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새로운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초3인 우리 아들은 '월요병'이 유독 심하다. 토요일부터 주말의 시간은 평일과 달리 너무 빨리 흐른다고 야단이다.
지난 일요일 밤, 수면 모드로 전환하고 어서 자자고 다독이는데 아들은 눕지 않고 침대 위에서 방방 뛰면서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끄아아! 학교 가기 너무 싫어! 현준이(가명)의 미니카 얘기를 또 들어야 되잖아!"
내가 먼저 꼬치꼬치 캐묻지 않으면 학교 생활 얘기를 잘 꺼내지 않는 아이의 입에서 친구 이름이 나왔다. 현준이는 아들 뒷자리에 앉는 친구인데 미니카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단다. 얼마 전 이면지로 접은 미니카를 아들에게 선물로 줬다는 그 친구인가 보다. 현준이는 쉬는 시간마다 우리 아들을 붙잡고 자신이 알고 있는 미니카 기종과 색깔, 성능 등에 대해 말을 늘어놓기 바쁘단다. 어느 날에는 수업 중에도 아이 등을 쿡쿡 찌르며 그 얘기를 계속하다가 선생님께 지적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후야, 수업에 방해가 되니 잡담은 쉬는 시간에만 하자고 친구한테 말해."
"응, 현준이한테 그렇게 말했어. 그런데 쉬는 시간에도 걔가 계속 그러는 거 이제 힘들어. 벌써 이주일 째 같은 얘기만 해. 그래서 현준이가 미니카 얘길 시작하면 나는 이렇게 들어."
아들은 자기 머리에서 뭔가를 꺼내는 시늉을 한다.
"이 상태로 '아, 그래?', '아, 그렇구나' 하고 들어주다가 수업 종 치면 다시 쑥 집어넣어."
이렇게 말하더니 아까 머리에서 꺼냈던 뭔가를 다시 머리에 넣는 시늉을 한다.
나는 아들의 제스처를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게 뭐야?"
"뇌. 현준이가 말할 때 뇌를 꺼내서 듣다가 수업 시간 되면 집중해야 하니까 다시 집어넣어."
반복되는 친구의 이야기가 지겨워서 영혼 없이 듣고 있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 몸짓이 참신하고 귀여워서 배꼽을 잡고 한바탕 웃은 뒤, 아들의 손을 붙잡고 눈에 힘을 주며 신신당부했다.
"아들, 뇌를 꺼냈다 넣는 스킬, 잘 간직하고 있어라. 엄마 앞에서 유용하게 쓸 날이 올 거야."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들의 볼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머지않아 네게도 사춘기가 찾아오겠지. 엄마가 하는 모든 말이 지긋지긋한 잔소리처럼 들리게 될 그날, 맞불 작전으로 맞서 싸우기보다 네가 가진 그 고급 스킬로 모자 간의 위기를 잘 넘기면 좋겠다. 그렇다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만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