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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은 발가락에도 찌더라

by 춤몽


몇 달 만에 신발장을 열었다.

신발을 많이 사는 편이 아닌데도 신발들이 겹쳐져 꽉 차 있다. 제일 아랫칸부터 위칸까지 신발을 모두 꺼낸 뒤, 신발장 안의 흙먼지를 털어내고 소독수를 뿌려 깨끗이 닦는다. 두 해 동안 한 번도 신지 않은 신발은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유행이 지났거나 불편해서 등, 몇 년 동안 신지 않은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우선 하루하루 자라는 아이의 발에 작아진 신발과 사촌 형에게 물려받아 사용감이 많은 신발을 합치니 거의 열 켤레나 된다. 이것들만 정리해도 신발장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다음은 애증의 하이힐.

직장에 다닐 때는 7센티미터 높은 곳의 공기를 포기할 수 없어 하이힐을 신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했지만, 뾰족한 굽 두 개에 몸을 의지하며 잘도 버텼다. 다리와 허리 건강보다 비율과 멋이 더 중요한 시절이었으니까 가능했던 일이다.

아이를 낳고 퇴사한 뒤로는 발이 편한 단화만 즐겨 신게 되면서 내 하이힐들은 신발장에 갇혀 있다가 일 년에 한두 번 행사 때만 빛을 보는 신세가 되었다. 야금야금 찐 살이 발가락에도 붙었는지 언제부턴가 하이힐에 발가락을 욱여넣어야 겨우 들어갔다. 고문에 가까운 고통을 참아가며 맞지 않는 구두를 신었던 미련한 나와, 올해는 작별해야겠다.


꺼낸 신발 중에서 신을 것만 골라 하나씩 넣기 전에 마지막으로 밑창을 확인한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밑창이 맨들맨들해졌다면 바로 버리는 것이 좋다. 그만큼 자주, 오래 신었다는 증거이니 아까워할 필요가 없다. 특히 밑창이 닳은 겨울 부츠는 낙상 사고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다음 겨울을 기약하며 남겨두는 일 없도록 한다.


친정 엄마가 사이즈가 작다며 주신 운동화와 통굽 부츠도 세 켤레나 나온다. 하지만 내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어 그동안 그대로 보관만 했다. 사용감이 없으니 중고 거래 앱을 통해 저렴하게 판매하거나 나눔해야겠다.


그 밖에도 줄넘기 네 개, 살이 휘어진 장우산 두 개, 여분의 운동화 끈 다섯 개.

방심한 사이 신발장에서 부지런히 자라난 물건들이다. 깔끔히 정리해서 다시 넣어두는 건 미래의 나에게 같은 일거리를 떠넘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이가 사용하는 줄넘기 하나만 남기고 모두 처분한다.




옷장이든 신발장이든 냉장고든, 한 번 정리할 때 물건의 재고를 제대로 파악해야 이중, 삼중으로 재구매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갈수록 나빠지는 기억력을 믿지 말고, 이 공간 저 공간을 자주 열어 들여다보는 외엔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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