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혼, 투병의 인기

그래도 제 글은 인기가 없긴 합니다만

by 스티카 Stica

세 가지 극적인 '인기' 소재에 관련하여 쓴 글. 그러한 소재가, 또는 그러한 글이 잘못되었다고 하지는 않았고 인기가 많을 만한 이유에 대해서도 다루었지만, "브런치 직원들 보고 있나?"하는 듯한 메세지도 함께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한 지적? 평가? 조언?(이쯤 고개를 갸웃거리는 주현영 기자가 나와주어야 할 것 같다)에 나도 내심 찔렸다. 내 글의 상당부분은 키워드가 '퇴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글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통계를 보면 글을 올린 날 아주 많아야 조회수가 30을 넘기는 수준에 불과하다. 라이킷, 구독, 댓글의 수는 더더욱 적다.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고 상호 학습의 기회를 바라는 마음, 타인의 공감을 기대했던 인정 욕구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간헐적인 라이킷도 물론 꽤나 큰 위로가 되지만, 평생 소비자로만 살았던 입장에서 라이킷은 하지만 구독은 하지 않는 것이 어떤 평가인지 정말 잘 알고 있다. 내가 쓰는 것은 그 정도의 소비가치를 갖는 것이다.


때문에 글을 발행하고 난 뒤에는 의기소침해지기 일쑤고, 솔직히 가끔은 관두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여전히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쓴다는 행위 자체를 통한 자기돌봄 효과. 글을 써서 발행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글을 발행하는 플랫폼에 타인이 발행한 글을 읽는 오묘한 공동체 의식.


10년을 직장인으로 살다가 무직자 0년차가 되니, 자연히 일상에서 달라진 부분들을 곱씹는다. 아,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보통은 깨달은 바가 있을 때 상쾌한 기분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쓰는 과정에서 다시 자문해보고 고민해보며, 가끔은 다시금 속상해지는 일도, 새삼 뿌듯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혹시라도 나와 비슷한 의문, 혼란, 좌절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아니면 언어를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 글로 승화될 감정이고 생각들인지를 궁금해하며 다 쓴 글을 올린다.


아마 이혼, 투병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인기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이혼이나 투병의 경험을 선택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개중에는 분명, 나처럼, 이혼이나 투병에 관해 쓰더라도 인기 없는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일요일에 커피 원두를 사러 나갔었다. 2주 전, 홍대에 있는 어떤 커피 전문점에서 케냐산과 르완다산을 250g씩을 사 먹은 적이 있는데, 둘 다 매우 신선했지만 내 취향에 꼭 맞지는 않았다. 강배전한 진한 맛이 나름의 매력이 있기는 해도 둘 다 탄 맛, 쓴 맛, 고소한 맛이 전부였던 것이다. 원래도 에티오피아산의 신맛과 복합적인 향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그 가게의 에티오피아산 원두 드립커피를 마셔보고 원두를 사오려는 계획으로, 한 시간을 산책삼아 걸어 갔다.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에티오피아가 케냐와 르완다보다는 신 맛이 있었지만, 오래 볶은 탓인지 신 맛이 눌려있었고 전반적으로 맛이 무거워 꽃이나 과일과 같은 다채로운 향을 느끼기 어려웠다.


원두를 사지 않고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가게는 왜 그렇게 모든 원두를 강배전하는지 모르겠다고 남편에게 불평했다. 남편은 처음에 "가차없네"를 농담조로 읊조렸다. 그러다가 본인은 맛이 괜찮았다며, 아마도 가게 주인이 신 맛을 싫어하나보다고, 신 맛이 나는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의도적으로 좀 더 볶은 것이 아니겠느냐고 대변했다. 나는 강배전하여 탄 맛과 쓴 맛이 지배적인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도 있지만, 약배전이나 중배전으로 향을 살린 복합적인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여러가지 원두 옵션을 제공한다는 것은 그 만큼 다양한 맛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받아쳤다. 또, 시향을 위해 샘플러로 놔둔 커피가루에서 산패된 냄새가 심하게 났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남편은 짐짓 심각해졌다. 그는 나의 냉정한 평가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왜? 단 둘이 커피가게를 멀리 떠나와 산책길을 걸으며 한 이야기인데? 나는 내 취향을 말한 것 뿐인데? 그러자 그는, 본인도 자영업자로서 '철저한 소비자 입장'의 고객들을 대면하는데, 본인 곁에 또 다른 '철저한 소비자'가 있다는 사실이 유쾌하지 않다고 했다. 나는 일요일 오후에 한잔 7500원짜리 커피를 사 마시는데 내가 그럼 소비자지 다른 무엇이겠느냐, 내 남편한테 방금 마신 커피가 맛이 있다 없다도 마음대로 말하지 못하느냐고 성을 냈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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