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깝다고 저한테 주지 마세요
오랜만에 친정 엄마가 오셔서는 작년에 내게 줬다던 에메랄드색 니트를 다시 달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그걸 받은 기억도, 입은 기억도 나지 않아 우리 집에 없다고 했더니, 분명히 줬다며 며칠 안에 꼭 찾아놓으라고 당부하고 가셨다. 또 시작이다.
엄마는 종종 작아져 당장 입지는 못하지만 버리기 아까운 옷들을 나 입으라며 주시고는, 내가 잊을 만하면 다시 달라고 하신다. 그럴 때면 나는 창고에 쌓여 있는 옷상자들을 몽땅 꺼내 먼지를 뒤집어써가며 ‘내가 원한 적 없는, 일방적으로 물려받은 그 옷’을 찾느라 분투한다.
찾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못 찾으면 엄마의 속사포 랩이 시작된다. "어디에 처박아두고 못 찾는 거냐, 버려버린 거 아니냐" 하며 안달하실 때마다, ‘다시 가져가실 거면 처음부터 왜 주신 걸까, 우리 집이 엄마의 제2의 옷장이라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불쑥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앞으로는 “아까워서 버리지 못했다”던 엄마의 옷, 가방, 신발은 정중히 사양하려고 한다. 아무리 비싸게 샀다 해도, 아무리 유명 브랜드라 해도 큐빅이 박힌 니트나 번쩍이는 에나멜 가방, 한 사이즈 큰 통굽 부츠는 도저히 내 취향이 아니다.
단순히 취향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제는 우리 집의 얼마 남지 않은 공간을, 버리지 못한 엄마의 물건들로 더 이상 채울 수 없다.
이제 아이 옷은 안 물려주셔도 돼요
우리 아이는 양가에서 막내라 친척들이 앞다투어 옷을 물려준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에게 물려받은 옷은 분명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실제로 입을 만한 몇 벌을 추려내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수고가 든다.
세네 박스를 샅샅이 뒤져도, 아이가 당장 입을 수 있는 옷은 열 벌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아이가 싫어하는 옷들—요란한 캐릭터가 프린트된 티셔츠, 목깃이 달린 폴로셔츠, 바스락거리고 빳빳한 소재의 옷—을 제외하면, 결국 손에 남는 건 다섯 벌이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아이에게 아직 크거나 이미 작아진 옷, 보풀이 심하거나 얼룩이 져 외출복으로 입을 수 없는 옷, 허리 밴드가 늘어나 수명을 다한 옷들이다.
네다섯 벌을 겨우 추려낸 뒤에는 남은 옷들을 의류 수거함에 버리기 위해 몇 번이나 집을 들락날락해야 한다. 처음부터 정말 입을 만한 것만 골라서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버려야 할 옷이 더 많은 박스들을 뒤엎고 나서 처분하는 일까지가 내 몫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누군가의 호의로 전해지는 옷들이 예전만큼 반갑지 않다. 정리정돈에 많은 시간을 들이고 싶지도 않고, 그럴 기력조차 없다.
아이 옷을 물려받는 일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올해부터는 계절마다 아이의 취향에 맞는 옷을 몇 벌 골라 멋스럽게 입히고 간결하게 정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