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킬러의 자백
집안을 어느 정도 간결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테리어에 관심이 생긴다. 예쁜 스탠드도 하나 가지고 싶고, 앤틱 식기 세트에도 눈이 간다. 그러나 인테리어 감각이 둔한 사람이 돈을 써 가며 이것저것 들인다고 해서 잡지에 나올 법한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건의 소재와 색상, 배치와 구도 등에 관한 지식 없이 인테리어를 시도했다가는 개성은 찾아볼 수 없는 애매한 공간만 탄생할 뿐이다.
인테리어에 대한 감각도, 지식도 없는 자?
바로 나다.
집주인의 센스 있는 손길로 예쁘게 꾸며진 공간을 동경하면서 슬쩍 흉내 내보지만 어수선해지기만 한다. 그래서 소품을 활용한 포인트 인테리어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군더더기 없는 '모던&미니멀'이 우리 집 컨셉이라고 최면을 걸고 마음 편히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내게도 포기할 수 없는 욕망이 하나 있었으니, 플랜테리어(플랜트+인테리어)로 '비밀의 화원'을 만드는 것.
아무것도 없이 휑한 광폭 베란다를 이왕이면 아름답게 꾸미고 싶었다. 알록달록한 꽃들로 가득 찬 나만의 정원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졌다.
몇 년 전 봄, 따스한 바람에 등 떠밀려 동네 화원에 들어섰다. 봄기운에 만취한 자의 충동구매로 우리 집으로 거처를 옮긴 형형색색의 식물들.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꽃들의 안부를 살피는 일과는 내게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나의 반려 식물은 얼마 못 가 하나둘 맥없이 쓰러졌다.
화원에서 가르쳐 준 대로 주기에 맞춰 물만 열심히 주면 되는 줄 알았지, 분갈이를 해야 한다는 것도, 물만큼 통풍도 중요하다는 것도 몰랐다. 식물 킬러에게 잘못 걸려든 올망졸망한 꽃들은 보름 만에 베란다에서 자취를 감췄다.
우리 시댁 창가에 있는 크고 작은 식물들은 수 년째 반질반질한 잎사귀를 달고서 잘만 살아있던데... 아무래도 식물과 식집사 사이에도 궁합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식물 똥손도 키운다는 율마와 스투키, 다육이도 죽이는 주제에 비밀의 화원을 꿈꾸었다니 내가 욕심이 과했다.
나처럼 재주 없는 사람이 플랜테리어 했다가는 사후에 처리해야 할 일들만 많아진다. 얼마 간 애도 기간도 필요하고, 말라죽은 식물과 화분을 분리해서 버리는 일감도 추가된다.
마음과 공간 정리의 번거로움을 피해 꽃을 가까이할 수 있는 두 가지 팁을 공유하겠다.
1. 식집사 자질은 없지만 꽃을 곁에 두고 싶은 자, 찾아가라. 꽃이 있는 곳으로.
우리 집 앞 천변에서는 한겨울을 제외하고 구에서 심고 관리한 다양한 식물을 만날 수 있다. 주민 세금이 들어간 화단이니 언제든 집 앞에 나가 마음 놓고 누리면 그만이다.
2. 식물 그림으로도 힐링할 수 있다.
생화는 아니지만,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취미로 즐길 수 있는 꽃 그림 그리기에 도전해 보자.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그림은 벽을 장식하는 멋진 소품이 된다(좌). 식물을 주제로 한 컬러링 북을 색칠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컬러 테라피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우).
(그래도 '비밀의 화원 갖기'는 아직 제 버킷리스트에 남아 있습니다^^)