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유명인?
의료 분야에서 개인 정보는 민감한 부분입니다. 어떤 질환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과에서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개인 정보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의무기록을 작성할 때에도 민감한 정보는 제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정신과 소속이 아니면 정신과 기록에 접근이 제한됩니다.
유명 인사의 의무기록은 더더욱 제한됩니다. 주치의 외에는 의무기록 열람을 못하도록 제한하거나 의무기록에는 최소한으로 작성을 하는 등 민감한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를 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에피소드는 실제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겠죠. 다른 이야기입니다.
토요일 당직을 서는 날이었습니다. 오후 3시경에 응급실에서 의뢰가 왔습니다.
<진료 의뢰>
35세 여성
최근 환자가 민감해졌다며 보호자가 데리고 옴. 자살 시도 없음. 이전에 정신과 다닌 적 없음.
진료 의뢰드립니다.
의뢰된 내용만 봐서는 왜 응급실까지 찾아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민감해졌다고 응급실로 데리고 오지는 않았을 텐데, 보호자가 과민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분명 다른 이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면담실로 향했습니다.
환자분이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고, 보호자로는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옆에 서 있었습니다. 환자분은 조금 과할 정도로 짙게 화장을 하고, 추운 날씨에 맞지 않게 짧은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손에는 모자를 들고 있었습니다. 간단히 제 소개를 하고 보호자와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환자분이 괜찮다고 했습니다.
"오늘 어떤 일로 오셨나요?"
"남자친구가 제가 최근에 예민해졌다고 오자고 해서 왔어요. 남자 친구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왔어요."
환자분이 차분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의외로 적절하고 논리적으로 대답을 잘하셨습니다.
"그렇군요. 어떤 부분이 예민해졌다고 느끼셨나요?"
"자기가 얘기해."
환자분이 보호자에게 고개를 까닥하며 쓸데없이 응급실로 데리고 온 것을 탓하듯이 말했습니다.
"아, 다른 게 아니고 OO이가 요즘에 조금 예민해지고 잠을 잘 못 자는 것 같아서요."
보호자가 대답하였습니다. 보호자의 말투와 태도로 보아하니 환자분 앞에서는 하기 곤란한 이야기가 있다는 눈치였습니다. 환자분과 보호자를 분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환자분께서 혹시나 보호자분과 있으면 하기 힘든 이야기가 있을 수 있으니 환자분과 따로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저는 환자분과 보호자 모두에게 동의를 구한다는 의미로 둘을 번갈아 보면서 물었습니다. 둘 다 동의를 하여 보호자는 나가고 환자분과 둘이 면담실에 남았습니다.
"혹시 보호자분이 계셔서 못하셨던 이야기가 있을까요?"
제가 물었습니다. 뭐라도 이야기해 주시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환자분은 그런 것은 없다고 했고, 남자 친구가 평소에 걱정이 많은 편이라고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보호자분과 따로 이야기를 해보아도 될까요?"
"아니요. 그럴 필요는 없어요. 그냥 제가 잘 이야기할게요."
애초에 제 목적은 보호자와 이야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간단하게 끝내고 밖에 있는 보호자와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환자분이 거절을 했습니다. 곤란해지긴 했지만 무언가 숨기고 싶은 얘기가 있다는 반증이었습니다.
"그래도 보호자분에게 다른 문제는 없는지 잠깐이라도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니... 하아 그렇게 하세요 그럼."
환자분이 짜증내며 마지못해 승낙했습니다. 보호자와 몰래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통보라도 하고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이후로 환자분을 두고 나가려는데
"근데 제 남자친구가 조금 특이하거든요? 감안하고 들어주세요."
라며 걱정을 내비쳤습니다. 이 말을 들으니 환자분이 어떤 이야기를 숨기려고 하는 것이라고 더욱 확신을 하였습니다. 면담실을 나가서 대기실에 앉아 있던 보호자분을 찾았습니다.
"네, 환자 분하고 이야기하고 왔는데 아까 말한 것처럼 조금 예민한 것 외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하더군요. 어떤 일로 왔는지 얘기해주시겠어요?"
