 고민해본다. 이대로 눈 감고 다시 자면 그만이다. 하지만 '한번만'의 유혹은 한번에서 그치는 법이 없지. 아주 잘 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서도 거울을 그냥 멍하니 본다. 왜 이렇게 가기가 싫지? 그러고보니 어제 요가를 죽 쒔던 거다.


시종일관 죽이었던 건 아니긴 한데, 얼추 완성이 되어간다고 생각했던 우띠따 하스타 파당구스타아사나(Utthita Hasta Padangusthasana)에서 사지가 몹시 흔들리다 결국엔 쿵 하고 다리를 떨어트려 버렸다. 원장님이 그걸 봤고(소리 때문에 안 보기 힘드셨을테다), 눈은 마주치지 않았지만 왠지 표정이 실망한듯 보였다. 물론 실제 마이솔(Mysore) 클래스의 현장은 한 명의 수련생 때문에 실망을 하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실망이 그의 얼굴에 비춰진 것일 뿐이다. 


밍기적거리며 어찌어찌 향을 피우고, 스트레칭을 하고서 집을 나섰다. 이제 꽤 어둡다. 여름이 끝나긴 끝났구나. 바람도 부는데, 시원하기는 하지만 역풍이고 나름 세기가 세서 자전거와 마찰을 일으킨다.


오늘따라 땀이 더 많이 난다. 땀을 "비오듯" 흘린다는 말이 실제 이렇게 연출 가능한 것인줄 알았다면, 평소 "비오듯"이라는 표현을 좀 더 아껴 썼을 것이다. 스탠딩 자세에서 계속 다리 간격이 안 맞다. 다리를 벌린 폭이 너무 넓거나 좁으면 당연하게도 엉뚱한 신체부위를 자극하거나 긴장하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폭과 연결을 안 짚어줘도 당연스레 잘 찾겠지? 난 왜 이렇게 남들이 당연하게 하는 걸 못 알아채고 더딘 걸까. (어려서 피아노를 배울 때는, 왼손과 오른손을 구별하지 못해 늘 밥먹는 시늉을 해보곤 했었다.)


내가 배운 데까지를 끝내고 피니싱 시퀀스를 하러 자리를 옮기는데, 원장님이 와서 다시 원래 자리에 매트를 깔라고 하셨다. 새로운 진도! 스탠딩 시리즈가 안정되어야 그 다음으로 나갈 수 있다고 하셨는데. 내가 준비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새로운 동작들을 다 마치고 피니싱 시퀀스를 할 때는 이전까지 불가능했던 파드마아사나 (Padmasana, 연꽃자세/결가부좌)에서 발가락 잡기에 성공했다.


흥분이 다 가시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쉬탕가 요가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다. 한 번의 온전한 호흡으로 잇는 동작 하나 하나가 모여 부드럽고 강인하게 나를 일구어준 것 같다. 어제의 뚝딱거리던 나, 못생긴 나의 자아를 옆으로 밀어내고 차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보듬고 다듬어준 것이다.


어느새 상냥해진 초가을 바람. 고맙습니다.


우띠따 하스타 파당구스타아사나(Utthita Hasta Padangusthasana), 팔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다리를 바닥에 쿵 내려찧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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