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어두운 우물
이번 에피소드는 정말 깊은 우울증을 겪고 있던 환자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0월 무렵, 정신과 1년 차 일이 익숙해졌을 때였습니다. 웬만한 응급 환자 케이스는 겪어봐서 선배들에게 밤늦게 전화해서 조언을 얻는 일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환자를 만나러 응글실을 가기 전에 긴장하는 일도 많이 줄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겪어 보지 못한 케이스가 있었습니다. 아주 심각한 자살 시도를 하는 경우입니다. 생각해 보면 자살 시도로 인해 생명이 위태롭거나 의식이 없는 경우에는 응급실에서 정신과 전공의에게 의뢰하지 않습니다. 정신과 의사를 불러봤자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신과에서 자살 위험성을 평가할 때 여러 가지를 고려합니다. 자살 사고(suicidal ideation)가 어느 정도인지, 계획은 있는지, 시도한 적이 있는지, 시도를 했다면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로 위험한 시도였는지, 주관적으로 어느 정도의 자살 의도가 있었는지 등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자살 위험성을 자세히 평가하는 C-SSRS라는 평가 척도도 있습니다.
그만큼 죽고 싶은 생각은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자살 생각은 항상 양가감정(ambivalence)의 성질을 띕니다. 죽고 싶은 마음의 이면에는 살고 싶은 마음도 강하게 있는 것입니다. 죽고 싶은 마음으로 인해 괴로운, 또는 괴로워서 죽고 싶은 환자분에게 살고 싶은 마음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자분의 '죽고 싶은 생각'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자살 시도를 한 분들 중 다수는 스스로에게 놀라고, 자살 시도를 한 것을 후회하며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살 시도를 여러 번 했던 분들도 한번 자살 시도를 하고 나면 당분간은 자살 생각이 안 난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죽고 싶은 마음의 이면에 있는 살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끄집어낸 것입니다. 제가 그때까지 만났던 분들은 그랬습니다.
중년 남성 환자분이 자살 시도를 하고 응급실로 실려 왔습니다. 자세한 방법까지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만, 정말 죽으려는 의도가 확실했고, 계획적이었습니다. 다행히 치명적인 방법은 아니었기에 별다른 후유증 없이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응급실 면담실에 들어가 보니 환자분은 의식이 멀쩡했고, 침대에 차분히 누워 있었습니다. 미리 의뢰된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환자분에게 응급실에 오게 된 이유를 물었습니다.
"자살 시도를 해서 왔어요." 환자분은 덤덤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어떤 식으로 하셨습니까?" 저는 당황하거나 너무 걱정하지는 않는 전문적임과 비판하거나 나무라지 않는 따듯한 느낌을 의도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환자분은 자신이 시도한 방법을 알려주었고 이어서 말하셨습니다.
"사람이 쉽게 죽지는 않네요..." 환자분이 덧붙히 이 한 마디는 살아나서 다행이라기보다는 아쉽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마음에 동조해서는 안 되기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살아나서 다행입니다. 지금까지는 큰 후유증도 없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아직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환자분의 어딘가에 숨어 있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끄집어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환자분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죽는 것 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선생님도 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환자분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제 생각이 변하지 않을거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힘든 이야기를 하고 나면 환자분의 생각이 바뀔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들어보니 환자분의 이야기는 절망적이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 건강상의 문제, 사고로 인한 손목 절단.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며 원 가족들로부터 경제적인 착취, 전 배우자의 외도 후 이혼, 선천 질환으로 인한 어린 자녀분의 죽음. 환자분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으면서 제 마음에 돌을 하나씩 얹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반면에 환자분은 그런 이야기를 덤덤하게 하는 듯했습니다.
무엇 하나 제가 겪어 본 일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저보다 20년을 더 사신 분에게 제가 과연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무력해졌습니다. 평소에 잘 얘기 하던 '그래도 살아야 한다' '그래도 죽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환자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해 보는 것뿐이었습니다.
"선생님, 괜찮으니까 저를 내보내 주세요." 라고 환자분이 이야기 했습니다. 제가 당황한 것을 눈치 챈 것인지, 오히려 저를 배려하려는 듯한 환자분의 말에 저는 수치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환자분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합리화하며 퇴원하는 방향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병동에 입원을 하기에는 경제적인 부담이나 함께 해줄 보호자도 없다는 점이 걸리고, 그렇다고 충동성이나 현실검증력 저하가 있지도 않아서 강제로 입원시킬수는 없다는 핑계를 마음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분을 그냥 퇴원시키기에는 곧바로 자살 시도를 다시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생기면 제가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았습니다.
책임을 분산하여 제 마음 편하고자 저는 오랜만에 선배에게 전화하여 퇴원하는 방향으로 생각한 이유를 설명 했습니다. 하지만 선배는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주었습니다. 환자분을 최대한 설득해서 입원을 시켜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선배는 여건이 어렵지만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입원 권유는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환자분에게 입원 권유조차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환자분의 상황을 듣고 절망감에 동감하였고, 자살 생각에 암묵적으로 동의를 했던 것입니다. 또한, 입원을 권유하면 환자분을 제가 온전히 책임져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환자분의 치료는 꼭 제가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입원을 하면 주치의와 교수님이 따로 정해지고, 경제적인 상황을 지원해 줄 방법을 찾는 사회복지사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병동의 간호사 선생님들과 다른 환자분들도 모두 환자분의 치료를 도와줍니다. 그 사실을 잊고 환자분을 혼자서 치료해내겠다는 구원 환상(rescue fantasy)도 작동했나 봅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해야 할 역할은 일단 환자분을 안전한 환경으로 모시는 것, 입원을 시키는 것 까지 였습니다.
선배와의 통화로 생각이 명확해진 저는 환자분에게 입원을 권유했습니다.
"저희에게는 환자분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지금 퇴원을 하기에는 위험하다고 판단됩니다. 안전한 환경으로 입원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환자분도 거절을 했지만, 환자분의 안전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진심이 전달되었는지 결국 설득이 되었습니다. 입원에 동의를 해준 환자분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환자분도 역시 마음 한 구석에는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그것을 끄집어낸 것 같아 뿌듯하였습니다.
그렇게 환자분은 입원을 했고 처음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대했던 것보다 큰 효과를 보셨습니다. 죽고 싶은 생각이 더 이상 들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신 환자분은 그동안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었다는 것을 인지하셨습니다. 아직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그 상황들을 바라보는 느낌이 달라져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기셨습니다.
환자분의 이런 과정을 통해 값진 배움을 얻었습니다. 응급실 당직 의사로서 역할의 범위를 다시금 인지 하였고,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어도 정신과 치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죽고 싶은 생각은 항상 양가 감정이 있기에 동조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깊고 어두운 우물에 빠진 그는 포기한 듯, 우물 밖을 보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우물에 들어가서 구할 수는 없지만, 우물 밖을 바라보게 하고, 구할 사람들을 부르는 것까지가 저의 역할이었습니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는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