"예 의사 선생님, 혹시 저쪽에 가서 말씀드려도 될까요? 주변에 사람들이 들으면 좀 그래서..."
그러자고 하고 기둥 옆 구석으로 옮겨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선생님도 알아보셨을 거 같은데, 사실 저 친구가 연예인이거든요. 저는 남자친구인데 매니저도 하고 있어요. 들어올 때 모자를 쓰고 들어와서 다행히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어요. 본명도 철저히 숨겨서 알아본 사람도 없었고요."
"아 예, 제가 연예인을 정말 잘 모르는 편이어서 알아보진 않았습니다. 아무튼 그렇군요. 그래서 오늘 어떤 일 때문에 오셨을까요?"
"아 네 그게 사실 저 친구가 요즘에 스토킹이랑 몰래카메라 사건이 있었거든요. 그 뒤로 스트레스를 좀 크게 받았는지 잠도 잘 못 자고 엄청 예민해졌어요. 밖에 나가면 스토커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고 사람들이 휴대폰 들고 있는 것만 봐도 자기를 찍는 거 같아서 나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최근 1달 동안은 활동을 아예 멈췄어요. 심지어 집에도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을까 봐 걱정하고 다 뒤져보고 그래요. 그런 사건이 있어서 그럴 수 있다는 건 이해하지만 너무 과한 거 같아서 데리고 왔어요."
보호자분이 이야기했습니다. 여기까지 듣고 저는 오래간만에 특이한 케이스가 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 그랬군요, 그 일이 언제 있었던 일인가요?"
"아 그건 제가 정확히 모르는데 아마 1달쯤 된 거 같아요. 그 뒤로 활동을 멈췄다고 했으니까요."
증상이나 사건이 언제 발생했는지 정확히 물어보는 것이 보통 루틴하게 하는 두 번째 질문입니다. 그런데 매니저 겸 남자친구인데 스토킹 사건이 있었던 날을 정확히 모른다는 건 뭔가 이상했습니다. 제가 이어서 물었습니다.
"아 네, 혹시 환자분 활동명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보호자와의 면담이 끝나고 찾아볼 생각으로 물었습니다. 보호자분이 OOO이라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비밀 보장은 되니까 걱정 마세요. 환자분이 과거에는 어땠는지 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혹시 언제부터 환자분을 알게 되었습니까?"
"아 OO 이는 만난 지 2주 정도 됐습니다."
"아 그래요? 처음 알게 된 게 2주 된 건가요?"
"아 아니요. 사귄 게 2주 정도 된 거예요. 처음 알게 된 건 3주? 정도 됐네요."
보호자분이 황당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정말 궁금해져서 다음 질문을 이어 갔습니다.
"어떻게 만나시게 된 건가요?"
"아 그런 것도 이야기해야 하나요? 그냥 술 마시다가 만났어요."
"아 그렇군요. 네 그러면 일단 환자분이랑 같이 계셔 주시겠어요? 제가 금방 다시 찾아 가겠습니다."
보호자분이 약간 불편한 기색을 보였지만 쉽게 대답했습니다. 속으론 '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러기도 하나?'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생각해보니 환자분은 저보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보호자분은 알겠다고 하고 면담실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휴대폰을 꺼내 보호자분이 말해준 활동명을 검색했습니다. 찾아보니 실제로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언뜻 봐서는 환자분과 동일 인물인지는 확인이 안되었습니다. 제가 연예인을 잘 모르기도 하고, 연예인의 프로필 사진과 실물이 다를 수도 있겠지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나이도 확인해보니 맞았습니다.
어쨋든 보호자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타해 위험성이 크진 않을 것 같았습니다. 환자분이 원한다면 신경안정제 경구 약물을 처방하고, 외래 진료를 잡아 주는 방향으로 하고 일단 오늘은 귀가 조치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면담실로 향했습니다. 들어가려던 순간에 면담실에서 환자분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저는 면담실에 들어가지 않고 잠시 밖에서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보았습니다.
"너는 왜 내 말을 안 믿어?! 진짜 그 스토커들이 여기까지 찾아 왔다니까? 지금 아까 의사라는 사람도 그 중에 하나야. 그러니까 나한테 진료 본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물어보지. 너 그 사람한테 이상한 얘기 한거 아니지? 나 누군지 얘기 한거 아니지? 어?!"
이 정도면 환자분에게 피해 망상(persecutory delusion)이 생긴 것 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를 스토커 취급 한 것에 대해 화가 나서 그렇게 생각 한 걸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환자분은 매우 과민하고 흥분이 된 상태였습니다. 흥분된 상태가 지속 되면 그냥 귀가를 시켜서는 안 됐습니다.
환자분의 말이 끝나고 남자친구 분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지 잘 안들렸습니다. 저는 제가 방금의 대화를 엿 들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조금의 텀을 두고 면담실 문을 노크 했습니다. 면담실 안에서 환자분이 '네' 하고 크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마 대화를 하던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 제가 두분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단 환자분께서는 최근에 자살을 생각해보거나 다른 사람을 해치려 하거나 한적은 없으신것 같네요. 맞나요?"
환자분과 보호자가 그렇다고 대답 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당장 입원을 할 기준에 해당 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환자분은 아니라곤 하지만 최근에 보호자분께서 환자분이 예민해졌다고 느낀 것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옆에서 관찰한 모습이 더 정확할때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잠을 잘 못 주무셨다는 것도 정신건강의 적신호 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수면제를 처방해드릴테니 퇴실 하시고 다음에 외래로 오시는 것이 어떨까요?"
제가 말했습니다. 환자분이 망상이 있는 것일 수 있지만 자타해 위험성은 당장 크지 않고 대화도 적절하게 하는 모습을 보니 강제 입원을 할 수는 없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환자와 보호자분 둘다 여기에 동의를 하였습니다.
비밀 보장을 하기 위해 연예인 누구인지는 의무기록에 적지 않았고, 외래를 예약해드린 교수님에게 구두로 따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의외로 그 환자분은 예약된 외래 날짜에 교수님 진료를 보았습니다. 진료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외래 진료 기록>
응급실 내원 후 첫 외래. 혼자 내원.
과대 망상. 대단한 사람, 유명인이 되었다고 착각. 누군지 말 못할 유명인들과 커넥션이 있다고.
피해 망상. 몰래카메라, 스토커. 진료실 밖에도 와있다. 교수는 믿을 수 있다.
최근에 남자친구랑 헤어짐. 자기가 사귀어 준거라 괜찮다.
r/o manic episode, r/o delusional disorder
(r/o 은 rule out 의 약자로, 해당 질환들을 고려해야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럴수가! 교수님은 환자분이 연예인이라고 한 것부터가 과대 망상(grandious delusion)이었다고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남자친구이자 매니저라고 한 사람도 속은 것이고 그 사이에 알아차려서 헤어진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기록을 보고 난 후에 어떤 환자분이 연예인을 사칭 했다는 사실을 동기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연예인이 아니라고 차별을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모든 환자분의 개인 정보는 소중한데 말이죠. 정신과에서는 환자분에 대한 이야기를 동료나 선배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목적이 단순히 가십거리를 즐기기 위해서여서는 안되며, 조언을 얻거나 심리적인 지지가 필요할때 등의 바람직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 뒤로 환자분은 외래를 꾸준히 왔지만 기록을 보니 여전히 자신이 유명인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믿는 것이 그녀에게는 나름 필요한 일이었을 것 입니다. 가령 무너진 자존감을 채우기 위한 수단일 수 있겠지요. 교수님도 사회적으로 인정 받은 사람이다보니 교수님과의 연결을 계속 유지 하고 싶은 마음에 외래를 계속 오긴 했지만 약물은 잘 안 먹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 같습니다.
그녀가 다른 방법으로 자존감을 채울 수 있게 된다면 더 이상 망상에 매달리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는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각 에피소드마다 마지막에 제가 느끼고 배운 점들만 실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